밥 먹었어요?

• 집밥

‘밥’처럼 많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가 있을까? 일을 ‘밥벌이’라 하지요. ‘밥

심’으로 일한다, 밥값한다, 밥이 넘어가냐, 밥줄이 끊겼다 밥맛없는 세상, 한솥

밥 먹는 부부라. 심지어 죽으면 ‘밥숟가락 놓았다’ 말합니다. 70년대 김지하의

‘밥은 하늘’이라는 말까지. 사는 게 곧 먹는 일이요 먹는 게 곧 사는 일입니

다.

요즘은 먹방이 대세이지요. ‘냉부’ 냉장고를 부탁해, 삼시세끼 편스토랑 등, 수

많은 요리가 보암직도 먹음직도 하게 합니다. 외식은 보편화되었지요. 전화 한

통이면 온갖 음식이 안방으로 배달됩니다.

아직도 생생해요. 전자레인지는 커녕 전기밥솥도 신기했던 어린 시절, 고된 일

하고 들어오신 아버지를 위해 아랫목에 꾹꾹 눌러 담은 밥 한 공기, 연탄불

아궁이에서 끓던 된장찌개, 조미료라곤 미원이 전부였지만 시장기로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 ‘집밥’입니다.

그래서 꼰대 같은 말이지만 저는 ‘집밥’을 좋아합니다. 외식 몇 번 하면 집밥

이 그리워요. 주부들, 무슨 집밥이냐?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준 밥’인

데. 대신 김치 하나만 놔도 맛있게 먹습니다. 거기에는 정과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 예수님의 식탁

복음서에 보면 주님은 먹는 것을 중시하셨어요. 보세요. (요2장)예수님의 첫

이적은 가나의 혼인 잔치, 먹는 곳입니다. 오병이어, 4복음서가 공히 기록하는

큰 사건인데요, 수천의 배고픈 무리를 먹이신 지상 최대의 먹방(?)입니다. 친

히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당당히 먹는 문제가 들어 있어요. “오

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심지어 스스로를 ‘밥’이라 하시지요. “나는 생명의 떡(밥)이니”(요6:35). 십자가

십자가 전날 밤에 최후의 만찬때,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나눠 주시면서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내 살과 피니 나를 먹으라, 그리고 살아라”.

실망해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요. 언제 어떻게? “주께서 떡을 떼어 주실 때”.

(요21장)부활후 디베랴 제자들 보세요. 실패하고 낙망한 저들에게 찾아 오신

주님이 하신 일은, 고작 아침밥상입니다. 떡과 생선, 그러나 그 소박한 식탁이

제자들 마음을 엽니다. 여전히 주께서 사랑하심을 깨닫습니다.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 양을 치라, 먹이라’

그렇게 둘러 앉은 밥상에서 관계가 회복되자 제자들이 변합니다. 인생을 회복

하여 위대한 사도들이 됩니다.

그런 주님을 따르는 초대교회는 함께 모여 떡을 떼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행2:42)“...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행2: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

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초대교회는 먹는 게 일이었어요. 교회 표어가 이것 아니었을까?

“곳간에서 인심 나고, 밥상에서 믿음 난다”

실로 예수님 사역의 반은 먹는 것입니다. “먹는 얘기를 빼면 복음서가 얇아진

다(?)”. 그 두레밥상에서 교제하십니다. 마음 둘 곳 없는 이들, 인생에 희망이

없는 이들, 병들어 죽어가는 이들, 저들 이야기를 들으십니다. 천국 복음을 말

씀하십니다. 우리가 한 가족임을, 하나님 자녀임을 선포 하십니다. 몸과 마음

이 치료됩니다. “이 집에 구원이 임했느니라”.

신비하지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밥을 먹음으로 한 식구가 됩니다. 함께 먹

고 마시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나아가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줍니다. 밥상의 힘이라!

• 식탁의 힘

저는 이렇게 먹는 일에 관심 있으신 예수님이 참 좋습니다. 죽어서 천국 가는

말씀, 거룩하고 신령한 말씀도 좋지만, 이 땅의 진저리나는 먹고사니즘(?), 그

러나 이 중차대한 일에 관심하신 것입니다.

“만약 불현듯 예수를 만났을 때 “예배는 빠지지 않았니?”, “설교 시간에 딴짓

하지는 않았니?”, “헌금은 제대로 냈니?”와 같은 말을 들으면 슬플 것 같다.

그 모든 것을 잘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예수에게 듣고 싶은 한 마디,

예수가 할 것 같은 한 마디는 “밥은 먹었니?”다. 그것은 처진 내 어깨를 도닥

거리는 따스한 힘이자 잘잘못으로 평가받는 지친 일상을 뛰어넘는 위로가 될

것 같다. 결국 구원이란 이런 위로가 아닐까”

<예수님의 식탁이야기>. 김호경. 11쪽

공감되지요. 가끔 힘든 하루를 마친 해거름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 주

께서 제 곁에 따라 붙으셔서 말씀하세요. “최목사, 밥 먹어야지”.

하늘에 가 계신 엄마가 잠시 이 땅에 오신다면, 저를 보고 제일 먼저 이 말씀

하실 것 같아요. “밥은, 밥은 잘 먹고 사니?”

어릴 때 몸이 아플 때, ‘밥 먹자. 그래야 기운 차리지’.

시험에 실패해서 밤 늦게 들어 왔을 때도, ‘밥은 먹었니’.

입대하던 그 아침에도 ‘밥먹고 가자’, 밤새 밥상을 준비하신 엄마 생각해서 눈

물로 먹던 밥, 그 밥심으로 훈련소를 버텼습니다.

그때 그 밥은 그냥 음식이 아니지요. 탄수화물 단백질이 아니지요. 사랑이고

관심입니다. 부모와 자식을 연결해 주는 끈이며, 쓰러지는 인생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입니다.

최석규 집사님, 권사님 보내고 한 주간이 지났는데요, 그 빈 마음 어떠실까?

전화 드려서 꼭 드리는 한 가지 말, ‘밥 드셨어요’.

우리 교회 이곳저곳에서 이 소리가 많이 들리면 좋겠습니다.

“밥 먹었어요?” “우리 밥 한 번 먹어요”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