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가 그리운 날에

• 힘겨운 새벽

요즘 새벽마다 힘이 듭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 피곤해서요? 아닙니다.

목회 30년에 그건 어느 만큼 몸에 배었습니다. 사실은 힘든 것이 하나님 말씀

때문입니다. 요즘 <하루에 한 장씩> 새벽 말씀 일과가 미가서이지요. 미가는

BC 8세기 예언자입니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들이 많아요. 이사야 아모

스 호세아 등등. 그러고 보니 벌써 몇 달째, 이사야에서 시작된 예언서 말씀이

예레미야 에스겔 등 대예언서를 거쳐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미가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거반 망해가고 남 유다도 풍전등화 같은

시기이지요. 선지자들의 예언은 한 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리라’. 지금

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의를 행하면, 나라는 망하고 성전은 불타며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 그러므로 ‘돌아오라’. 예배와 의로운 삶을 회복하라는

경고입니다.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오직 정

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

냐”(미6:6-8절).

미가서의 중심 구절이자 당시 예언자들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판의 말씀들이 몇 달째 계속되다 보니 힘이 듭니다. 날마다 심

판이요 망한다는 말씀, 앞으로도 말라기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어렵게 새벽에

나오시는 성도들을 생각하면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이 좋겠는데, 망한다는 ‘단

단한 말씀들’이니 괴롭습니다. 물론 새벽 성도들이 이런 말씀에도 은혜를 받으

시지만, 목사로서 죄송한 마음 조차 듭니다. 가정에서 이 말씀으로 시작하는

성도들까지, 반복되는 예언서 말씀들을 잘 소화하고 계실까요?

그래서 미가서를 시작하면서는 말씀 제목을 <하나님의 잔소리>라 붙였습니다.

좀 불경스럽나요? 매일 똑같은 말씀, 조금은 지겹기조차 한, 하나님은 너무

듣기 싫은 말씀만 늘어 놓으시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 말씀이 이스라엘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듣고 순종하면 살

고 그렇지 않으니 망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에 희망이 있습니다. 이 말씀

안에 이스라엘을 살리기 원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예언서를 하나님의 잔소리라 표현한 것은 반복되어서가 아닙니

다. 잔소리에 담겨 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뭐에요? 사랑입니다. 나를 위

한 사랑,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그래서 자꾸 반복하

세요. 법으로 하면 심판해야 하지만, 하기 싫다는 말씀이세요. 화가 아니라 복

을 주기 원하시는 잔소리, 여러분 그 잔소리를 잘 듣고 계십니까?

• 잔소리는 사랑이다

잔소리가 있지요. 아이들은 부모님께 듣는 잔소리를 싫어합니다. “일찍 일어나

라 똑바로 앉아라 다리 떨지 마라 젓가락질 바르게!”. 큰애 둘째 셋째 모두에

게 제가 했던 잔소리들입니다. 신앙의 가정이라면 잔소리가 늘어나겠지요. “오

늘 말씀 묵상은? 기도했니? 교회 가야지. ‘아멘’ 해야지”.

제가 이 나이에(?) 아내에게 자주 듣는 잔소리가 있어요.

“입요 입 좀 닦아요. 또 묻었잖아요”

덤벙이는 목사인지라 밥 먹을 때마다 입에 뭘 묻힙니다. 성도들 앞에서 그러

면 어쩌냐는 거에요. ‘입 닦아라, 성도들과 식사할 때 음식물 튀면 안된다, 말

도 적게 하시라’. 아내는 애면글면 잔소리를 합니다. 앞에 서는 목사 남편이

걱정되어 하는 말인 줄 알지만, 그래도 듣기 싫어요. 어떤 땐 화가 나서, “아

니 뭐가 묻었다고 그래, 내가 뭐 어린애요?”. 그러다 손으로 입가를 쓱 닦아

보면 정말 뭐가 잔뜩 묻어 있습니다.

예, 잔소리입니다. ‘귀찮게 늘어 놓는 자질구레한 말’. 사전의 정의인데요, 이

런 잔소리를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언서를 하나님의 잔소리

라 표현한 것은 그런 의미를 넘습니다. 잔소리라는 단어가 주는 따스한 향수

가 있잖아요. 정감 있고 친근한, 사랑이 담겨 있는 소리라는.

사람이 나이 들면 부모님 잔소리가 그리워지지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엔 더욱

더해요. 이 여름에 담가 주신 시원한 열무김치가 먹고 싶듯, 그 꼬장꼬장하시

던 정엣말이 그립습니다. 어릴 땐 “속내의 따뜻하게 입어라. 일찍 들어와라”.

다 커서도 “감사하자 불평할 게 없다. 기도하자 기도하면 된다. 혜진이한테 잘

해라”. 그때는 듣기 싫었어요. “엄마 또 그 소리”. 그러나 잔소리는 사랑이셨

고 기도이셨습니다. 바르게 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의 잔소리, 학생때 선생님의 잔소리, 결혼해서는 아내의 잔

소리, 세월이 좀 지나가면 아이들이 커서 내게 잔소리를 하겠지요. 분명한 것

은, 모두 다 그 안에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때론 불편하고 듣기 싫은

소리이지만, 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들이지요. 문밖에만 나가면 질책하는 소

리, 벼랑 끝으로 내모는 세상에서, 내게 사랑의 잔소리를 해 주는 사람이 있다

면 행복한 인생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아는 나이가 되면 한 분씩

떠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잔소리

이런 마음으로 성경을 보니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잔소리가 많습니다.

“말씀따라 살라, 사랑하고 용서하라, 욕심을 버리라, 천국을 바라보라”.

되풀이할 신(申)자를 쓰는 신명기(申命記)는 정말 못말리는 잔소리 책이지요.

전부 같은 이야기의 반복 또 반복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심정으로 가나안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잔소리를 쏟아 내셨습니다. 예언서는 더욱 더하지

요.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다시 회복하시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심판

과 저주가 임하리라”, 구약에 문서 예언자만 16명에 이르는데 그들은 똑같은

말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했습니다. 잔소리 하나님, 잔소리 성경.

잔소리로 따지자면 예수님도 빠지지 않으십니다. 산상수훈에 평지설교에, 비유

로 대화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다시

말하노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천국에 대해, 사랑에 대해, 구

원에 대해, 주님은 어느 한 가지라도 대충 퉁쳐서 말씀하시지 않고, 반복해서

구체적으로 꼬장꼬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후 디베랴 바닷가에서 그 잔소리는 압권이셨지요. “네가 나를 더 사랑하

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심히도 불편하게 캐물으셨지요. 잔소리 대가 예

수님. 그러나 그 안에 깊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갔

어도, 그래서 이제 너와 나는 끝장난 관계인데, 네가 마귀 자식이 되어도 나는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될 수 있지만, 아니라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돌아

와 다시 시작하자는. 예. 실로 성경은 하나님 사랑이 가득 담긴 잔소리의 책,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반복의 책입니다.

• 잔소리가 그리운 날에

교회 목사도 잔소리 하는 사람일 터이지요. “예배 드리라, 말씀 통독하자, <하

루에 한 장씩> 읽어가고 있느냐? 기도해야 한다”. 매 주일 설교에는 하나님의

잔소리가 들어 있습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받아 들일까? ‘귀찮게 늘어 놓는

자질구레한 말’로 받으실까, 하나님 사랑의 마음이 담긴 정엣말로 받으실까?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으로 하고 있느냐?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안에 담

겨 있느냐?’ 이겠지요. 그 마음으로 권면하고 권면을 받으면 사람을 변화시키

는 거룩한 잔소리이겠고, 그렇지 않다면 귀찮게 다그치기만 하는 잔소리에 불

과할 것입니다.

오늘따라 잔소리가 그립습니다. 부모님의 잔소리, 아내의 잔소리, 그리고 하나

님의 잔소리. 잔소리는 다름아닌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내일 거룩한 주일, 그

잔소리 들으러 교회 오지 않으실래요?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주시오

나 항상 듣던 말씀 또 들려 주시오

아침의 이슬방울 쉬 사라짐 같이

내 기억 부족하여 늘 잊기 쉬우니

잘 알아듣기 쉽게 늘 말해 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평생에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찬송가 205장)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