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 봉산동 첫날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기, 여러분 누군가를

그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려 본 적이 있으시지요. 군에 간 아들을 기다리던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소식이 오지 않을까? 수술실에 들어간 가족을 애달

프게 기다려 본 적도 있습니다.

2003년 이맘때였지요. 원주영락교회 처음 선 보는 설교 하러 왔을 때. 수요예

배입니다. 서울에서 1시간 반이면 오지만 초행길 실수하지 않으려고 아내와

이르게 출발했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서울 여의도 근처 ‘잘 나가는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물론 원주에 ‘더 잘 나가는 교회’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봉

산동을 한 바퀴 돌았는데 첫인상이 좋아요. 초등학교도 있고, 세상에 조산원도

있었어요. “여보, 여긴 아직도 애를 조산원에서 나나 봐”. 웬 보살님들도 많으

시고, 붉은 깃발 흰 깃발에 새마을운동 깃발까지. ”야아~ 할 일도 많겠구나“.

동네 초입에 있는 <백설 세탁소>, 지금도 빛바랜 간판 그대로이지요. 그 옆에

차를 세워 놓고 아내와 가만히 기다리는 시간, 아직 30대 나이여서인지 긴장

이 돼요. 설교 원고를 보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간은 왜 그리 안 가

는지 참 길고 길었습니다. 그 긴 기다림 끝에 이 강단에 서서 첫 설교를 했

고, 그때로부터 20여 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 오고 있습니다. 그때 무슨 말씀

을 전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봉산동 세탁소 옆에서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

던 기억만은 생생합니다.

• 기다리는 마음

황지우의 시 가운데 한 소절 옮깁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중략)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에서)

기다리는 마음을 잘 표현했지요. 그러므로 기다림은 고통일까요 기쁨일까요?

고통이지만 또한 기쁨이요 설레임 이지요. 우리 살아가면서 수많은 기다림이

있을 터인데, 주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쁨이 있으시길 빕니다. 아울러 대림의 절

기, 깊은 기다림 끝에 성탄으로 오시는 우리 주님을 만나는 성도들 되시길 빕

니다.

• 합격할 줄 믿습니다(?)

지난 주간 월요일, 우리 집은 중대한 일이 있었어요. 큰아이 무슨 시험 발표가

있었거든요. 대학 내내 공부해 왔던, 아니 그 이전부터 열심히 수고한 결과가

나오는 순간이었지요. 발표 시간이 가까울수록 마음이 싱숭생숭, 아무것도 손

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때의 기다림이란, 정말이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

다 더하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대로였습니다. 큰 애는 오죽했겠어요.

“떨리니?”

“...”

그때 큰 애가 제게 이런 말을 해요.

“아빠, 이따 발표 확인하기 전에 기도해 주세요”.

목사인 아빠가 주춤했습니다. 시험 보러 갈 때야 기도해 주는 것이 당연지사

인데, 발표 보는 시간에 무슨 기도를 해 줄까? 이미 결과 다 정해졌는데, 파

일을 열기만 하면 다 나오는데. “합격할 줄 믿습니다? 뒤집히게 해주시옵소

서?”.얼마나 긴장되면 그러겠나 싶어 측은한 마음까지 드는 순간, 이어지는 아

이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어떤 결과도 잘 받고 다시 시작하도록요”.

마침내 저녁 6시, 발표 시간이 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식탁에서 노트북을 엽

니다. 이제 수험번호를 입력만 하면 결과가 뜨겠지요. 숨이 막히는 순간, 큰애

말대로 온 가족이 머리 숙이고 아빠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이 시간, 주님께 맡깁니다. 합격일 때 은혜임을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시고,

그렇지 못해도 겸손히 받아 실망치 않고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붙었을까요? 떨어졌을까요?

• 기다리는 이들에게

기도를 하고 발표를 보는 동안, 저는 여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합격 불합격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합격하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걱정하지 않을 참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감사가 있고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때와 시기의 문제일 뿐 머잖아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때’ 이리라.

“날이 저물어 갈때 빈들에서 걸을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될때 빈손으로 걸을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내가 원하는 때가 있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조

급함 있어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지요. 속히 약속의 아들 이삭 얻기를, 빨

리 이 광야를 벗어나 젖과 꿀의 땅에 들어가기를, 얼른 골고다 십자가가 지나

고 부활과 영광의 언덕에 오르기를. 그러나 그날은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오

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우리는 단지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겸손히 그날을 기다리며 수고의 씨앗을 뿌릴 뿐입니다. 서두르

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입니다.

엊그제 가까이 지내는 원주 모 교회 동생 목사님에게서 이런 글을 받았습니

다. “형! 우리가 할 수 있는 주의 일을 하면, 우리가 할 수 없는 나의 일을 하

나님께서 도우심을 찬미합니다”.

지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이 글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