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이 있는 집

• 봉산뫼 새 둥지

‘가정’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요. 밥상, 아랫목, 포근함, 둥지. 혹시 집구

석? 감옥? 사각의 링?

목양실에 자그마한 창문이 하나 있는데요, 멀리로 봉산뫼가 보입니다. 산등성

이 키가 큰 나무 위에 새 둥지가 있어요. 비바람이 세차게 불 때면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오늘밤 저 둥지가 무사할까? 그 속에 새끼들이 있다면?”. 가끔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합니다. 새 둥지가 얼마나 약해요. 겨우 나뭇가지들로

얼기설기 엮었을 뿐입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불안하기 짝이 없지요. 그러

나 새들에게는, 그 새끼들에게는 어떤 곳일까요? 평안이 있는 보금자리이겠지

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안식처입니다. 강철로 만든 둥지여서? 환경이 좋아

서? 그렇지 않지요. 그 안에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비새는

그 안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기 위해 수천 번 턱으로 문지른대요. 어미는

사랑으로 그 새끼들을 품어 주기에 즐거운 나의 집, 안락한 둥지가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 집은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많은 가정들이 갈등과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진은영 시인의 ‘가족’이라는 시입니다.

<가족>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 지성사, 2003)

우리 경험하는 바이지요. 밖에서는 나름 괜찮은데 집에만 들어가면 시들어 버

립니다. 뭐가? 꽃이? 화분이? 아니요. 가족이. 아빠가 아들딸이 부부가. 밖에

서는 환히 빛나는 인생인데 집에서는 어두워져서 시든다! 오늘 우리들 가족

가정이 문제이라. 그래서입니다. 우리의 죄성이 가장 드러나는 곳, 가정입니

다. 십자가 은혜가 가장 필요한 곳, 다른 곳이 아닌 가정입니다.

• 이불에 대한 추억

제게는 ‘가정’하면 떠오는 이미지가 이불입니다. 가정은 어떤 곳인가? 이불이

있는 곳입니다. 가족은 누구인가? 같은 이불을 덮고 사는 사람이에요. 하루를

마치고 어두운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워 낄낄거리는 사람들, 가족입니다.

어릴적 이불에 대한 추억이 아련합니다. 가난한 농이었지만 어머니는 이불 하

나 요 하나 쌍으로 해서 차곡차곡 개켜 두셨지요. 시집 올 때 유일하게 해 오

셨다는 목화솜 이불을 비롯해서, 꿰매고 씌우고 바느질해서 애지중지하시던

이불들. 서울에 재수하러 올라갈 때 엄마가 한 팔에 지워 주시던 담요, 남산

아래 낯선 독서실에서 그걸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침대 생활을 해서 요도 이불도 간단해졌지만, 예전에는 두꺼운

이불에 홑청을 씌워서 덮었지요. 밤새 펑펑 눈이 쏟아지는 겨울밤, 안방을 가

득 메운 커다란 솜이불, 그 위에 홑청을 네 모서리 곱게 접어 한 땀 한 땀 시

침질하시던 엄마. 은빛 장 바늘 끝을 머리에 대고 쓱쓱 긁기도 하시고, 홑청

이끝 저끝을 마주 잡고 당기던 일. 나는 푹신한 이불 한가운데 들어가 뒹굴며

장난칩니다. 자꾸 흩어지니까 혼나는데도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신이 났습니다.

그땐 이불이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요, 잔디가 깔린 축구장만했습니다.

아랫목에 가지런히 펴져 있던 이불은 따스한 온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한 겨

울 종일 한 데서 떨다 들어 온 식구들의 언 손을 녹여 주었습니다. “아 뜨시

다...” 이불 속에서 더 따스한 쪽으로 제 발을 옮겨 주시던 아버지의 발, 이불

속에서 꼭 안아 주시던 어머니의 품. 그 이불을 더 덮기 위해 형들과 싸우기

도 했습니다. 엄마가 청소하실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뺀질뺀질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이불이 들어 있는 장롱 속에 들어가 울기도 하고, 온가족이 한 이불을

덮고 도란도란 얘기가 깊었습니다. 아랫목 이불속에 넣어 둔 따스한 공깃밥,

아플 때 밤새도록 이불 덮어주며 도닥여 주던 손.

• 이불이 있는 집

허름했지만 사랑의 이불이었습니다. 온 식구들의 정과 사랑이 묻어 있던

얇았지만 따스한 이불이었습니다. 추워도 춥지 않았던 온기가 배어 있던

냄새났지만 용서의 이불이었습니다. 잘못도 허물도 열등감도 다 덮어주던

세상이 메말라 사는 것은 그 사랑의 이불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가정이 벌벌 떨며 사는 것은 그 따스한 이불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교회가 문제로 아파하는 것은 그 영적인 이불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예수님은 이불입니다. 십자가는 이불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이불이 있는 가정이 되길 빕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의 이불이 덮어주시기를 빕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