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무거우십니까?

• 전교인 산행

어제 오랜만에 교우들과 함께 야외 등반을 했습니다. 호저에 섬강 자작나무숲

둘레길, 데크길을 따라 섬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싱그러운 산내음, 초록이 무

성한 풀과 나무, 그사이에 부는 바람, 하얗고 노란 꽃들, 순백의 자작나무숲까

지, 푸르른 5월의 하늘 아래 정말이지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산행을 할 때마다 느끼지요. ‘인생길도 이와같다’. 산 정상을 향해 열심히 걸

어가야 합니다. 때론 가파른 오르막도 있고 비탈진 내리막도 있어요. 길이 헛

갈려 잘못 들 수도 있고 돌아갈 때도 있습니다. 평탄한 길에선 좀 쉬어가고,

내가 좀 쳐졌으면 재촉해서 따라붙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짧은 산행, 긴 인생”. 산행 시간은 짧지만 건강해져서 길

게 장수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축복합니다. 성전에 올라 예배

하는 성도들, 이 짧은 주일 예배를 통해 영혼의 긴 안식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함께 산길을 걷는 성도들을 가만 바라보니 모두 가벼웠습니다. 가벼운 짐, 가

벼운 발걸음, 가벼운 마음. 문제는 인생의 짐이지요. 산행은 가볍게 할 수 있

지만 인생은 가볍게 갈 수 없습니다. 저마다 삶이라는 짐을 지고 있습니다.

어제 김밥에 물에 과자봉지에 준비해 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바리바리 아내

가방에 다 넣었어요. 저는? 맨몸으로 가볍게. 상남자다? 한참을 가다 보니 아

내 가방이 무거워 보여요. 달라했더니 얼렁 주더라고. 가다가 물병을 받아달라

했더니 “무거운데 왜 줘요?” 뭐 이런 얼굴이에요. “아니 신발끈이 풀어져서,

잠시만 들고 계시오”. 잘 넘어갔지만 큰 일 날 뻔했어요.

• 짐이 있는 인생

짐을 좋아할 사람은 없지요. 짐이 무거울수록 그 길은 고단합니다. 짐이 없는

인생이 되고 싶다? 로망일 뿐입니다. 가수 노사연의 <바램>이란 노래를 좋아

들 합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처음 가사

는 이래요. “내 손에 잡은 것이 너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예. 등에 짊어진 짐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

로. 어떤 이는 가족이 짐입니다. 가난이 짐인 사람도 있고 연약한 몸 때문에

평생 힘겹게 사는 분들도 계세요. 무엇보다 마음의 짐이 무겁게 누르는 인생

입니다. 따지고 보면 만남도 짐이고 사랑도 미움도 짐입니다. 살면서 부딪히는

일 중에 짐 아닌 게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입니다. (마11:28절) 참 좋아합니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

라’.

그런데 주님께 가기만 하면, 맡기기만 하면 금방 모든 인생의 짐이 없어지는

가? 새 깃털처럼 가벼운 인생이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보세요.

(마11:29절)“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절)“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께 와서 짐을 맡기면 다 해결해 주시는 거 아닌가? 가뜩이나 짐이 무거워

서 예수님께 갔는데, 당신의 짐, 멍에까지 덤으로 메게 되는 것인가?

• 멍에와 짐

‘멍에’(yoke)가 있어요. 히)체메드. 쟁기나 수레를 끌기 위해 짐승 목에 가로

얹는 막대입니다. 당시 대개 두 마리가 한 짝이 되어 일을 했는데(겨릿소), 한

마리는 경험이 많고 힘이 좋은 소이고, 한쪽은 아직 미숙하고 배워야 하는 소

입니다. ‘안소’와 ‘마랏소’라 했어요. 그 둘을 묶어 주는 것이 등의 멍에입니

다. 안소가 이끄는 대로 마랏소가 움직여 일을 하면 수월했습니다.

비유이지요. 그러니까 멍에는 짐을 버리는 도구가 아니라 짐을 잘 지게 하는

도구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메면 내 인생의 짐을 잘 질 수 있습니다.

그 멍에를 통해 예수님과 내가 짝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이 한쪽, 내가 다른

쪽. 주께서 안소 내가 마랏소. 내 혼자 지던 짐을 예수님과 함께 집니다. 혼자

갈던 밭을 예수님과 함께 갑니다.

그러니 본문 (마11:28절)은 이런 뜻이에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와라. 가장 큰 짐, 죄와 사망의 짐일랑

내게 맡기라 내가 짊어지마. 나머지 네 인생의 짐은? 나와 함께 지고 가자.

내가 아빠 ‘안소’야. 내가 가르쳐 줄게. 도와줄게. 등의 멍에가 무겁지만 내가

함께 지고 있어. 나와 함께 지면 쉽고 가벼워. 내 곁에서 배워. 내가 짐을 질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줄게”

성도로 산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입니

다. 그리할 때 내 등의 짐, 내게 태인 십자가를 잘 질 수 있습니다. 그 멍에가

짐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됩니다.

• 내 등의 짐

돌이켜 보면 목사인 제게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

다. “이 짐만 없었어도 훨훨 날아갔을텐데”. 그러나 가만 보니 그 짐이 필요했

습니다. 그 무거운 짐 때문에 엎드려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짐이 있어서

온유와 겸손을 흉내라도 낼 수 있었고, 그 짐이 있어서 이만큼 목회할 수 있

었습니다. 그 짐은 은혜의 도구였습니다. 내 등의 짐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귀한 선물입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내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내 등의 짐>

-정호승-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겁니다.

내 등에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