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의 은총

• 짐이 되는 인생

노년이 될수록 두려운 것이 짐이 되는 것이지요.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았

으면, 내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늙으신 부모님들

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사실 짐이 되지 않는 인생은 없지요. 사람은 사랑을 줄

때가 있으면 받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짐을 져주기만 할 수 없고 내 인생의

짐을 맡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연약한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

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누군가에게 짐이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존 스토트(J. Stott)는 <제자도>라는 책에서, 제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태도가 ‘의존’이라 말합니다. 놀랍지요. 강함 아닙니까? 승리나 성공 아닙니

까? 아닙니다. 가장 온전한(급진적인?) 제자도는 주님께 또한 다른 이에게 의

존하는 일입니다.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의존하는 존재가 되

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것은 성숙이 아니라 미성숙의

표지요 심지어 교만한 일이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과 보호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이 세상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의존하는 인생의 단계를 거쳐 간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이 세

상을 떠날 것이다. 이것은 약하거나 참담한 현실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체적인 본성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계획의 한 면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당신은 내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

고 나는 당신에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가족의 삶, 그리고 교회 가족의 삶

역시 '서로에게 짐이 되는' 삶이어야 한다”

(<제자도> 130쪽)

저는 이 글에 너무나 큰 위로와 은혜를 받습니다. 내가 가정에서 아빠로서, 교

회에서 목사로서, 늘 강인할 수 없습니다. 때론 아프고 실수하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아플 수도 있지. 설교를 좀 못할 때도

있지. 울어도 돼 주님도 우셨는데. 주께서 그렇게 연약하게 만드셨는데”.

우리를 짐이 되도록 연약하게 만드셨다는 사실, 서로 신세지고 신세를 갚는

과정 속에서 신앙생활의 참 맛을 경험한다는 사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

신다는 사실, 그러라고 교회공동체를 주셨다는 사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서로 의존하라

주님을 보세요. 이 땅에 위대한 임금으로, 강인한 장수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전적으로 엄마의 보살핌에 의존해야 하는 아기로 이 땅에 오셨

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누군가가 먹여줘야 했고, 엉

덩이를 닦아 주고, 기우뚱 넘어지려 할 때 받쳐 주어야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

산에서는 “내가 괴로워 죽게 되었으니 나 위해 기도해다오”, 제자들에게 기도

의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도 너무나 연약하사 구레네 시몬

이 대신 십자가를 지지요. 결국 축 늘어진 팔다리에 못이 박힌 채 움직일 수

없는, 33년전 아기때 모습처럼 다시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가 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생이랴! 하나님은 인생을 의존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먼저는 주

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그것

은 부끄러운 일도, 무기력한 일도 아닌 하나님 은총의 통로입니다. “내가 힘이

더 세다”고 목소리 높이는 교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짐을 져

주는 교회, 그리할 때 주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것이 서로를 살립니다.

(갈6:2)“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참 아름다운 말

서로의 짐을 지는 한 예가 기도부탁입니다. 기도 부탁은 그냥 몇 번 기도해

주는 일이 아니지요. 두 손 모아 기도할 때마다 순간순간 그를 생각합니다.

“그 짐때문에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 되었을까?”. 좋은 소식이 들릴 수도, 그

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서

로 가까워집니다.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나눕니다.

그러므로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고 목회하면

서 참으로 보람된 순간입니다. 목사인 저 또한 성도들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기도부탁을 합니다. “장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여보 나 힘들어 기도해 줘요. 얘들아 내일 주일이야 아빠 위해 기도해 다오”.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 이것이 서로의 짐을 져 주는 일입니다. 서

로 짐을 주고 짐을 져주면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사랑과 마음을 나누라. 그

리할 때 그리스도 사랑의 법이 성취됩니다.

“주님, 주님께 내 짐을 맡깁니다. 주님의 도움으로 내 인생의 짐을 잘 지게 하

옵소서. 또한 나는 그의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고단한 인생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손잡아 주고 짐을 져 줌으

로, 그리스도 사랑의 법을 성취하게 하옵소서. 훗날 이 땅의 소풍 끝내고 주님

앞에 설 때, 모두가 기뻐하며 참 아름다웠다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