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절제의 절기

• 사순절기

사순절(Lent)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절기이지요. 사순절이 봄에 위치해 있는 것, 의미 있습니다. 언 땅을 뚫고 나

오는 새싹처럼, 주님의 십자가가 죽음의 겨울을 보내고 생명의 봄을 오게 할

것입니다. “겨울은 봄 속에서 끝난다”.

아닌 게 아니라 계절은 봄이지만 이 땅의 모습은 아직 한겨울처럼 느껴집니

다. 치솟는 물가에, <나는 신이다> 정명석의 엽기행각, 일제에 굴욕적인 외교

까지.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서민들 사는 건 더 어려워졌습니다. 봄같은 희망이

절실한 때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말씀과 기도, 예배와 경건의 삶으로 이 거룩한 절기를 보

내왔습니다. 예전에 비해 느슨해졌지만, 우리 교회도 감사 노트, 사랑의 저금

통, 복음서 묵상 등을 통해 주님의 길을 따르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나아가 금

식을 하고 힘든 이웃을 돌아보며, 잠을 깨워서 새벽 제단을 쌓는 일, 영혼을

맑게 하는 거룩한 책읽기(Lectio Divina)를 한다면 더욱 깊은 절기가 될 것입

니다.

지난 주간에 엔도 슈샤쿠의 <침묵>을 다시 사서 읽었습니다. 사순절기에 이

책을 읽는 것이 의미 있다 싶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어 가던 그날의

순교자들이 너무나 안타깝고도 고귀합니다. 후미에를 밟고 배교한 페레이라,

그 속에서 갈등하며 고뇌하는 로드리고 신부. “과연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

을까? 그 깊고 긴 하나님의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소설이지만 한

페이지도 쉽게 넘어갈 내용들이 아니어서 줄을 치며 정독했습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

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이 대목을 읽을 때는 정말이지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이 기간에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렇게 사순절은 봄이 되어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붙잡아 매고

차분히 마음의 골방에서 말씀과 기도, 거룩한 책읽기 등을 통해 주님을 묵상

할 일입니다.

• 인생의 브레이크

그러기 위해 ‘절제’가 필요하지요. 마음과 생각, 시간과 물질의 절제가 아니고

서는 사순절의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사순절기 뿐만 아니지요. 성도는

모든 일에 있어 절제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중에서 절제가 맨

뒤에 있는 이유이지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 절제가 맨 뒤에서 앞에 있는 성령의 열매들을 하나씩 떠받쳐 주는 듯합

니다.

보세요. 부모의 사랑에 절제가 없다면 자녀를 망칠 수 있습니다. 화평하다고

절제하지 않으면 금방 다툼이 옵니다. 오래참음조차도 절제하지 않으면 홧병

이 됩니다. 절제 없는 자비는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고, 충성한다고 절제하지

않으면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절제는 모든 성령의 열매들을 온전케 하는 역

할을 합니다.

얼마 전에 대관령 옛길을 운전해 갔었습니다. 구불구불 아흔아홉 굽이 돌아가

는 길, 운전에 서툰 사람은 위험하지요. 무엇보다 30분도 넘게 내려가는 길은

브레이크를 계속해서 밟아야 합니다. 제대로 정비하지 않았든지 노후된 브레

이크는 위험합니다. 군데군데 안전시설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였어요. 긴급 제

동시설, 타이어 방호벽에 모래를 깔아 놓은 경사각 언덕길입니다. 브레이크가

망가져 제동이 안될 때 긴급히 차를 멈출 수 있습니다.

절제는 이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인생길에서 과욕으로 위험할 때 속도를 줄이

게 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게도 합니다. 안전속도를 지키고 앞차와 거리를 유

지하며 적절하게 차를 운행하게 합니다. 아무리 엔진이 좋아서 빨리 달릴 수

있는 차라 해도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위험합니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중요

한 것처럼 인생에도 절제가 필수입니다.

• 성경과 절제

성경에는 절제를 잘하지 못해서 부끄러움을 당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은 에덴에서 행복을 지키는 한 가지를 명령하셨으니 절제입니다. “동산에 모

든 것은 다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 아담과 하와는 이 절제의 명령을 어겨

실낙원 합니다. 야곱의 장남 르우벤은 절제하지 못해 서모 빌하와 통간하지요.

(창49장)야곱의 축복에서 르우벤 몫은 변변찮습니다. 그 지파에서 왕도 선지자

도 나오지 않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이면서도 절제하지 못해 결국 머리카락이

잘리고 두 눈이 뽑혀 블레셋의 노리갯감이 됩니다. 다윗이 그날 왕궁 옥상에

서 절제하여 밧세바를 범하지 않았다면, 가정의 불행과 자식에게 당하는 부끄

러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이지요. 절제하여 이방 여인들을

멀리했다면, 이스라엘 남북이 갈리는 아픔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그렇지 않지요.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참아냅니다. 육신의 정욕을 절제

한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만 섬기기로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

를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하루 세 번씩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

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 편안함, 권세 앞에서 신앙으로 절제한

것이지요. 어떻게 되어요? 고기 먹은 소년들보다도 얼굴에 빛이 더 났습니다.

모함의 사자굴에서도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

으로 절제하는 다니엘과 친구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도 절제하셨습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니 사단은 먹는

것으로 유혹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영웅이 되라 힙니다. 절 한번 하

면 천하만국의 영화를 주겠다고도 꼬드깁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으로 유혹

을 절제합니다. 절제는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이기는 승리의 길입니다.

이후에도, 영광 받을 자리를 일부러 피하시기도 하지요. 문둥병을 고쳐 주시고

는 소문이 나지 않도록 절제시킵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너희 전대에 아

무것도 가지지 말라”(마10:9) 하십니다. 절제하라는 것이지요. 나누는 삶, 용서

하는 삶, 섬기는 삶이 바로 절제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

실 때도 군중들이 ‘호산나’ 왕으로 환호했지만 백마가 아니라 겸손히 나귀 새

끼를 타셨습니다. 빌라도 앞에서도 침묵으로 절제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도,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될 때도, 사람들이 조롱할 때

도, 성부 하나님이 죽음으로 버리실 때도, 끝까지 절제하며 용서하심으로 우리

를 향한 구원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절제의 성품이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

을 것이니라”(마16:24)

• 무엇을 절제할 것인가?

‘절제’란, ‘마디 절’(節)에 ‘자를 제’(制) 입니다. 정도가 넘어가려 할 때 잘라버

리는 것이지요.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해서 상 받기를 원하는 성도일진대 매사

에 절제해야 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첫째, 생각을 절제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둘째, 말을 절제합니다.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않는 자의 경건은 헛것이라”(약1:26)

셋째, 보는 것을 절제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

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3:6)

넷째,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다섯째, 성적인 정욕을 절제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요일

2:16)

여섯째, 돈 문제에 있어 절제합니다.

(마6:24)“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일곱째, 편안함을 절제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

음이니라”(마7:13)

여덟째, 감정을 절제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아홉째, 결론적으로 욕심과 욕망을 절제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 절제하는 절기

“손톱이 길면 때가 끼듯이, 욕심이 자라나 때가 끼네

손톱을 깎고 나면 개운하듯이, 욕심을 잘라내니 개운하네

한동안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새 자라있는 손톱

한동안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새 또 자라있는 욕심

수시로 들여다보고 잘라야겠네”

잘라낼 것을 잘라내는 것, 그래서 자기를 정결하게 다스리는 것, 절제입니다.

당신의 손톱은 어떠십니까? 날마다 잘라내고 있으십니까?

성령께서 절제의 힘을 주시사 사순절의 깊은 은총을 기원합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