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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을 살리는 산파교회
이름 최현장
작성일자 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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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산파교회



집에서 태어나다

저는 60년 전에 청주 석교동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형들은 먹뱅이 그 깡시골

집에서 태어났고, 청주로 분가해 나오신 부모님이 두 형들과 석교초등학교 옆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거기에서 저를 낳으셨어요. 엄마가 자주 그런 말씀하셨

지요. “애 낳으러 방에 들어갈 땐 신발을 바깥쪽 향해 가지런히 놓았다. 무사

히 몸 풀고 이 신발을 신게 하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것이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희 아이들은 깜짝 놀랍니다. “, 무슨 조선시대야?”.

애들은 가 있잖아요. 미래파 순풍파 예사랑파... 뭐에요? 원주 산부인과들

입니다. 미래산부인과 순풍산부인과. 다들 병원에서 태어나지요.

 

그런데 충격적인 일을 알게 되었어요. 제 아내는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입

니다. 한 집에서 같이 산다고 같은 종자(?)가 아니었어요. “아니 당신은 병원

에서 태어났다고? 뭐야 나는 진짜 조선시대 사람이야?” 그때 가졌던 문화적인

충격이란, 수저의 차이?

 

, 아무튼 그땐 대부분은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집에

서 애를 낳을 때 어땠을까? 진통하는 소리, 아기 첫 울음소리가 울렸을 것입

니다. 탯줄은 어떻게 끊었을까? 산후조리는? “니 엄마 산후조리 못해서 맨날

아프다 하신다”. 그래도 하나님 은혜로 이렇게 멋지고 당찬 아이가 세상에 나

오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생일이신가?” “걱정마세요. 한참 지났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이 땅에 오셨습니까? 이 자리에 스무살 된 청년들이 있습니

. 마흔이 되시고, 저처럼 육십인 분, 혹은 팔십이 넘으신 어르신들도 계십니

. 어떤 세월을 살고 있든,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 하나님 만드신 이 아름다

운 지구별에서 생명체로 눈을 껌벅이며 존재하고 있다는 것, 가장 큰 신비요

은총입니다.

 

산파들

그런데 애를 낳을 때 도와 주신 분이 계셨더군요. 할머니, 또 동네에 경험 많

은 어느 아주머니가 받았대요. ‘산파라 했지요. midwife. 제가 20여년전 우리

교회에 부임했을 때, 여기 봉산동에도 조산소가 있었지요. 산모가 애를 잘 낳

도록 도와 주고 생명을 받아 내는 산파의 집이었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에도 산파가 있었습니다. 십브라 부아(1:15). 이 이름이 출

애굽 맨 처음에 기록된 것이 놀랍습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위대한

사건이지요. (1:1)이름과 함께 시작돼요. 야곱의 아들들 12명 이름. 그래서

출애굽기를 쉐모트’, <이름의 책>이라 해요. 그만큼 이름을 중시해요. 그런데

본격적으로 출애굽을 설명하면서 처음 나오는 이름이 십브라 부아입니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는 건 엄청난 일인데, 무슨 위대한 지도자가 아녜요.

세 이름도 (2)에 가서야 나와요. 남성 중심 사회였던 당시에 여인들이, 그것

도 하찮게 여기던 애 받는 여인들 이름이. 그러니까 모세 이전에 이 두 산파

가 가장 위대한 사건 출애굽이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파예요.

명을 낳고 받는 산파, 식민지 종살이하며 죽어가던 이스라엘을 살려 낸 산파.

저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생명을 귀히 여겼고 생명을 살렸습니다(

1:18).

 

불쌍히 여기사

복음서에 예수님은 생명을 사랑하시고 그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실로 생명을

위해 이 땅에 오셨지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그래서 주님이 기적과 능력을 일으키실 때 꼭

따라붙는 마음이 있으세요. “저들을 불쌍히 여기사”. )스플랑크니조마이.

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복음서에 12번 나와요. 내장 심장이라는

뜻이에요. 단장의 애(), 심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어미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방황하는 자, 고통 당하는 자, 한마디로 죽어가는 자들이

지요. 주님은 저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마음이 가난하고 병들

어 죽어가는 자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주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온 산을 헤매십니다. 오늘도 예배하는

우리들에게 스플랑크니조마이’,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찾아 오시는 줄

믿습니다.

 

이 마음이 산파들에게 있어서 죽어가는 히브리 노예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이게 산파들의 믿음입니다. 우리 또한 이 마음과 믿음을 지녀야 해요. 왜냐하

면 이 시대도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세상을 살리는 산파교회

실로 죽음의 세상 죽음의 문화가 만연합니다. 근래에 묻지마 살인이 부쩍 늘

었지요. 사람 생명을 함부로 해합니다. 키우기 어렵다고 영아들을 내다 버립니

. 이태원에서, 오송에서, 해병대에서 고귀한 생명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좌우

이념을 떠나 생명이라는 성서의 관점에서 볼진대, 죽음의 길이요 사악한 일입

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바다가 그저 거대한 물탱크에

불과하겠지만, 바다 안에는 하나님 만드신 생명들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 갈 위험성이 있습니다.

괜찮다면 일본 어민들이 왜 만장일치로 반대하고, 원전으로부터 1km 떨어진

바다에 방류하겠어요? 도리어 방류를 옹호하고 홍보비로 수 십억을 쓰는 이

나라 대통령과 정부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죽음의 세력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까이 내 안에도 나를 죽이는 마귀가 역

사합니다. 죄와 욕심을 따라 살 때, 미움과 화가 나를 뒤흔들 때, 낙심과 절망

에 빠져 주저앉을 때, 세상 쾌락 음욕으로 내 몸과 마음이 더럽힐 때, 내 생

명은 죽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천국, 참된 생명과 복에는 멀어집니다.

를 죽이는 사탄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생명을 죽이는 세력은 담대히 거부해

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주신 생명을 강건히 지켜야 합니다.

 

생명을 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 생명을 죽이는 악의 세력을 거부

하는 마음, 이 두 마음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

은 죽임의 세력을 반대하고 저항합니다. 그 옛날 산파 십브라 부아를 통해 이

스라엘을 살렸듯, 오늘도 죽어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교회

산파 성도를 통해 생명과 구원의 역사가 가득 일어나기를 빕니다.

 



/사랑으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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