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고향

명절 연휴가 좀 긴데요, 고향에 다녀오셨는지요. 원주가 고향이셔서 고향에 오

신 분들도 계십니다. 연배 좀 되신 분들, 이때가 되면 떠오는 기억들이 있지

요. ‘시끌벅적한 사랑방, 송편, 전 부치는 냄새, 보름달, 가마솥 밥냄새, 둥근

밥상, 아버지 엄마 형제들 재잘재잘’. 그때가 살 같이 꿈 곁처럼 빠르게 지나

갔지만, 정지용은 이렇게 읊었지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저도 명절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아빠쪽 청주에, 엄마쪽 서울에 다녀옵니다.

그때마다 아이들을 생각해 봐요. 청주가 태어난 곳도 자란 곳이 아닌데, 저들

에게 고향 추석은 무슨 의미일까? 수천만이 귀성하는 풍경이 저들 때에는 사

그라 들지 않을까? 성도인 우리는 어떤 고향을 소망하며 살아야 할까요?

• 과거의 고향

첫째 고향은 ‘과거의 고향’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찾아가는 고향이지요. (히

11:15절)에는 ‘나온 바 본향’이라 했습니다. 내 몸이 거기서 나왔어요. 육신의

뿌리입니다. 부모형제가 있고 과거의 추억이 있습니다. 고향집 고향음식 고향

냄새 고향이야기. 나훈아의 고향열차 노래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돌아가셨어

도, 고향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설레고, 고향처럼 푸근한 것이 그리워집니다.

지난 금요일 추석날에, 여느 때처럼 청주 아버님 댁에서 손주들까지 함께 모

여 예배드리고 엄마 산소에 갔어요. 산소라 해봐야 엄마 이름이 적혀있는 손

바닥만 한 묘지입니다. 그 앞에서 아버지는 아직도 울컥하십니다.

“이거 보셔. 손주들 다 왔시오. 좀 일어나 보셔. 애덜 오니 사람 사는 거 같이

여.”

저도 오랜만에 그 이름 불러 보았습니다. ‘엄마~’. 세상에 제일 따스한 말이지

요. 살아 계셨다면 벌써부터 손을 잡고는, 얼굴이 상했다 힘들었지, 하셨을텐

데. 그 한마디 말에 모든 설움이 다 스러졌을 텐데.

시인 김준태는 <고향>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고향에선 눈 감고 뛰어도 /자빠지거나 넘어질 땐 /흙과 풀이 안아준다.”

그래서 이렇게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아가지요. 서울에서 부산이 10시간 걸려

도, 고속도로 갓길에서 애들 오줌을 누여도, 자동차 안에서 구차하게 배를 채

우면서도, ‘나온 바 본향’으로 귀성전쟁을 치릅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현대인의 가장 큰 불행은 ‘고향을 잃어버린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이 이 모냥이 된 것은, 서로 벽을 치고 섬이 되어 살아가는 이

유, 오늘도 패륜적인 사건사고가 생기는 이유도, 고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

그래서입니다. 고향 찾는 마음이 귀합니다. ‘고향가는 길’이 ‘고생하는 길’이지

만, 천리길 마다 않고 찾아가는 마음이 있기에 그나마 이 삭막한 세상에 온기

가 남아 있는 것 아닐까.

• 미래의 고향

그런데 고향이 그렇게 좋기만 할까요? 고향가면 모든 게 편안할까? 그렇지 않

지요. 부모님은 돌아가셨거나 점점 연로하십니다. 고향산천은 다 변했어요. 뛰

놀던 마을논밭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귀신 나올까 추억이 서려 있는 골목길

은 아스팔트가 깔렸습니다. 누가 환영해 줘요. 이쁜이 꽃분이? 이런저런 이유

로 고향 가는 일이 불편한 인생들도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어딜 가나

마음 붙일 곳 없는 나그네입니다.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 증거하

였으니”(히11:13).

<고향>

-박용철-

고향은 찾아 무얼 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흐너진데

저녁 까마귀 가을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도 옛 자리 바뀌었을라

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 생각

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길이언만

옛사랑의 생각 같은 쓰린 심사여라

육신의 고향이 좋은 곳이지만, 결코 그 곳이 온전할 수 없습니다. 거기서 고단

한 인생, 영혼의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본향, 천국을 바라봅니다. 두 번째 고양이예요.

하늘 고향 집입니다. ‘더 나은 본향’입니다.(히11:16) 우리 인생을 만드신 아버

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지요. 우리 눈에 눈물을 씻어 주실 곳, 진정한 위

로와 쉼이 있는 곳입니다.

어린 딸이 아빠에게 물었다지요.

“아빠 정말 천국이 있어요?” “그럼 있지”

“천국은 좋은 곳이에요?” “좋다마다 제일 좋은 곳이지”.

“아빠가 가봤어요?” “아니 안 가봤는데”

“그런데 어떻게 알아요?”

아빠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가만히 대답합니다.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간 사람 중에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단다.”

이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자녀에게 하는 예화인데요, 좀 커서 말귀를 알아

듣는다면 이렇게 성경대로 진실을 말해 주면 좋겠어요.

“천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단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14:1-).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어도 다시 사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단다. 그 주님을 믿는 자에게 예비하신 천국은 너무나 좋은 곳이

란다.”

성도는 그 천국 본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장례식장에서

울기도 하고 가슴 아파 하지만, 끝내는 찬송을 부르며 소망 가운데 고인을 보

냅니다. ‘더 나은 본향’으로 가기 때문이지요.

• 현재의 고향

마지막으로 고향이 하나 더 있어요. ‘오늘의 고향’입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고향, 이 땅 천국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가장 큰 주제

는 하나님 나라, 천국이지요. 첫 설교가 하나님 나라였고 마지막 십자가 또한

영원한 천국을 위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있으니, 그 나라는 미래에만 있지 않아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주께서 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눅11:20). 그 나라

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

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평안과 기쁨, 감

사와 소망이 가득한 성도들 마음 속에. ‘나온 바 본향’ 과거의 고향도 좋고,

‘더 나은 본향’ 미래의 천국도 귀합니다. 그런데 미래의 천국은 어디에서 시작

되는가? 오늘 지금 여기에서.

그러므로 우리 갈 천국은 낯선 곳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잘살든 못살든,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아 주님과 동행하며 기쁨과 감사, 천국같은 삶을 산 성도들이

가는 곳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특권이자 ‘사명’이에요.

예전에 어느 초등학교에서 이런 조사를 했대요. “외식을 몇 번 하는가?” 한

달에 한 번 하는 집,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집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얼굴이 환해서 계속 웃고 있습니다.

“너는 외식을 얼마나 자주 하는데 웃고 있니?”

“우리 집요? 일년에 딱 한 번 합니다”

“그래? 근데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고 있니?”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에요”

“그렇게 과거 고향만 찾지 말고, 미래 천국만 소망하지 말고, 오늘 네 마음에

가정에 교회에, 천국을 이루며 살라”.

고향을 찾는 이 좋은 명절에, 세 가지 고향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분명하시길

빕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