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교회(1)

• 창립기념주일

오늘 교회 생일입니다. 주보 앞면 맨 위에 창립일이 적혀 있어요. 1970년 2월

1일. 54년 전에 이곳 봉산동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봉산동은 다른 곳보

다 삶이 고단한 이들, 점집 보살집들도 많지요. 20여 년 전 제가 처음 교회에

올 때도 빨간 깃발 하얀 깃발들이 나부꼈는데, 아직도 여전합니다.

“오죽하면 교회 앞집도 무당 굿하는 보살집이었을까?”

이렇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피폐한 이곳에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셔서 반세기가

넘도록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이 때가 되면 들춰 보는 영락교회 30년사, 지난 50주년 때 만든 영상 사진들

도 열어 보았어요. 사진첩은 추억의 박물관입니다.

“와 이땐 이렇게 젊었네? 그땐 그랬구나. 이 분 살아 계셨네”.

예. 54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인생이 이곳에 오갔을까?

우리 가운데 1970년생들이 계십니다. 안병구 이명호 이숙경 집사님. 교회 나

이와 같이 가는 분들입니다. 그 집사님이 태어나던 해 교회가 세워졌다니. 초

중고, 마침내 결혼해서 지금은 자녀가 벌써 다 컸습니다. 본인도 저렇게 늙었

으니(?) 얼마나 긴 세월이에요. 50년이 넘는 동안, 이곳에 수많은 성도의 웃음

과 눈물, 수고와 헌신, 만남과 헤어짐이 오갔습니다. 그때마다 주께서 위로와

소망, 새 힘을 주시사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 어마어마한 일

교회 홈피에 담임목사 <인사말>이 있어요. 이런 시로 시작됩니다. 지난 주일

교사 강습회 때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자, 했어요.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 입니다. 사람을 상품과 수단으로 삼는 이 시대에 사람

이 온다는 것은, 그를 만나고 알아 간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 그

의 과거와 현재, 다가올 미래까지 전 생애가 오기 때문이요, 수없이 많은 날에

아파하고 부서졌을 마음이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생들이 만나고 만나 교회 역사를 이루어 왔습니다. 좋은 일만 있었을

까요? 때론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요. 무너지는 마음으로 성전 뜰을 밟

던 때도 있었습니다. 먼저 가신 분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가 그 일에 증인입니

다.

• 이야기

그걸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이야기’라. 이 본당 안에는, 저 교육관 주방에

는, 엘림 자모실 목양실에는, ‘믿음 안에서’ 그 믿음으로 살아낸 성도들의 이

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오래된 도시에 갈 때가 있지요. 경주나 안동, 수백 년이 된 유물들이 있습니

다. 그런데 눈이 가는 것은 그 골목골목을 거닐 때입니다. 이곳 구석구석에 수

백 년이 된 이야기들이 서려 있습니다. “파리가 아름다운 것은 샹젤리제 거리

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골목마다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배어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패한 이

야기도 있지요. 한숨과 탄식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믿음으로 예

배하며 힘을 낸 이야기, 그때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 이야기, 보이지 않지만 그

이야기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교회가 이 지역에 더욱 구원의 방주로, 빛과 소

금으로, 복이 되는 교회로, 그리하여 이 ‘어마어마한 만남’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감당하기를 축복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