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딧불

• 추억의 곤충

어릴 땐 어딜가나 밝지 않았지요. 논길을 거쳐 교회를 가는 길, 해가 지면 사

방이 캄캄해져서 걷기도 불편하고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때마침 휑한 들바람

이라도 불어오면, 형들에게 들었던 온갖 귀신들이 나타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논가에 반짝이던 반딧불이. 참 반갑고 신기하기조차 했지요. 한두 마리가

아니에요.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자그마한 불빛들이 수도 없이 날아들며 주

위를 밝혔습니다. 어렵지 않게 잡을 수도 있어서, 몇 마리 손바닥에 모았다가

열어 보면 마음까지 환해졌습니다. 어떻게 저 작은 몸에서 밝은 빛을 낼까?

그땐 그렇게 아무 데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지요.

서울에 올라와서는 반딧불을 볼 수 없어서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30여 년 만에 다시 보게 되었으니, 원주에 와서입니다. 아이들과 치악산 행구

동 쪽을 올라 가는데, 길가에 뭔가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고개가 돌아가

며 그 순간 떠올린 생각, 설마 반딧불이?

정말일까 싶었는데 맞았습니다. 길가 어스레한 길섶에 붕붕 대며 날아대던 반

딧불이. 그때까지만 해도 원주가 맑아서인지 쉽사리 볼 수 있었나 봅니다. 저

는 너무나 반갑고 놀라워서 얼음처럼 멈춰버렸어요. 아이들도 책에서나 읽고

듣기만 하던 귀한 곤충인지라, 반딧불 같은 눈망울로 신기하게 관찰(?)하던 기

억이 곱게 남아 있습니다.

그 이후엔 반딧불을 다시 보진 못했어요. 아마 원주도 개발로 인해 자취를 감

추었겠지요. 예전처럼 수백수천 마리 반딧불이 떼를 보려면 천연기념물로 보

존되어 있는 전북 무주 반딧불축제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나는 반딧불

여름방학, 형설지공, 고향집 밤하늘, 어울리지 않는 별칭 개똥벌레까지, 오랜

향수가 가득 묻어 있는 곤충 반딧불이. 요즘 저는 이 곤충에 푹 빠져 있습니

다. 다름 아닌 노래를 통해서입니다.

<나는 반딧불>

이 노래를 처음 듣고는 눈시울이 찔끔했습니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 노래 몇

소절에 울컥하다니. 그만큼 가사와 가락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우리는 누구나 별이었지요. 하늘에서 반짝이며 빛나는 별. 그 별이 땅에 떨어

졌으니, 얼마나 밝겠어요. 얼마나 기쁘겠어요. 아빠엄마에겐 나는 특별한 존

재, 우리는 누구나 별이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한번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요. 가지나 반딧불이를 손에

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하니, 반딧불은 뭐든 못하는게 없는 하늘의 신

비한 존재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면서 깨닫게 되었지요. 그것은 착각이었다고. 나

는 별이 아니라 벌레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하찮고 흔해 빠진 ‘개똥’이라는 이

름의 벌레. 하늘의 별과 같이 존귀하고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던 내가, 숲에

흔하디흔한 한 마리 벌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은 자신이 별이 아니라 벌레임을 알게 되는 때가 있지요. 어떤 이는 좀

빨리, 어떤 이는 좀 늦게. 그때의 실망이란, 그 보잘 것 없는 존재의 초라함이

란.

노래를 들으면서, 방황하며 헤매던 내 청춘의 때가 떠오고, 앞길이 막혀 있는

청년들과 성도들이 떠오기도 했습니다. 수능위로곡이라나? 오랫동안 무명 가

수 생활을 한 가수 황가람의 사연과도 맞물려, 가사 마디마디가 공감되었습니

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인생이라도 삶은 눈부십니

다. 하늘의 별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하늘의 별이든 땅의 벌레이든, 존재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그가 빛나고 있다면, 어두운 곳을 밝히고 있다

면, 그는 눈부신 존재입니다. 아무리 땅속의 미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만

드시고 이 땅에 내시고, 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빛나는 존재입니다. ‘잡초는

없다’, 세상에 의미 없고 소용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뽑고 보니 '잡초'가 산더미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풀들이 예사 잡초가 아니었다.

하나는 별꽃나물이고 또 하나는 광대나물이었다.

- 윤구병 <잡초는 없다> 중에서

• 개똥벌레의 탄식

노래 후반부의 가사는 금방 확 들어오진 않지만, 이해하려 보니 더 깊이 마음

에 여운을 남깁니다.

한참 동안 찾았던 내 손톱

하늘로 올라가 초승달 돼 버렸지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너무 멀리 갔죠

누가 저기 걸어놨어 누가 저기 걸어놨어

우주에서 무주로 날아온

밤하늘의 별들이 반딧불이 돼 버렸지

내가 널 만난 것처럼 마치 약속한 것처럼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다시 태어났지

툭 잘라서 던져 버린 손톱이 있지요. 얼마나 작고 무시당해요. ‘손톱의 때’만

도 못하다는 말이 있듯. 내 꿈에 대해 말하자면 큰 것도 아니고 그렇게 손톱

처럼 대수롭지도 아닌 것인데, 그조차 현실에서는 너무나 높고 먼 초승달처럼

허망한 꿈이 되어 버렸어요. 도저히 내 깜냥으론 밤하늘에 걸린 초승달만큼이

나 닿기 어려운 현실. 내가 주워 담을 수도 없이 너무 멀리 가 버린 꿈. 손톱

과 초승달의 메타포(mataphor) 라니.

무엇이 현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도대체 누가 내 꿈을 도달할 수 없는 저기

하늘에 걸어놨단 말인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안타까운 반딧불 인생의

탄식입니다.

• 괜찮아 빛날 테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요. 반딧불 인생에게 가치와 희망이란 없을까? 꿈과 현

실은 어떻게 만나서 다시 빛날 수 있을까?

노래는 무주 반딧불이 축제로 향합니다. 거기는 반딧불 세상입니다. 반딧불이

어둠을 밝힙니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별과 반딧불이 같습니다. 별은 하늘에서

어둠을 밝히고, 반딧불은 땅에서 어둠을 밝힙니다. 밤하늘의 별들이 반딧불이

되었듯, 땅의 반딧불이 밤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너’를 만난 것이지요. ‘나’는 현실 반딧불이고 ‘너’는 하늘의

별 같은 꿈. 하늘을 밝히는 별과 땅을 밝히는 반딧불, 즉 꿈과 현실이 무주에

서 만납니다. 우주의 별이 무주로 날아와 땅의 별 반딧불이 됩니다. 이제 비로

소 하찮게 보이던 개똥벌레가 누구에게도 소중하고 빛나는 별이 됩니다. 먼

하늘의 초승달 같았던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졌으니. 그렇게 반딧불이는 하늘

의 별로 다시 태어납니다.

오늘도 몇 번이고 이 노래를 들으며 ‘미투’라도 해야 할까 봅니다.

‘나는 반딧불’이라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듯, 사울이 바울되듯, 벌레같은 존재를 별처럼 높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도 별처럼 맞아 주는 가족들, 목사로 존중해

주시는 성도들께 고마운 마음 뿐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 노래에 해당하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요. 반딧불 인생 모두를

응원합니다.

“그래도 괜찮아 나는 눈부시니까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