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복란 권사님

Ⅰ

본당 들어서면 왼쪽 앞에서 다섯 번째 줄, 고인의 자리입니다. 수십여년을 한

결같이 새벽에 기도 하셨던 자리. 고인을 보내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았습니

다. 무릎을 덮으시던 알록달록한 담요, 살며시 덮어 보니 따스함이 전해 집니

다. 여기에서 강단을 바라보시며 예배하고 엎드려 기도하셨으리라.

새벽에 불 끄는 사명. 10여년 전까지 본당 불 스위치는 본당 뒤가 아니라 강

단에 있었어요. 새벽예배 마지막에 제가 대표기도할 때면, 조용히 올라와서 불

을 끄셨습니다. 고인은 이것을 큰 사명이라 여겼어요.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말

씀하셨지요.

“불끄는 사명 감당해서 이 복을 받았어요. 하나님은 틀림없는 분이시잖아요”.

어디 그 사명 뿐인가. 유치부 부장 선생님에, 전도대 대장에. 우리집 막내 영

민이가 부대에서 이 소식을 듣고는, “그 권사님, 유치부때 엄청 사랑해 주셨는

데”. 그 아이가 어느새 커서 군에 가 있는데, 그 손에 자라난 아이들이 활짝

꽃을 피웠는데. 아직도 수요전도대 노란 조키를 입고 대원들 데리고 봉산동을

누비시던 모습이 생생한데.

Ⅱ

참 당차신 분이었지요. 유명한 일화, 남편 최집사님이 한 달 봉급을 받아 오시

면 무릎 꿇고 받으셨다지요. ‘수고하셨습니다’ 인사 드리고,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합니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십일조 뚝 떼고, 용돈 드리고 생활비 제하고

나눌 것 나누셨다고. 최집사님, 일은 힘들고 몸은 고단해도 참 행복하셨겠다,

생각했습니다.

이름에 ‘복’자가 있어서인지 복도 참 많으신 분이었지요. 아니, 당신이 복을

많이 받았다고 늘 감사하며 사셨어요. 정훈이네 상훈이네, 두 며느리들 너무

좋다고. 해외출장 잦은 큰 애, 오갈 때마다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둘째 아들

목소리는 그대로 흉내 내셨어요. “엄마 걱정 말어, 기도해 주셔”. 곁에서 참

든든하다고. 재헌이 시헌이 그 예쁜 별하까지. 손주들 놓고 어찌 가실까. 어디

나들이 나가면 버스 안에서 틀림없이 부르시던 노래, ‘달아달아 밝은 달아’,

그 노래는 이제 어찌 들으라고.

갑자기, 너무나 갑자기 가셨기에 보내는 우리도 아직 꿈만 같습니다. 장례식장

에 들어서서 처음 대한 영정사진부터 눈물이었지요. 경황 중에 동네에서 누가

찍어 준 사진을 택했는데, 분명 웃는 사진인데 왜 그리 슬픈지.

“아 웃는 사진이 저리 슬플 수도 있구나”.

Ⅲ

화장터에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최집사님 곁에 앉았어요. 집사님 손을 꼭 쥐고

이러저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두 분 고향은 어디이고, 처음 만났을 때는

어땠고, 기찻길 옆에 이사올 때, 영락교회 처음 나올 때.

최집사님이 새벽에 안 가시면 권사님이 그렇게 바가지를 긁었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나갔다고. 그럼 좋아하니까. 장례 끝난 후 권사님 없이도 혼자 나오시

는 집사님, 하늘에서도 혼내실까봐? 그 오가는 길이 얼마나 홀로일까.

최집사님께 물었어요. “평생 제일 좋았던 때가 언제였어요? 1번 2번 3번”.

1번은 자식들 손주들까지 와서 같이 북적거리던 때가 제일 좋으셨다고.

그 다음은 권사님하고 어디 놀러 갔던 일이래요. 베트남, 미얀마, 중국?

“그럼 두 분이 같이 살면서 제일 힘든 때는 언제였어요?”

이건 1,2,3번이 따로 없더군요. 그냥 한 가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때입니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 말씀을 하시면서 눈시울을 적십니다. 먼저 하늘에

보낸 딸, 그것도 고1때. 이름이 ‘지혜’란 걸 처음 알았습니다. 김종태 장로님

왈, “얼굴이 하야니 참 예뻤어요”. 평생 살아 오면서 그 흔한 이름을 대할 때

마다 어떠했을까? 빛바랜 가족사진첩, 세 남매 어릴 때 사진들에 그 딸의 얼

굴도 있을텐데. 어쩌면 권사님 늘 메던 가방 저 깊숙한 곳에 딸 사진이 숨겨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입니다. 참 정이 많으셨지요. 그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을 무던히 위

로하셨습니다. 함께 손잡고 눈물 흘리며 도닥이셨습니다. 마지막 전도 열매인

‘정임’ 자매가 그렇지요. 그 어눌하고 가눌 길 없는 인생을 위해 심방도 참 많

이 하며 수고하셨습니다.

Ⅳ

일흔 두 살, 조금 더 사시지, 자식들 잘 되는 거 보고 손주들 재롱 더 보시다

가시지. 하나님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늘정원에 가장 고운 영혼들로

수놓아야 한다시기에, 함께 했던 추억이 있기에, 장례식장에 이리 많은 성도들

이 눈물로 환송하기에, 찬송을 부르며 권사님을 보냅니다.

김복란 권사님, 귀한 이름 세 글자,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이생에서 함께

한 시간들이 감사했습니다. 당신과 행복했습니다. 훗날 우리도 따라갈 때까지,

빛 바랜 사진들에 당신 얼굴 나오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잠시 머물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그리 보고픈 딸, 버선발로 나오실 유연자 권사님과 기쁜 시간

되소서. 그리고 그 곁에 김자 옥자 희자 쓰시는 청주 할머니 서성이시거든, 막

내 아들 원주에서 목회 잘하며 있다고 전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권사님.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