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단짝 친구

가까운 친구 목사가 있습니다. 신학교 때부터 단짝이었어요. 학교에서 기숙사

에서, 그림자처럼 늘 함께 다녀서 한쪽이 없으면 친구들이 물어봤어요.

“현장아, 현식이 어디 갔니?”

“몰라?”

“왜 몰라, 너네 둘이 사귀잖아.”

급기야 신대원 때는, 오랜 기숙사 생활을 청산하고 둘이 학교 밑에 방을 얻었

어요. 좁디좁은 단칸방, 웃풍은 얼마나 센지 겨울이 되면 코가 시렸습니다. 연

탄불을 자주 꺼트려 번개탄을 피워대고, 앉은뱅이 작은 상 두 개 놓으면 꽉

차던 방. 그 상에서 둘이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다 이야기 보가 터지면 밤을 새웠지요.

“이제 자자 그만 얘기하고”

그러다 또 다른 꼬투리가 잡히면 다시 두어 시간.

“이제 진짜 자자”

윗목 아랫목도 없이 누우면 어깨가 닿던, 그 방이 참 정겹고 그립습니다.

• 친구가 아프다

그후로는 서로 결혼해서, 그 친구는 제 고향 청주에서 교회를 개척해 부흥을

이루었지요. 애들도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참 복되고 평안한 인생입니다. 그가

병약해 수십 년째 간경화를 앓고 있다는 것 외에는.

그 오랜 지병 간경화. 아버지도 간암으로 일찍 가셨는데 아들이 이어받은 것

일까요. 수치가 높아지지 않도록 몸을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지금까지 환갑

이 넘도록 부부가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질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만그만해

서, 교회를 잘 돌보고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 감사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이래요. 이번엔 사모님이 아픕니다. 뇌에 종양. 다행히 악성은 아

니지만, 사이즈가 워낙 크고 오래되어, 끝내 뇌를 열어 수술을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종양이 시신경을 눌러 두 눈이 실명됐습니다. 혼자로는 집 밖에 나

갈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된 것이에요. 나아가 교회 개척 때부터 힘들었던 것

이 공황장애로, 류마티즘에 이석증에 갑상선에, 정말이지 종합병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1년여 가까이, 그 친구도 간경화가 쉽지 않지만, 사모님이 급해져서 눈

이 되고 손발이 되어 병수발하며 견뎌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저 기도만 할 뿐,

불편할까 싶어 만나자고도 못 해 왔던 터에, 며칠 전에 어렵사리 시간을 내

주어 만났습니다. 청주 어느 카페, 사모님을 두고 잠시 나온 것입니다.

• 울기만 할 뿐

오랜만에 만난 친구, 머리가 하얗게 세었습니다. 얼굴은 반쪽이 된 듯. 무거운

인생의 짐이 양쪽 어깨에 고스란히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욥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 무슨 말을 해 줄까? 단짝 친구이니 힘이 되는 어떤 말.

근데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마음 속에 담아간 말들이 무색하게.

그래도 성도들 앞에선 의연한 목사여야 하기에 꾹꾹 참아 왔던 그의 눈물이.

나는 오래 함께 한 친구로서 그 깊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고자.

서로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눈시울만 적십니다.

그 깊은 고통을 주께서 아시니

그 무너지는 마음을 만져 주시길

이해할 수 없는 폭풍이 속히 지나가길

오래전 그 작은 방에서 천정을 바라보며 하얗게 밤을 샐 때처럼,

두어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사모님이 걱정되어 서둘러 나서야 하는 시간, 우리는 부둥켜 안았습니다. 환갑

이 지난 두 목사가 정말이지 실컷 울었습니다. 어깨를 도닥이며, 힘내라고, 기

도하겠다고.

친구를 보내고도 카페 벽을 더듬어 잡고는 한참이나 눈물로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도 아니고 엎드려 그저 빌 뿐입니다. 속히 평안을 되찾아 이전

처럼 밝은 목소리로 전화하는 날이 오기를.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풀꽃>으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이 있지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분이 아파서 사경을 헤맬 때가 있었더군요. 사형선고를 받고 누워 있는 병

실. 옆에서 간호하는 아내분이 사랑과 믿음으로 이리 기도했다지요.

“하나님, 저 혼자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저 사람을 살려 주십시오”

그런 아내가 안쓰러워 쓴 시가 있어요.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산문시.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

니어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

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더불어 약과 더불어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

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장롱에 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

력밖엔 없는 여자지요. 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 밭 한 귀퉁이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는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돈을 아끼느라 꽤나 먼 시장 길도 걸어 다니고

싸구려 미장원에만 골라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잘 들어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

게 그러지 마시어요.

• 생떼라도 써서

내 할아버지할머니가 믿은 하나님, 내 아버지어머니의 하나님, 내 평생에 믿고

의지해 온 하나님. 그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기에 저도 한 소절 보탭니다. 하

나님 정말이지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제게가 아니어요. 내 친구에게, 그 아내

에게.

그 친구뿐만 아닙니다. 오늘은 아론이가 수술실에 들어갑니다. 세브란스 병원

에서 큰 수술을 합니다. 이제 겨우 돌이 지난 갓난아이가 얼마나 힘들지요. 엄

마아빠 마음은 또 어떤지요.

하나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이런 기도 불경한 줄 알지만, 하나님이 부러 그러신 게 아닌 줄도 알지만, 이

또한 뜻이 있다고 믿지만. 얍복강가 야곱처럼 혈루병 여인처럼, 무슨 옷자락이

라도 있으면 붙잡고 생떼라도 써 볼 일입니다. 가난한 자의 기도를 잘 들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제발 너무 그러지 말아 주세요.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