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담긴 꿈

• 해우소

어제 토요일에 제가 몸도 마음도 많이 간 일이 있어요.

설교 준비? 심방을 하셨나?

화장실을 많이 갔습니다. 하루종일 화장실 간 기억밖에 없어요.

보통 토요일엔 주일준비 때문에 바쁘지요. 한번 목양실 자리에 앉으면 설교

준비에 오전내내 오후내내 거의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근데 어제는 일부러 물

도 많이 먹고 화장실을 열심히 들락거렸습니다. 동물들처럼 무슨 영역 표시한

다?

예, 성전보수 사역 제일 먼저 화장실부터 새로 들였기 때문입니다. 다 뜯어내

고 새 타일에 변기며 비데, 수납장도 만들고 선반도 달아 놓았습니다. 아직 완

공되지 않았지만, 새 집 냄새가 물신 나는게 자꾸만 가보고 싶습니다. 오죽하

면 화장실에서 이불 깔고 자고 싶었어요. 좌변기에 앉아서 폭삭 아이유 표정

을 흉내내 보았습니다. ‘너~~무 좋아.’

누가 들으면 수십억 들여 교회라도 새로 지었나 하겠지만, 수천억 들였다는

시찰회 내 강남 청운교회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겨우 화장실 두 칸 들여 이리

좋은데, 교회 새로 짓고 밤에 잠자는 목사는 사람도 아니다, 는 생각.

우리 교회, 이런 소문 나면 좋겠어요. 목사님 말씀 좋은 교회?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화장실 가고 싶은 교회’. 화장실이 이름 그대로 해우소(解憂所)가 되

는 교회. 몸의 근심이 풀려서 마음과 영혼의 근심까지 덜어가는 교회.

“오늘 화장실 웨이팅 있는 거 아냐?”

• 꿈을 이루다

이 화장실을 새로이 하기까지, 오랜 한이 맺혀 있습니다. 교회 와도 화장실 불

편해서 참는다,는 말. “목사님 저는 교회 와서 화장실 안가요”.

사실 그랬지요. 화장실 수준이 생활수준이라 말하는데, 좀 누추하긴 했습니다.

특히 청년들 사춘기 교회학교 아이들은 속편히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했지요.

그 말을 들은 후로는, 다른 교회 가면 다른 거 안보였어요. 화장실. 칸칸이 비

데에 손씻는 세면대까지, 센스있는 화장실이 참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손 볼 곳이 참 많지만, 사실 목양실도 너무 오래되어 급하

고 당회실도 하나 없지만, 무엇보다 먼저 화장실을 새로이 한 것입니다.

이제 그 한을 풀었어요. 사실은 꿈을 이루었다, 생각합니다.

화장실에 무슨 꿈이 서려 있나?

화장실뿐만 아니라 교회 건물이 꽤 오래되었습니다. 요즘 트렌드로 하면 부흥

할 수 없는 조건이지요. 어르신도 그렇지만 젊은 분들, 어디 가면 깨끗하고 멋

진 카페를 찾고 거기에 잘 어울리는 분들인데, 교회가 소위 좀 후집니다. 그래

도 ‘세상에 교회는 원주영락교회 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성전에 오르시는 성

도들을 보면, 담임목사로서 너무나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교회 건물이 후지다고, 교회가 후진 건 아닙니다.

건물이 낡았다고 사람이 낡은 건 결코 아닙니다.

오래 묵은 장맛처럼 깊은 맛을 내는 교회!

• 목사의 호들갑

목사의 꿈이 있어요. 때가 되면 교회 건축하는 꿈입니다. 그래서 더욱 부흥하

는 꿈입니다. 그런데 교회 건축은 당장 이룰 꿈은 아니지만, 부흥하는 꿈은 나

중으로 미루지 않습니다. 건물 때문에 부흥하지 못한다, 는 핑계일 뿐이지요.

건물이 후져도 부흥하는 꿈을 매일 꾸고 매 주일마다 조금씩 이뤄 가고 있습

니다.

그 꿈이 화장실에 담겨 있어요. 당장 교회를 짓진 못해서 화장실만 보수하지

만, 부흥하는 교회를 이루리라. 다른 곳보다 화장실을 먼저 생각하는 교회, 화

장실만 깨끗해도 우리 교회는 부흥한다!

이제 화장실 공사를 마치면 로비도 마당도 자모실 뒤편 제2교육관까지, 조금

씩 손 보고자 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또한 마음을 드려 헌금해 주시는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화장실 겨우 한 칸 들이고 목사의 호들갑이 산을 넘는 김에,

화장실 보러 교회 오시라고, 화장실을 동네에 개방한다고 현수막 붙일까?

내 교회 화장실 귀하듯, 시골 교회 화장실 한 곳 보수해 드리면 어떻까?

예쁘게 지어가십시다. 화장실도 교회도, 우리 마음도 신앙도 인생도.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