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질 수 있나!”

• 마음속으로 한 대답 

아무도 없는 예배당, 강단 십자가 아래에 꿇어 앉았습니다.

사순절 절기에 맞추어 <고난>에 대한 찬양을 부릅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니 성도 대답하였다”...♫

오랫동안 참 좋아하며 불러 온 찬양이에요.

온 맘으로 부르니 찬양의 은혜가 성전에 가득 퍼졌습니다.

한참 부르고 있는데 문득 주께서 내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최목사, 십자가를 질 수 있나?”

갑자기 부르던 찬양을 멈추었습니다.

“예?”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정말 내 십자가를 질 수 있겠어?”

“...”

“...아이참, 주님, 왜 또 불편한 거 물으세요. 아시잖아요. 그건 옛 성도들 

이나 했던 고백이지요. 그땐 먹고 살기 힘들고 붙잡을 것도 별로 없었으 

니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요.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어요. 이리도 편한 세 

상이 되었는데 십자가는요.  

보세요. 사자굴도 없고 풀무불도 없습니다. 이슬람 세력도 나치 군도 없 

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고요? 글쎄요. 현대는 ‘자기실현’의 시대에요. 자기부 

인은 인간 본성에 맞지도 않고 현대사조에도 어울리지 않아요. 그건 바 

울 같은 성인들이나 할 수 있지 우리 같은 범인들은 불가능한 말씀이지 

요.  

이렇게 믿으면 안 될까요? 좀 편안한 자리에 앉아(물론 마음만은 골고 

다에 두겠습니다요), 아름다운 찬양을 음미하고 영광된 십자가를 관조( 

觀照)하며, 부자의 ‘두 렙돈(?)’만 준비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 십자가를 질 수 있냐고 물어 보지 마세요. 좀 불편해요...”

그 십자가 지기 싫다고, 이유도 많고 핑계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십자가를 그저 ‘바라봄’으로 십자가 ‘지는 것’을 대신합니

다. 이맘때가 되면 십자가에 대한 약간은 불편한(?) 설교를 들어 줌으로 자

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때웁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베데스다 연못 서쪽에는 ‘브라이도리온(Praetorium)’이라

는 뜰이 있습니다(막15:16절). 예수께서 처음 십자가를 지시고 출발하신 장

소이지요. 이 뜰에 작은 기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념교회의 정문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고 하지요.

“너도 질 수 있느냐”

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너 정말로 질 수 있느냐?”

• 내 몫에 태인 십자가

이 시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옛날처럼 십자가로 사람을 죽이는 사형제도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십자가 처형은 없으니 그 대신 ‘교수형’이나 ‘태형’을 받

으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지요. 십자가를 지기 위해 팔레스타인 골고다 언덕

을 다시 찾아야 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바로 자존심 상하고, 마음 아프고 괴롭고 핍박을 받는 일,

남을 위하여 나를 죽이고 머리 숙여야만 하는 일,

온 인류는 아니지만 내게 맡겨 주신 영혼을 사랑하는 일,

때론 그것이 가족과 이웃, 교회와 성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에겐 장애를 가진 자녀가 십자가가 됩니다.

사도 바울에겐 내 몸을 찌르는 ‘가시’가 십자가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워어스(Stanley Hauerewas) 교수에겐

우울증을 앓는 아내가 십자가였습니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하느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 하라고

병을 주셨다.

행복해 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다.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맘속에는 진작에 표현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미국 뉴욕대 부속병원 재활센터 입구 벽에 새겨져 있는 싯구입니다. 제십자

가를 잘 짊어질 때 끝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는 고백이지요.

• 제십자가를 지고

주께서 내게 주신 자기 십자가를 잘 지고 가고 계십니까? 잘 지고 가는 것

같다가도 성질만 건드리면 십자가를 내동댕이치고 있지는 않는지요.

누구든지 그가 사는 곳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제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는 예

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묵상으로 명상으로 대신할 수 없

습니다.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 피하고 싶은 그것, 그것이 바로 당신의

십자가 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

내일, 사순절 셋째 주일에 부를 찬송인데,

나는 이 찬송을 제대로 부를 수 있을까요?

당신은 어떠십니까?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