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예수”

자고로 똑똑한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입니다. 바보, 즉 모자라거나 미련한 사

람은 경쟁에서 뒤쳐지지요. 저마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며 삽니다.

부모들은 영재교육이다 뭐다 해서 유치원 때부터 자녀들을 ‘똑똑이’ 교육에

몰아넣습니다. 실제로 남보다 어학이나 각종 스펙에서 앞서 나가는 아이들

이 좋은 대학에 가지요. 세상은 자기 잇속에 밝고 출세를 위해서라면 한 치

의 양보나 사정도 봐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큰 소리

칩니다. 교회들조차 세류에 편승해서, 성공하여 고지를 점령하라는 고지론(高

地論)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똑똑하다 못해 영약한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바보 같은

사람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 바보 같으신 말씀

그런 세상의 잣대로 본다면 우리 주님은 참 바보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높아지려면 낮아지라,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는 자가 되라, 주는 자가 받

는 자보다 복되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속옷을 갖고자 하

는 자에게는 겉옷도 갖게 하고,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동행해

주어라...”

나아가 예수님은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원수가 곤경에 처했을 때 오히려 도

와주고, 그가 배고프면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서로에게 오해가 있고

다툼 원망과 미움이 있을 때,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을지라도 먼저 손을 내밀

어 화해하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아니 이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말씀들은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 참 바보 같은 말씀들입니다. 상식으

로는 받아드릴 수 없는 불합리한 것들로 보입니다.

세상은 높아지려면 남을 넘어지게 하고, 섬김을 받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과 권력을 가져야 합니다. 주는 것은 적고 받는 것이 많아야

부자가 되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내 대신 희생하기를 원하는

곳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의 말씀들은 지키기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현실성도

없어 보입니다. 만일 이러한 주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다면 세상은 우리

보고 ‘바보들’ 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이고 가르침입니다.

• 바보 같으신 삶

예수님은 말씀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 그대로 바보처럼 사셨습

니다.

오병이어 기적 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지만 그 자리를 피

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문둥병자를 고쳐 주신 후에는 아무에게

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까지 하셨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에는 수건을 두르

시사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백성들의 환호와 호산나 찬송 소리를 들으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지만,

그 인기에 마음 연연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십자가에 전

념하셨습니다. 골고다에서는 순한 양처럼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채 로마

군병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얼굴에 더러운 침을

뱉고 모욕을 하고 손바닥으로 뺨을 치며 온갖 조롱을 가해도 아무런 대꾸나

항변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에는

진정 바보로 보였을 것입니다.

바보처럼 말씀하신바 그대로 사셨던, 바보 예수님이십니다.

하긴 예수님의 이런 바보 같은 말씀과 삶은 이 땅에 오신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바이니(엡1:3-), 참으로 바보 같으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 사람 되신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은 바보 중에 으뜸가는 일이었습니

다. 이 땅에 어느 신이 피조물들을 구하고자 하늘에서 피조물의 몸을 입고

와서 피조물들에게 죽으신단 말입니까?

그렇게 바보로 왔다 바보로 사시고 바보처럼 죽으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으시고 끝나신 것이 아니었지요. 주님은 무덤에서 썩지 않

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바보 같으셨던

예수님의 말씀과 삶은 결코 정말 어리석고 미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가장 지혜로운 말씀이요 가장 능력 있는 삶이셨습니다. 부활하심이 이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바보가 아니라 하늘의 바보요 거룩한 바

보이셨습니다.

(고전1: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성경에 바보처럼 산 사람들

그렇게 바보처럼 이 땅에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모든 그리스도

인들이 세상에서 진정 거룩한 바보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진짜 그리스도인

들은 성경이 말하는 바보가 되어야 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바보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창26장)에 이삭이 그러했습니다. 그가 힘겹게 우물을 파면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았습니다. 이에 이삭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은 채 그랄 골짜기로 옮

겨 가지요. 약삭빠른 사람들 눈에 이삭은 참 바보처럼 보이지 않았을까요? 

이삭의 마음에도 불쑥불쑥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았을까?   

“한번이면 족하지 도대체 몇 번이야. 언제까지 나보고 참으라는 거야.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황소처럼 뿔로  

보란 듯이 한번 박아 봐? 그래야지 내 위신도 설 거 아니야?”   

그러나 이삭은 그러질 않았습니다. 이삭은 잠잠히 또 다른 우물을 팝니다.

다툼이 일어나면 피하여 다른 우물을 파고 또 그리하고.

이러한 이삭을 보고 목자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 주인은 도대체 왜 저렇게 유약해. 사내대장부가 말 한마디  

못하고 계속 도망만 치고, 자존심도 없나. 괜히 주인 잘못 만나서 우리 

까지 고생이잖아.  

배짱 두둑하고 남자다운 큰아들 에서도 고개를 치켜들지 않았을까요?

“아휴! 답답해. 도대체 아버지는 왜 바보같이 맞서 싸워 보지도 않고,  

피하기만 하실까. 나 같으면 코뿔소처럼 한번 받아 볼 텐데, 정말 아 

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러나 이삭은 다른 곳으로 가서 딱딱한 땅을 일구며 또다시 우물을 팝니

다. ‘르호봇’. 그제야 다툼이 멈췄습니다. 이삭은 종의 형체를 입기까지 낮아

지셨던 주님의 겸손을 몸소 인내를 통해 배우고 있었습니다.

이삭 뿐만이 아닙니다. 다윗 왕은 기쁨이 충만하여 옷이 흘러내리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추다가 아내에게 바보 취급을 당했습 

니다. 많은 선지자들도 어떤 시각에서는 미친 짓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사야는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돌아 다녀야 했고,  

예레미야는 목에 나무로 만든 멍에를 건 채 한 세대 동안 웃음거리가 되어야 

했고, 에스겔은 공중 앞에서 배설물을 먹어야 했고, 호세아는 창녀와 결혼해 

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수없이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Loyola)의 말을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그 분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바보로 취급받기를 원해야 하고, 그 분 

의 옷을 입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Os Guinness, <소명 The Call>, 336쪽)

• 헨리 나우웬, 바보처럼 산 사람

이 시대 또 한 명의 바보가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H. M. Nouwen) 

캐나다에 장애인 10여명이 모여 거주하고 있는 라르쉬(L'Arche) 공동체가

있습니다. 여기에 ‘아담’이라는 정신지체를 가진 청년이 있었습니다. 간질발

작이 잦았고, 말을 할 수 없으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항상 곁에

서 누군가 돌봐 줘야 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아담은

무능력자이고, 장애인이며, 바보 같았습니다. 그러나 헨리 나우웬은 아담을

만나고 나서는 예수님의 형상을 그대로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나누웬이 예일과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가 갑자기 장애인과 봉사자

몇이 모여 사는 라르쉬 공동체에 들어가겠다고 말했을 때, 그의 동료들은

바보 같은 결정에 놀라면서 극구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공동체에 와서 장애아 아담과 몇 년간을 함께 살면서 그를

스승으로 만났고 친구로 또 죄를 깨닫게 하고 참다운 삶의 방향을 가르쳐

준 안내자였다고 합니다.

최고의 대학 교수가 정신지체 청년과 함께 하며 그에게 인생을 배웠다니,

실로 그는 바보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사회가 어지러운 것은 고상한 신분의 상류인사들이나, 학식

이 풍부한 지식인이나, 존경 받을 만한 원로, 돈 많은 부자, 가르침을 받을 만 

한  '똑똑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거룩한 바보들이 없어서 인 것은 아닌지요.

• 바보가 그리운 세상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에도 이렇게 바보처럼 살려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예

수님 때문에 잘 되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많아도, 예수님 때문에 바보처럼 살

려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누가 참된 예수님의 제

자일까요?

돌이켜 보면,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복을 받은 사

람들입니다. 이제 더 나아가 예수님 때문에 거룩한 바보처럼 살아야 하겠습니

다. 바보처럼 살다 간 예수님을 본받아, 바보처럼 사는 자가 참된 그리스도인

입니다.

오래된 말이지요. ‘바보’란 ‘바라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이라’.  

맞습니다. 바보 예수님은 우리가 바라볼수록 보고 싶은 분이요 본받고 싶은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바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바라볼 수록 보고 싶은 사람.  그것은 진짜 바보가 아니라 거룩한 바보이라.

아! 나는 주님 위한 거룩한 바보로 살고 싶은데

왜 나는 이리도 나를 위한 똑똑이로 살고 있는지,

언제쯤이면 예수님을 온전히 닮은 하늘을 소망하는  

큰 바보들의 대열에 낄 수 있을지.  

사순절 또 한 날을 보내며 

예수님을 닮은 참 바보가 그리운 날들입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