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黙想), 눈 마주치기

• 아빠의 엉뚱한 조건, 눈싸움

어제는 막내 영민이에게 ‘끝내’ 자전거를 사주었습니다.

몇 주 전에 아빠 큰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났었어요. 119까지 출동해 성

지병원 응급실에 갔는데요, 얼굴이 심히 뭉그러졌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았

지만 아직도 한쪽 눈 위아래에 자국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 한 동안은 자전거 타는 것을 무서워 했었는데, 이제 다시 용기가

났나 봅니다. 며칠 전부터 배째라(?)는 식으로 자전거 타령을 해 왔던 것이었

지요.

마침 어린이날을 맞기도 했고 청주 할아버지의 엄명도 있고 해서, 큰 맘 먹

고 사 준 것입니다. 기획상품으로 싸게 파는 것을 사느라 원하는 빨간 색깔

을 사지는 못했지만, 얼마나 좋아하는지 시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 합니다.

그런데 자전거 사 주는 대신 아빠의 조건(terms)이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눈

싸움(?) 입니다. 한 겨울에 하는 눈싸움 말고, 서로의 눈을 쳐다 보며 눈을 깜 

빡이지 않고 오래 견디는 눈싸움! 그 눈싸움을 아빠와 자주 하는 것이 자전거

사주는 조건이었습니다.

조건 치고는 좀 엉뚱하지요? 보통은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다든지, 공부를

열심히 한다든지 하는 것이 큰 거 사주는 조건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영민이와 눈싸움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

실은 눈싸움을 가장한 ‘눈맞추기’이라.

어쩌면 세월호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눈 속에는 무엇이 있다

세 아이들이 어렸을 땐 눈싸움, 눈맞추기 참 많이 했었지요.

아직도 아내 모습이 생생합니다. 어린 갓난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노는 것입

니다. 그 눈망울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하루종일이라도 들여다 볼 세입니

다. 어린 자녀 눈망울만 쳐다 봐도 모든 시름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 눈 속

엔 기쁨이 있고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10개월의 고통을 잊게 해 주는

눈맞춤입니다.

이젠 아이들 어느새 다 컸다고 눈싸움 같은 건 시큰둥해서 손사래를 칩니

다. 사춘기 중2 누나에게 눈싸움을 하자면, 아마 고개를 홱 돌리고 도망갈

것입니다. 공부에 절어 있는 고3 큰 애는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할 지도 모

르겠습니다.

(아내요? 글쎄요. 아내는 아마 눈을 크게 뜨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네? 그게 불편해서 말 안한다?!)

그래서 자전거를 사준 어젯밤에 영민이와 한참이나 눈싸움을 했습니다.

물론 자꾸 자전거에 눈이 가서 그 눈을 돌리느라 애는 썼지만요.

눈싸움을 한참 하다 보니, 그 눈 속에 아이 마음이 보이는 듯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보는 영민이 눈은 참 맑았습니다. 깨끗했습니다. ‘이 녀

석 눈이 참 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아이 눈 속에 순수함이 있

습니다. 그 속에 아빠를 사랑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라면서 어찌하여 그 어릴 때 순수한 눈망울을 잃어 갈까요? 욕

심과 고집으로 핏기가 서리고, 독기를 품어 검게 물들어 가며, 세상에 취해

초점을 잃어 가는 것일까요? 왜 커가면서 점점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일까요? 그래서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요?

• 눈맞춤의 대화

상대방의 혈관에서 사랑의 호르몬인 페닌에틸아민(phenylethlamine)을 솟구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연구하던 미국의 심리학자 캘러먼과 루이스는 1989년 그들

나름대로 낭만적인 실험을 합니다. 생면부지의 남녀 48명을 모집하고 한 그룹에는

특별한 지시 없이, 다른 한 그룹에는 2분간 상대의 ‘눈’을 바라보게 한 것입니다.

2분 후, 특별한 지시가 없었던 그룹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서로 상대의 눈을 바

라보았던 그룹에서는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눈이 참 예쁘더군요.”,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설레었어요.” 등의 반응을 보여 서로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에서 나오는 무언가가 서로의 교감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눈은 영혼의 문이고 영혼 안에 있는 영이 눈을 통해서 말보다도 몇

배나 강한 유대감을 형성해 주는 것입니다.

인터넷 자료<사랑의 호르몬 페닐에틸아민과 눈맞춤>참고,  

(http://dipoist.blog.me/20200901621)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알리고 싶거든 눈싸움을 해보라고 합니다. 서로 상대

의 눈을 응시하면서 반드시 좋은 감정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대화의 85%

이상을 눈맞춤으로 하라.

• 묵상, 내 안에 너 있다!

그렇게 영민이랑 눈맞추기를 하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영민이 그 큰 눈망울 속에 아빠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빠 눈

속에도 영민이 얼굴이 들어 있었겠지요. 아빠 눈 속에 있는 자기 얼굴을 보

고는 영민이가 웃습니다. 아빠도 영민이 눈 속에 들어 있는 아빠 모습을 보

고 웃음 집니다.

“영민아, 아빠 눈망울 속에 네 얼굴 보여?”

“응, 보여. 그 눈속에 내가 있어. 아빠도 내 눈 속에 아빠가 보여?”

“그럼, 네 눈 속에 아빠가 들어 있어”

“히히. 내 안에 아빠 있네?”

“그래, 내 안에 너 있다!”

아빠가 영민이 안에, 영민이가 아빠 안에 있는 것, 하나됨입니다.

그렇게 하나되어 눈을 마주치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 묵상(黙想) 입니다.

묵상(contemplation)이란, 말씀을 읽고 새기고 기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주님을 응시(凝視)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 눈 팔지 않고 주님만

을 바라보다가,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보고 느끼고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 최고의 영성 신학자 리처드 포스터(R. J .Foster)는 <생수의

강 Stream of Living Water>에서, 기독교 영성의 여섯 가지 위대한 전통 가

운데 ‘묵상의 전통’을 첫 번째로 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묵상적 생활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한결같은 응시이다.”

(82쪽)

“저는 그저 단순하게 사랑으로 저의 시선을 하나님께만 두고 삽니다. 그것은

실제적이고 끊임이 없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제 영혼의 은밀한 체험입니다”

로렌스 형제, (86쪽)

“질문:묵상의 전통이란 무엇인가?

해답:하나님을 사랑스럽게 주목하는 삶이다” (94쪽)

• 주님과 눈맞추기

오늘 우리 시대 예수님과 눈마주치기, 묵상이 필요합니다.

그날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은 것은, 어떤 거래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그 진실된 눈을 마주쳤기 때문은 아닐까요. 세상 헛된 것

을 놓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그 예수님의 눈 말입니다.

그래서 (히12:2절)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합니

다. 눈을 마주치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말입니다.

“나는 매일 주님과 눈을 마주치리라”.

나의 이 하루 묵상점검표에 모두 동그라미가 그려질 날을 바라봅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