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보리밥이어요!

• 보리밭 사잇길로

교회 옆 철길 굴따리를 넘어서서 한참을 가다보면, 정겨운 밭이 한 곳 나옵 

니다.  

보리밭!

예. 요즘 깊은 시골에 가도 찾기가 쉽지 않은 보리밭입니다.

겨울을 지나 초여름까지, 자그마한 보리밭의 물결이 <천사의 집> 일대 개륜 

마을에 눈에 띄게 넘실거렸지요. 봄내내 점점 키가 자라고 푸른빛을 더해 가 

더니, 마침내 6월에 구수한 냄새와 함께 들판을 황금빛으로 물들였습니다.  

결국 얼마 전에 보리 추수를 다 끝냈고, 이제는 튼실한 콩들이 한참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연배가 웬만큼 되신 분들은 이 보리밭에 대한 향수가 깊지요.

추위에 잘 견디는 보리는, 겨울의 끝 무렵이면 잔설이 섞여 있는 밭에 꿋꿋

한 싹을 틔웁니다.

그러면 마을마다 보리밟기를 했지요. 초등학교에서도 봉사활동으로 보리밟 

기를 했어요. 차근차근 밟고 또 밟아야 이삭이 잘 팬다는 선생님 말씀이 뭔 

지도 모른 채, 친구들과 삼삼오오 보리를 꼭꼭 다지듯 밟았습니다.  

키만큼 자란 보리밭에는 문둥이가 살아 여자애들을 잡아 간다는 괴상망측한

소문 때문에 멀리 돌아서 가기도 한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어릴 때 부모님 앞에서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이 보리밭 노래를 자

주 부르곤 했습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아직도 보리밭에 불던 그 바람소리가 아스라이 느껴집니다. 배고픈 백성들

에게 희망을 주고, 긴긴 여름 허리에 미끄덩한 보리밥을 먹으며 가을을 기

다리게 하던, 그 누렇게 익은 보리밭 사이로 걷던 발걸음이 새록새록합니다.  

• 맥추와 보릿고개

갑자기 보리밭 생각이 난 것은, 이번 주일이 맥추감사주일이기 때문입니다.

맥추(麥秋)는 글자 그대로 보리를 추수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추억 속에 이름이 되었지만,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지요. 일제 시

대를 거쳐 6,25와 1950, 60년대 배고프던 시절 말입니다. 봄을 지나면서 작

년에 수확한 양식은 다 떨어졌고,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는 아직 먼 5-6월

동안을 어떻게든 ‘목구멍에 풀칠’을 하면서 견뎌야 했었습니다.

그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감자나 나무껍질, 나

무뿌리 등을 먹으며 겨우 연명해 가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보릿

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라는 말도 있었다지요.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아직 덜 익은 보리 모가지를 잘라내서, 불에 그슬려

손바닥에 비벼 호호 불어 먹곤 했었지요. 입언저리가 시커멓도록 말입니다.

보리 석 섬에 열 살배기 어린 딸을 읍내 부잣집에 식모로 보내고, 호롱불

앞 밥상머리에서 온 식구가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는, 지금으로서는 소설에

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렇게 배고팠던 보릿고개를 지나 드디어 보리를 추수하게 됩니다. 그때 농

부의 심정이 얼마나 좋고 감사했을까요?

그만큼 보리는 우리 민족에게 배고픈 여름을 나게 하는 힘이었으며, 희망과

기다림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 보리밥 풀 입가에 붙이고

이제 갓 오십대를 넘긴 저희들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7, 8월 요맘때 꽁보리밥 참 많이 먹었지요. 저희 엄니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박

여 있으셨어요. 보리쌀을 질그릇 파내기에 응깨면 미끈미끈한 보리밥이 그나

마 꼬돌꼬돌해져 맛이 났기 때문입니다.

쌀이 귀한 지라 할아버지 할머니 공기에는 쌀을 조금씩 얹어서 드리고, 나

머지 자손들은 아주 꽁보리밥을 먹었습니다. 보리밥에 열무김치 고추장 넣

고 된장찌개해서 썩썩 비벼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요, 우리는 큰 양푼에

보리밥 비비기 선수들이었습니다. 형들과 함께 삼형제가 달려들면 순식간에

빈 양푼을 엄마에게 내밀었지요. 그리고는 바가지에 맹물을 벌컥벌컥 먹으

면 정말 힘이 솟았습니다.

초등학교때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했습니다. 보리혼식을 장려하기 위함

이었지요. 그래도 70년대에는 하얀 쌀밥 구경을 할 정도로 살만 해져서, 도

시락 밑에는 쌀밥, 위에는 살짝 보리잡곡밥을 얹은 ‘위장도시락’을 싸가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너나없이 꾀죄죄하게 보리밥 밥풀 한 개 쯤은 입가에 붙이고 있

었던 친구들 얼굴이 두둥실 떠오릅니다.

물론 저 역시 그 옛날 보릿고개 세대는 아니고 그 뒤를 잇는 잡곡고개? 세 

대이지만, 보릿고개가 어디 있는 고개냐고 묻는 요즘 아이들이 이 꺼끌한

보리밥에 담긴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릴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보리밥은

보릿고개의 추억을 간직한 세대의 특별메뉴로서, 혹은 웰빙식품이 되어 가

끔씩 먹어 주는 별미가 되었을 뿐입니다.  

• 보릿고개를 잊지마라 

그러나 보리 먹던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때 허리끈을 졸라매며 헤 

쳐 나온 세대가 우리 곁에 ‘어르신들’ 아닙니까?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 

하던 시대의 증인들에게 감사해야 하지요. 우리가 그 분들 품안에서 자라난  

것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보리고개때 우리 민족을 견뎌내게 하시고, 보리를 허락하사 춘궁 

기(春窮期)를 건너가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보리는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요 곡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리농사를 마치고 그 결실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그 말씀을 따라 오랫동안 매년 7월 첫째 주일을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반년을 보내고 7월을 맞는 지금, 한해 농 

사 중 가장 빨리 수확하는 작물이 보리입니다. 보리가 첫 수확이어서, 맥추 

절을 초실절(first harvest)이라고도 합니다. 즉 첫 번째 수확을 거둘 수 있도 

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맥추감사주일 점심은 보리밥입니다. 제가 봉사부에 특 

별히 주문을 했어요. 보리밥만 보면 진저리가 나는 어르신들이 계시겠지만,  

꺼끌꺼끌한 보리쌀을 골라내는 아이들이 있을까 걱정되지만, 힘들고 어려웠 

던 지난 시절을 잊지 않고 감사로 새롭게 시작하는 성도들의 힘차고 정겨운  

식탁이 될 것입니다.  

아참, 이런 생각을 하며 보리밥을 먹는 것은 어떨까요?

“혹 지금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보리밟기’를 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2014년 7월 첫 주일, 맥추감사절을 맞은 성도 여러분,

반 년 동안 여러 모양의 보리를 키워 오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7월부터 시작되는 하반기, 어떤 일들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어떤 보리 

밟기로 우리를 훈련하실까요?  

감사로 다시 시작하십시다. 감사가 최고의 믿음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

니라...” (출23:16절)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