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인 수련회(1)

• 밤새 잠은 오지 않고

수련회 둘째 날 새벽.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 그 험한 바람소리에 연신 창문

은 덜컹이고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 초목들이 다 쓰러지는 듯. 예보대로  

태풍이 지나가나 보다.  

시계를 보니 3시. 불연 듯 오늘 프로그램들이 스친다. 오전은 실내 특강이니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물놀이에 저녁에는 캠프화이어까지.

날씨가 좋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처럼 바람이 심하게 분다면?

혹 장대비가 내린다면? 어제도 물이 차가워서 아이들이 풀에 들어가기 주저

하던데.

이 밤, 어르신들은 잘 주무시는지. 힘들어하던 지수는 어떤지.

아, 하나님! 주께 맡깁니다. 돌보소서.

윤성호 목사님. 한우리교회 교육전도사 시절 담임목사님이셨다. 덕분에 촌놈

이 강남 역삼동 비싼 땅에서 놀아 봤다. 열 평짜리 영동아파트가 ‘억억’하던

때이니 오죽했으랴. 무엇보다 ‘/사랑으로 윤목사’ 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신 목

사님. 그래서이다. ‘/사랑으로 샘물’ 은 거기서 나왔다.

20년을 뛰어 넘어 만난 목사님 모습은 그때 그대로이시다. 구수한 남도 사

투리와 유머러스한 위트, 그러면서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말씀으로 성도들

에게 깊은 은혜를 주셨다. 말씀을 잘근잘근 씹어 먹는 느낌이랄까.

9시에 시작한 특강이 거반 12시에 끝났다. 2시간 반의 열강이란. 영락교회

수련회 역사상 아마 전무후무한 일일게다. 칠순이 다 되신 목사님도 대단하

시고 불편한 바닥인데도 움직이지 않고 끝까지 경청해 준 성도들도 고맙기

만 했다.

• 목사 대신 엎드려!

특강에 심취해 잊어버리고 있었던 날씨였다.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 보니 감

사였다. 많이 잦아들었다. 무엇보다 센 바람이 없어졌다.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쨍쨍하진 않았지만 날도 많이 개었다. 후끈하게 더운 분위기도

느껴진다. 운동장을 보니 어느새 풀장에 들어가 물놀이 하는 아이들도 보인

다. 감사 또 감사였다.  

그래!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였나보다. 간밤에 천둥이 먹구름 속에 

서 그렇게 울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땡볕보다 이 날씨가 더 좋아요”

어느 집사님의 이 말에 힘을 얻는다. 땡볕을 가리시는 하나님! 

‘보우팅’, 우리는 배를 타고 다섯이 한 조가 되어 청평호반을 누볐다.

난생 처음 타보는 모터보트. 무슨 영화 같은 데서만 보던 우린 촌놈촌*들

아닌가! 무섭다는 건 괜한 염려였고, 물살을 가르는 기분은 힘차게 날아오를

듯.

하늘높이 솟아오른 산봉우리들, 산허리를 휘감고 흐르는 물살, 적당히 구름

으로 가려진 하늘, 물위를 날아다니는 수상보트들, 무섭다는 건지 즐겁다는

건지 성도들 비명소리는 끝없이 이어졌다.

문제는 두 번째 보트였다. 일명 ‘물썰매’. 그건 보기에도 좀 불안했는데, 특

히 앞에 한 사람이 납작 엎드려야 한단다. 그건 얼마나 무서운지 다들 손사

래를 젓는다.

근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 은혜 없는 권사는(^^) 목사한테 앞에 엎드려야 한

다고 채근한다ㅠㅠ. 하긴 윤목사님 설교 중에 목사가 종‘님’이 아니라 종‘놈’

이라 했으니 엎드리는 건 맞긴 맞는데.

그래도 난 도저히 못했다. 나도 이제 군번이 지천명을 넘어섰잖은가?^^

급기야 대타가 정해졌다. 강민희 집사가 목사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 자원한

건 아니고 억지로 떠밀린 듯? 암튼 강집사는 정말 천사다. 너무 예뻐서 조

집사님 장가 잘 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목사 대신 물썰매 앞에 엎드려 물

벼락을 맞는 건 순교에 버금가는 것이리라.

“복받을거야 그대”.

• 잘~ 노는 영락교회

근데 문제는 앞에 엎드린 강집사님이 아니었다. 강집사는 출발하자 얼마나

재미있어 하는지 해병대 나온 게 분명하다.  

(우리 교회 해병대 출신 여성들이 몇 있긴 있다)

진짜 문제는 뒤에 탄 아내였으니. 아내가 갑자기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았다. 어째 순풍순풍 잘 따라온다 했지. 내가 안다. 아내가 얼마나 무

서움을 타는지. 한번 무서움의 마법에 걸리면 공포에 쩐다. 사실 첫 번째 보

트 타는 것도 기적 중에 기적이었다. 물썰매가 출발하려 하자 그 무서움이

밀려 왔나 보다.

“여보! 나나.. 어떻게요 무서워.”

20년 살면서 ‘여보’ 소리가 그렇게 애절한 적은 처음이다. 뒤를 돌아보니 정

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얼굴에 물기인줄 알았더니 우느라 범벅이 된

눈물이다.

근데 어쩌라고. 배는 떠났는데. 앞에서는 무작정 달리는데. 내가 뒤로 갈 수

도 없고. 앞에는 엎드린 강집사님 신난다는 비명소리, 뒤에는 무섭다는 아내

의 울음소리, 그 옆에 이숙경 집사는 괜찮다고 안심시키느라 연신 달래고.

나? 난 몰라. 그저 즐겁기만 한 수련회!

수없이 오간 보트들, 물가 저쪽에서는 놀이기구를 타는 젊은 아이들, 운동장

풀장에서는 조무래기들, 탁구장에서 족구장에서, 그리고 나오지는 못하시고

저녁발표를 준비하시는 어르신들...

그렇게 하나님께서 깔아 놓으신 멍석 이곳저곳에서, 영락 성도들이 여름을

힘차게 지치고 있었다. 그곳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래, 그 구호 그대로다.

“비가와도! 햇볕쨍쨍해도! 우린 잘~~논다!”

(계속)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