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방한에 즈음하여>

• 교황을 맞는 두 마음

플래카드라도 걸어야 하나 했어요. 교황의 오심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한 뿌리를 가진 형제 종교 수장이 이역만리 먼 나라에서 오신다는데, 뭐라

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잔칫집 당사자인 이웃 봉산동 성당은 차분하대요. 그 흔한 환

영 플래카드 하나 붙어 있지 않았더군요. 내 아버지(Papa) 오시는 잔치라고

너무 난리치는 것이 조심스러워서였을까요?

밖에서 보는 입장에선 잘 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환영 플래카드를 붙이지 못한 것은 정작 목사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황’(the Pope)이라는 분, 성모 마리아, 연옥, 중세 가톨릭... 뭐 이런 오래

된 것들이, 아직은 제 마음 속에 걸림돌이 되어 있습니다. 혹여 개신교 목사

입장에서 시기심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명색이 개혁적이고 에큐메니칼 성향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목

사인데도 이런 마음이 있으니, 교우들은 어떻겠어요. 어르신들일수록 가톨릭

에 대한 배타적이고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교황 때문에

개신교가 더 침체될 거라는 우려도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요.

정말이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교황을 보며, 우리 교우들은 어떤 생

각을 하고 있을까요?

• 지금까지와는 다른 교황

그런데 분명한 것은, 현 프란치스코(Francis) 교황은 지금까지의 교황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입니다.

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특별한 이력들을 갖고 계시지요. 최초의 미주

대륙 출신이면서 최초의 예수회(Jesuit) 소속 교황입니다. 시리아 태생이었

던 교황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최초로 탄생한 비 유럽권 출신

교황이며, 남반구 국가 출신으로 최초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소위 ‘비주류’ 출신으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직후부터 파격적

인 행보로 전 세계에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특히 그는 교황으로서의 권위

와 기득권을 내려 놓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성장했고, 엘리트 코스라 하는 로마 유학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회 출신으로 사제 시절에도 빈민사목에 앞장서서 평생을 소외된 이들과 함

께 해 왔습니다.

그는 이슬람 여성의 발을 닦아 주고 소년원 아이들, 마약범죄의 소굴인 빈

민촌을 찾아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추기경이 된 뒤에도 버스나 지

하철을 탔고, 심지어 교황이 된 뒤에도 화려한 거처와 전용차량을 마다했습

니다.

이번 방한에서도 교황은 전용 비행기가 아니라 전세기로 왔고, 전용 방탄차

가 아니라 평범한 승용차를 탄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숙소도 고급

호텔이 아니라 주한 교황청 대사관저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스

스럼없이 다가서는 '빈자의 성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

는 것입니다.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바랍니다",  "교회에게 가난한 이들 

을 위한 선택은 문화·사회·정치·철학이라는 범주 이전에 신학의 범주입니다."

(교황 메시지 중에서)

• 소외된 자들을 만나다

이렇듯 소외된 이들과 늘 함께 해 오던 교황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공

적으로 시복식(諡福式, beatification)과 순교성지를 방문하는 것 외에도, 쌍

용 자동차 해고자,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 송전탑 주민들, 그리고 세월호 참

사 유족들을 만날 예정이라 하지요. 4박 5일의 짧은 일정을 쪼개서 이 시대

가장 소외된 이들을 만나는 것을 보면서, 그 분이 이 땅을 방문한 이유를

볼 수 있을 것 같지요. 무엇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거리를 떠돌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큰 위로와 소망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요.

저는 개신교의 목사이지만, 탈권위적이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 

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에 대해 존경을 표합니다. 특히 “세월호 십자가  

로마에 가져가겠다”는 말씀에는 울컥 눈시울이 적셔집니다. 교황 방한이 가 

톨릭만의 행사가 아니라 개신교도 함께하는 축제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랍니 

다. 

사실 가톨릭에서 교황은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권위를 가지지요. 교황의 권

력이란 엄청납니다. 그러나 그는 교황이라는 이름 대신에 로마의 작은 주교

로 불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교황방한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 주교는 교황이라는 이름 대신 교종(敎宗)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종교개혁의 후예라 하면서 세습과 성추행과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주님 얼

굴에 먹칠하는 일부 목사들과, 청빈과 정의와 진실한 이미지의 가톨릭의 수

장은 너무도 달라 보여 부끄럽기만 합니다.

• 가톨릭의 변화

물론 가톨릭과 우리 개신교의 차이점은 적지 않습니다. 교황 수위권, 마리아

론, 성사제도 및 성직자의 사죄권, 교황 및 교회의 무오성 등은 큰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황제도 자체는 비성서적이고 성모 마리아의 중재자

적 위치는 잘못된 교리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가톨릭도 그동안 많은 변화를 했습니다. 면죄부를 찍어 내던 중세의

가톨릭이 절대 아닙니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이후 상

당히 많은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평신도의 교회 참여, 전례의 토착화, 교회

일치와 타종교와 대화, 공동선을 위한 사회참여 등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

루어 냈습니다.

십자군 전쟁에 교황이 사과를 한 것은 교황무오설(Infallability of Papacy)을

깬 엄청난 결단이었습니다.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에서 개신교를 열교

(Haeresis)가 아닌 ‘갈라진 형제들’이라 인정하고, 평신도 성서 읽기와 ‘말씀

의 전례’를 허용함으로 조직의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열린신학 바른 목회>. 김명용, 제5장 오늘의 가톨리교회와 개신교회와의

논쟁점 참고)

저들은 개신교와 같이 예배시 사도신경을 받아 들이고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고백합니다. 유일신, 삼위일체, 은총 등 중요한 교리에 있어서 큰 차

이가 있지 않습니다. (김영재, <기독교 신앙고백> 참고)

숭실대 김영한 교수는 “이웃 종교에 대한 배척 태도는 모든 사람들과 화평

과 성화를 좇으라는 성경의 말씀을 거스르는 독선적 태도이다” 라고 말합니

다. (크리스쳔 투데이, 2014, 8,8)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특히 한국 개신교는 가톨릭에 선교 초기 빚을 지고 있는 바, 저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순교자를 내었습니다. 세계 다른 여러 나라에 비해서

순교의 현장들이 많습니다. 한반도에서 가톨릭의 처음은 고난의 역사요 아

픔의 역사였습니다.

• 교황은 적그리스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 방문을 지나치게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지난 번 WCC 제10차 부산대회를 반대하듯  

하는 것이지요. 저들은 교황의 행보를 쇼맨십이라 폄하하고, 너무 쉽게 가톨 

릭을 이단으로 규정해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교황을 ‘적그리 

스도’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에큐메니칼(ecumenical)적 입장을  

취하는 교회들을 타협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너그러움과 온유함은 결코 진리를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개 

혁을 한 루터와 칼빈은 공교회인 가톨릭 자체를 이단으로 보지 않고 연합과  

일치를 시도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그래 왔던 교회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타종교를 배격하는 근본주의 신앙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칫 편협하고 독 

선적인 모습으로 비춰져 선교에 큰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종교가 다르다

할지라도 사회 전체의 공공선(common good)을 실현할 때 함께 기뻐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이것은 종교다원주의가 아니라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일 

반은총(General grace)입니다.  

물론 저는 개신교 목회자로서 개혁교회의 가르침이 가톨릭 신학보다 훨씬  

더 성경적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귀한 신앙에는 타협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되는 기본 진리가 있음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죄함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의 확신을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오히려 개신교는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잘못

된 모습을 바라보고 회개와 갱신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나아가 교황이

지피는 평화와 화해의 불씨를 살려, 민족의 분단과 사회적인 약자들을 섬기

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 목사의 친구, 콜베 신부

제 가까운 친구가 있습니다. 신학교 시절 함께 고민하며 공부하다 결국 예

수회로 건너가 신부가 되었습니다. 정만영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

저는 그에게 이렇게 축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교황께서 오셨구나 축하드린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이 땅에

생명과 평화의 촛불이 번지길...

강원도 골짜기에 한 개신교 목사가

깊은 존경의 마음을 올린다.”

그는 교황의 방한을 환영하는 개신교의 모습에 페북을 통해 이렇게 답했습

니다.

“가슴이 울컥한다. 말만하는 에큐메니컬(교회일치운동)보다 더한 성령의 이

끌림으로 다가온다. 참 고맙습니다. 개신교 형제교회 여러분”

언젠가 개신교와 가톨릭 형제들이 한 하나님 안에서 함께 예배하는 그 날이

오길 손모아 기도합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