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맘이어요

• 부모님께 큰 절하고

얼마 전 막내 영민이가 학교 수련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3일씩이나 집을 떠 

나는 건 처음이었지요. 이 불안하고 어처구니없는 시대에, 초등학교 4학년  

어린 자식을 선뜻 내보내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수련장이 버스에 

서 내려 30분이나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니, 얼마나 후미진 곳일까 싶었 

습니다. 아내는 걱정이 되는지 미리부터 단도리를 합니다. 정작 아이는 친구 

들과 두 밤이나 함께 잔다는 기대감에 달떠서,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려  

왔습니다.  

아침이 되니 깨우지도 않았는데 제혼자 일어나 일찍부터 서두릅니다. 제게

어울리는 적당한 가방이 있는데도, 굳이 형아 큰 가방을 가져가겠다고 떼를

씁니다. 그걸 들쳐 메면 너무 커서 어색한데도, 더 폼이 난다고 생각되었나

봅니다. 입에는 휘파람을 달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노래를 흥얼댑니

다. 잘 들어보니 귀에 익숙한 노래입니다.

♫ “부모님께 큰 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머리에 피도 안마른 녀석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김광석 <이등병의 노래>

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가방까지 다 챙겨서 갈 채비를 다 끝냈습니다.  

그때였어요. 웃긴 일이 벌어졌어요. 갑자기 아빠 엄마 보고 앉으래요. 큰 절 

을 하겠다는 거예요.  

“야임마, 수련회 가면서 절을 하는 놈이 어디 있어!”

“아니에요. 부모님께 큰 절은 하고 가야돼요”

선생님의 명은 아닌 것 같고, 아마 아까 그 노래 때문인 것 같았지요.

암튼 그 덕에 막내아들에게 때 아닌 큰 절을 다 받아 보았습니다.

• 우는 아이

그때까지만 해도 장난인 줄 알았어요. 실제로 까불대면서 약간은 장난 끼로

그랬으니까요. 근데 이게 왠일에요. 현관에서 기도까지 다 받고 문을 나서는

아이 얼굴이 심상찮습니다. 뒤를 돌아보는데 눈이 빨개져 있었습니다.

우는 것입니다.

아빠 엄마가 깜짝 놀랐지요.

“영민아, 왜 그러니?”

그 말에 ‘아빠-’ 하고 들어와 제 품에 안깁니다. 엄마 품에도 안겨 눈물을

짭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월이 수상하니 좀 불안했을까요?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게 싫었을까요? 학교에서 미리 조심시키느라고 겁을 많이 줬을까요? 아마 

친구들끼리도 ‘가서 조심해야 한다’고 수런수런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아빠엄마도 마음이 짠-해서 꼭 안아줬습니다. 괜찮다고, 선생님들  

말씀만 잘 들으면 된다고, 아빠엄마가 기도하겠다고.

누가 보면 군대 가는 줄 알았을 거에요.

우습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막내는 막내인가 봅니다. 그렇게 눈물의 이별을  

하고 수련회를 보냈답니다.  

• 부모맘으로

그날 밤 12시가 넘었을 거예요. 갑자기 핸펀이 울립니다. 영민이였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요. 그 깊은 밤에 아이 번호가 찍힌 전화를 받는 게 얼마나  

숨막히는 일인지 아이 둔 부모라면 아실 것입니다.  그것도 요즘같은 때에요.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고 별의 별 생각이 다 지나갔지요. 분명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윽고 아들의 나지막이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숨을 죽여 말합니다.

“아빠, 나 잠이 안와. 친구들은 다 자는데. 어떻게 해?”

조국이라도 구할 듯 비장하게 가더니 왠걸요. 그 날 밤 애엄마는 전화기를  

붙잡고 애 재우느라 늦도록 고생만 했답니다.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 얼마 

나 감사했는지요.  

그리고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끌탕한 마음에 아들 때 

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것만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간 아들이 싸늘한 주검으 

로 돌아온 세월호 유가족들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자식 아끼는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데, 그 날 그 전화를 어떻게 받았을까요?  

‘우리집 희망’ 이라고 찍혀 있었을 그 아이의 전화를. 살려달라는 아이의 절

규가 들려 올 때마다 어떻게 견디어 왔을까요? 이제 좀 그만하자고, 자식 팔 

아 장사한다고, 지금도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대는 소리들. 이 도저(到底)한  

분노와 한을 어떻게 감내하고 있을까요?  

잊지 않을게요. 아이들 둔 부모맘으로.  

잊지 않을게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공동체적 영성으로.

그렇게 처절하게 이 가을이 깊어 갑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