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앞에서, 시험장 앞에서

⦁ 원주 세브란스 병원에서

지난 주간 화요일은 대장 내시경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었어요. 이 검

사 해 보신 분들은 아시지요. 아주 고약합니다. 전날부터 금식을 하며 속을

비우고, 그 물약들 먹는 것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밤새도록 화장실을

오가야 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건강 생각하면 받지 않을 수 없는 노

릇입니다.

그렇게 불편한 검사를 잘 받고, 이제 결과를 보러 가게 된 것입니다. 아침

일찍 예약을 잡은 것은 그날 내내 바쁜 일들이 있기 때문이었지요.

근데 요즘 세브란스 기독병원, 신축공사 때문에 복잡합니다. 이른 시간인데

도 정문부터 차가 많더니 코딱지만 한 뒤편 주차장은 한참이나 밀립니다.

한층 한층 가다 서다, 시간은 다 돼 가고 마음은 급하고, 답답한 마음에 연

신 조급함이 앞섭니다.

“일부러 아침 시간을 잡았는데 출근길이라 그런가 웬 차가 많아?”

“아무리 공사 중이라도 주차장이 뭐이래, 환자들 생각을 해 줘야지?”

“이 앞 차는 초보야 왜 이리 못가? 아 진짜 짜증난다”

주차장 1층부터 주차공간이 없어 이리저리 헤매다가 4층 옥상 층에 겨우 차 

를 댔습니다. 그리고는 잰걸음으로 갑니다. 일찍부터 환자들로 빼곡한 본관  

1층을 지나, 옆건물 3층 소화기내과까지 급한 마음에 엘리베이터도 기다리지  

못하고 뛰어서 갔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어요. 머리를 치는  

음성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최목사, 좀 천천히 가라 내가 다 힘들다”

“주님, 얼른 좀 오세요. 지금 천천히 가게 됐어요?”

“왜, 뭣 때문에 급한데?”

“오늘 바쁘잖아요”

“뭐가?”

“아시잖아요. 지금 검진결과 얼른 보고, 오전에 그 성도 만나야 하고, 오후

에도 준비할 거 많아요. 내일 전도대 수요예배 구역장 훈련자료도 만들어야

해요. 이번 주는 토요일도 설교해야 하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일찍 스케줄 잡은 거지?”

“예. 휴~ 거의 다왔어요”

“근데 최목사, 너 자신 있니?”

“뭐가요?”

“검진 결과가!”

여기까지였어요. 별 생각 없이 진료실로 마구 달려 가다가 이 음성을 듣는

순간, 발이 멈춰졌습니다. “너, 검진 결과에 자신 있니?”

(눅12:20)“...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검진 결과에 자신 있니?

그렇지요! 검진 결과가 나쁠 수도 있지요. 건강검진하면 무조건 ‘양호’이던,

그거 확인하러 병원 가던 젊을 때가 아니지요. 혹여 무슨 병이 있다든지, 보

호자 같이 오셨느냐고, 혹은 당장 입원해야 한다든지... 모를 일입니다. 인생

이 흔들리는 순간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아무 이상도 없는데 무슨 말이냐고 항변할 수 있을까요? 이제까지 괜

찮았다고? 나는 오늘 바쁘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자아는 내면에 있

는 하나의 지배적인 생명에 의해 질서가 잡히지 않은 채, 동시에 몇 개의

자아로 존재하려 힘쓴다”는 토머스 켈리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바, 그 날은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은, 꼭 마지막 날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종말론적(eschatological)인 삶을 삽니다.

만약 그런 의사의 선고를 받는다면, 오늘의 바쁜 그 스케줄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오전에 그 성도와 만날 약속, 오후에 이런저런 준비들, 당장 내일

강단에 설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의사 앞에서 중병 선고를 받아 본 사람은 알지요. 갑자기 무너지는 인생,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내 이름이 없는 합격자 발표대 앞에

서 본 사람은 알지요. 세상이 캄캄해 지는 그 순간.

저도 의사 앞에서 그 선고를 들은 경험이 있잖아요. 그날 그 대학 운동장에

서 그 경험을 한 적이 있었지요. 어떻게 그날을 견뎌 왔는지. 그 순간이란,

오래오래 기억에 꽈리 튼 상처의 파편들이 됩니다. 내면의 질서가 잡혀 있

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였습니다. “너 검진 결과에 자신 있니?”, 이 음성에 발걸음을 멈추었 

습니다. 진료실 앞에서 한참 동안 가만히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좋은 결 

과가 있기를 기도하면서도,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시간!  

결국은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이리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 

하리라. 낙심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리라...” 마음이 모아졌습니다. 그러자 한 

결 겸손해지고 차분해 졌습니다. 내적으로 평안해지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 

다. 지난주일 설교도 도움이 되었지요. 내면세계의 질서를 세우라. 영혼의 조 

종실을 점검하라!  

그래서 검사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물론 괜찮았습니다. 괜찮았으니

이렇게 목자의 글을 쓰고 있지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인생의 중요한 구비

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그 순간을 맞는다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겨내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 입니다.

⦁ 수능을 보던 날

그런데 그날 병원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또 다른 큰일을 잘 준비하는 계기

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인 수능시험입니다.

이번에 우리 큰 애가 시험을 보았습니다. 수험장으로 들여보내는 애비 마음

은 한마디로, 아이를 사지(死地)로 내모는 심정이었습니다. 늘 기도제목이,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모순투성이 사회, 분단된 땅에 살지 않게 하소서" 였 

거든요. 진정 행복한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경쟁의 최전선으 

로 내몬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었지요.  

정신없이 아이를 보내고는, 하루 종일 본당에서 목양실에서 기도하며 마음 

을 추수렸습니다. 아비로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목사로서 교회에 7명의

수험생들을 위해, 이 땅의 종교지도자로서 60만의 아이들이 오늘 밤 한 아

이도 실족치 않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목사라고 욕심이 없으랴, 원하는 학교를 보내고픈 아비의 마음이 왜 없겠어

요? 그런 마음이 들때마다 흔들렸습니다. 뱀눈을 하고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자꾸만 욕심을 비워냈습니다. 지난 오후예배때 불렀던

<감사하신 하나님 에벤에셀 하나님> 찬양을 수도 없이 불렀습니다. 엊그제

진료실 앞에서 가졌던 내면의 질서를 다시 세워 보았습니다. 마음이 차분해

지고 편안해지더군요. 영혼의 질서가 세워집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감사

하리라. 무조건 안아주리라. 욕심내지 않으리라.

결국, 생각보다 시험을 못 보았지만 제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아쉬움은 있지 

만 결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호들갑 떨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고생한

아이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주신 점수에 감사하고 마음 아 

파하는 아이를 위로해 줄 뿐이었습니다

"쫓겨 다니는 사람과 부름 받은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우리가 찾는 자질-내면  

지향적인 사람의 자질-이 바로 이것이다. 쫓겨 다니는 사람은 성취중심의 인생  

계획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며 허세를 부리고 자신만만해 한다. 그러나 가끔 가 

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부딪히면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반면에 부름 받은 사람은 내공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외부로부터 

의 어떠한 타격에도 굴하지 않는 인내와 힘이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99쪽)

⦁ 온도계 인생, 온도조절기 인생

흔히 온도계 인생과 온도조절기 인생이 있다고 말하지요.

온도계는 날씨가 추우면 내려가고 날씨가 더우면 올라갑니다. 환경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지요. 온도계 신앙은 조건에 따라 올라 갔다 내려갔다 합니

다.

그러나 온도조절기는 다르지요. 날씨가 추우면 온도를 올립니다. 더우면 온

도를 내려 주지요. 날씨에 따라 오히려 안으로부터 온도를 조절합니다. 환경

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삶입니다.

우리 삶을 좌지우지 지배하는 온도계가 무엇입니까? 돈이, 사업이 온도계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식 성적이 온도계입니다. 올라가면 세상 살

맛이 납니다. 떨어지면 만사가 재미없습니다. 환경 때문에 울고 웃는 삶입니

다. 여기에 좌우됩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기 신앙은 다릅니다. 환경이 좋을 때에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반대로 사는 게 어려워져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살

림이 막다른 골목에 왔어도 믿음의 눈을 열고 창조적으로 그 사건을 봅니

다. “하나님의 뜻이 계시다...”

세상에 의해 좌우되는 삶이 아니고 세상을 좌우하는 삶입니다. 끝내는 어려 

움을 이겨낼 것입니다. 

⦁ 당신의 내면세계는?

이번 주간에 있었던 두 가지 큰 일들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그것을 좌우하는가 그것이 나를 좌우하 

는가? 그 모든 것을 빼앗긴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가 묻는 물음을 다시 묻습니다.

“당신의 내면세계 질서는 잘 잡혀 있습니까?”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