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편히 볼 수 없는 드라마, 미생(未生)

얼마 전 우연찮게 어깨너머로 보게 된 드라마가 있습니다. 미생!

잠깐 보아서 내용 파악도 어리어리했지만, 말 한 마디 얼굴빛 하나 얼마나

공감이 되는지요, 지난 방송들을 모두 내려받아 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원본은 웹툰으로 백만 부 이상 팔린 만화라 하지요. 이미 장안에 화제가 되

어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시청률이 상승하고, SNS 등에 많은 글

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직장인이 있는 가정에

식탁의 반찬이 달라졌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 드라마는 그 흔하디 흔한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침드라마

의 밀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에서 온 외계인도 없고 출생의 비밀이나 불

륜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저 어느 중견급 회사 평범한 직장인들 이야기입니

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팍팍하고 치열한 경쟁과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로 답답한 직장인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보여 줍니다.

제가 이 드라마 전체를 보고자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해 보

지 않은 목회자로서 저들의 모습이 읽혀집니다.

 
• 미생의 열풍

미생 어록집이 생길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 대사가 의미 깊습니다.

어릴 때 기원(棋院)으로 들어가 프로기사를 꿈꾸던 주인공 장그래.

“입사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들어와서 보니 성공이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더 연 거더라...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한

다.”

학력도 스펙도 하나 없어 인턴에서 계약직으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흔한 우리들 자화상이지요. 그의 정직과 성실함이 드라마의  

희망이지만, 과연 얼마나 버텨낼 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늘 인상 쓰며 버럭 소리치지만 인간미 넘치는 멘토 오과장, 그리 성공하지

도 못한 그에게서 우리 시대 아버지 뒷모습이 보이는 것은 무리일까요?  

그가 장그래에게 한 말은 성경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취해 있지 마라. 취해 있으면 기회가 와도 아무 것도 못한다.”

회사를 때려치고 사업을 했다 망한 김선배가 술자리에서 오과장에게 한 말

은 정말이지 가슴을 후벼 팝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그 안에는 박대리처럼 착한 사람도, 마부장처럼 야비한 상사도 있습니다. 밤

새 준비한 기획안이 윗사람 한마디에 폐기처분 되고, 학창시절 동창은 거래

처 ‘갑’이 되어 허스레를 떱니다. 바늘구멍 취업문을 뚫고 입사해서 커피에

복사 심부름까지 하노라면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직

서를 넣어 둔 서랍을 열어 고민하고, 야비한 상사를 “나쁜 놈”이라 비난하지

만, 어느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갑니다. 아무리 장그래가 계약직이라고

불쌍하게 보여도, ‘무슨무슨 직(職)’이라는 이름이라도 있지, 이미 사석(死石)

으로 들려나온 누군가에게는 그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잠깐 본 드라마이지만, 저는 목회자로서 정말이지 회개하는 마음으로 보았

습니다.

 “저렇구나, 저렇게 치열하구나, 살아 남기 위해,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 저

런 몸부림들을 치고 있구나. 직장인들, 사업이나 장사를 하고, 살림을 하든지  

허드렛일, 심지어 아무 일을 하지 않는 분들일지라도. 그렇게 지친 몸으로,  

상처나고 아픈 마음으로 교회에 오시는구나. 목회자로서 저들을 더 깊이 만 

져주지 못했구나. 머리로는 안다 했지만 가슴으로 알아 주지 못했구나”

• 미생인 인생 

미생(未生)이란,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돌 

을 말합니다. 누군가 인생은 바둑과 같다고 하지요. 특히 신자유주의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방심하면 언제든 먹힐 수도 있는, 살아남아야 하는 인생입니

다.

바둑판은 삼백 예순 한 개의 점으로 되어 있습니다. 돌 하나가 점 위에 놓

였다고 해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집을 짓고 살아남을지 혹은 상

대에게 잡아먹힐지 알 수 없습니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흰 돌은 검

은 돌을, 검은 돌은 흰 돌을 주변에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에 둘러싸이

면 죽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내 돌들을 이어서 두 집 이상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죽일 수 없는 집이 되면 '살았다', '완생'(完生)이라 합니다.

오과장이 계약직으로 돌아온 장그래에게 한 말이 드라마의 주제를 잘 보여

줍니다.

"돌아온 것 반갑지 않다. 우린 일당백이 필요해. 이왕 들어왔으니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야. 버틴다는 건 완생으로 나가는 것,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그래서인지 요즘 청년들의 꿈을 물으면 정규직이라는 대답이 많다지요. 그

대답에 가슴이 아프지만 현실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세상을 물려 준 기성세

대로서 미안함과 분노가 일어납니다. 저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곳일까

요? 젊은이의 꿈이 정규직인 나라에 올바른 미래가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미생은 현대인을 대변하는 단어이네요. 누가 완생했다고 자신

할 수 있겠어요? 누가 내 인생은 견고하다고 안심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바둑판같은 세상 위에서 아직 살지도 죽지도 않은 미생 인생입니다.

• 맘 편히 볼 수 없는 드라마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때, 올해에는 유난히 이곳저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식들이 많았지요.

올 초에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주인 아

주머니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연이어 동두천에서 “미안하다”는 글씨가 적혀있는 세금고지서와 함께 엄마

와 아들이, 얼마 전에는 60대 독거노인이 목숨을 끊었지요. 그도 역시 밀린  

공과금과 함께, 자신의 시신을 수습해 줄 사람들에게 수고비 10만원을 남기 

고 말입니다.

이것이 2015년에 국민소득 3만 불이 된다고 떠벌여대는 대한민국의 현실입 

니다. 세상은 실로 전쟁터입니다. 어찌하지요? 바둑은 복기하고 다시 두면  

되는데 인생은 그리할 수 없는 일이니 그 불쌍한 인생들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래서입니다. 바둑의 룰이 바뀔 수는 없는 걸까요? 흰색과 검은색, 나와

적, 둘로 나누지 않는 세상 말입니다. 나도 검은색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그

도 흰색을 받아들여 모두가 사는 완생 바둑판 말입니다. 그 누구도 죽고 죽

이지 않고 내 집이 그의 집이 되고, 다 같이 살 수 있는 우리 집이 되는 건

불가능한 꿈일까? 이리와 어린 양이, 사자와 소가 함께 뛰노는 이사야 선지

자가 꿈꿨던 평화로운 메시아 왕국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에서나 이루어질

일일까요?

미생, 오랜만에 보는 참 좋은 드라마를 그저 맘 편히 볼 수 없는 이유입니

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

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

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

을 넣을 것이라” (사11:6-8절)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