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별한 헌금

• 낯선 헌금봉투

지난 주일에 낯선 헌금봉투가 있었습니다.

“감사헌금. 지역주민 200,000원”

누구실까요. 우리 교우가 아닌 것은 분명하고 이 동네 분인 것 같은데. 얼마

전에도 이런 봉투가 있었지요. 교회가 좋은 일 한다고 헌금 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귀하고 감격스럽기조차 한 일이에요? 교회가 욕을 먹고  

손가락질 받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 가까이 동네 사람이 교회에 감사하다고  

헌금을 하시다니요. 그것도 적지 않은 헌금을. 저는 그 헌금봉투를 손에 들 

고 누군지도 모르는 그 분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해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 싶어졌어요.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 

로서 인사라도 드려야겠다고. 동네에 사시는 권사님들께 수소문해 보니 대충  

누구인지 어림잡아집니다. 교회 앞 골목 안쪽에 사시는 ‘그 분’이셨어요. 윤

권사님 통해 이름까지 알게 되었지요. 흠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름을 밝 

힙니다. 조순례 아주머니!  

저는 급기야 그 분 댁을 찾아 갔습니다. 감사 표시로 <새찬송성경>을 예쁘

게 포장해서 선물로 들고. 조성복 권사님 댁 건너 그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

르니 웬걸요, 옆집에서 누군가가 나오십니다. 머리에 뭘 쓰고 계셔서 긴가민

가하고 있는데 그 분이 맞으셨어요. 먼저 알아보시고 반갑게 인사해 주십니

다.

“어머, 목사님이시네요. 웬일이세요. 저희 집에!”

아! 이 분. 늘 동네에 오가면서 얼굴을 뵈었지요. 교회에 주차 신세를 진다

고 고마워하시며 눈인사 하시던 아주머니이십니다.

“예, 교회 목사에요. 이 집이시군요. 웬 헌금을 그렇게 하셨어요. 감사드려

요”

뭘 그런 걸 가지고 집에까지 오셨느냐고 하시는 아주머니. 근데 꼭 주차 때

문만은 아니랍니다. 교회가 좋은 일 많이 하는 거 같아서, 헌금 하고 싶었다

는 것입니다. 사랑의 국수나 주차장 개방, 얼마 전에 연탄 나눔, 헌옷 폐지

나눔 등 교회가 힘든 이웃을 섬기는 모습을 다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제 귀에 꽂혔습니다.

“교회가 가까이에 있어서 좋아요. 교회에 나가진 않지만 교회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 마음 속에 오래된 '그 교회'

저는 그 말에 정말이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릴 때 선생님께 무슨 큰

칭찬이라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우리 교회가 헛되이 오

진 않았구나 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집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옆집 아주머니들도 나오셔서 밝

은 웃음을 짓고 계시는데 마음이 활짝 열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준비해 간 선물을 드리니 손사래를 치십니다. 성경찬송

이니까 받으시라 떠안겼더니 억지로 받으십니다.

“성경이니까 받을게요. 목사님 저도 어릴 때 교회 다녔었어요.”

“그러세요? 교회 오셔야지요”

“예? 하하. 성경은 꼭 읽을게요”

 골목을 빠져 나오니 거기 우두커니 서 있는 우리 교회. 45년 동안 그 자리

를 지켜 왔고, 저도 10년이 넘도록 매일 오르내리는 교회이지만 오늘따라 새

삼스러웠습니다. 더 정겹고 더 커 보이기도 하고. 본당 현관에는 올 표어 현

수막이 선명히 눈에 들어 왔습니다. "세상의 희망이 되는 교회"

 그런데 가만히 서서 올려다 보는데 어디서 많이 본 교회였습니다. 제 마음

속에 오랫동안 자리해 있던 ‘그 교회’를 닮았습니다. 고향 교회, 청주동산교

회.

언덕위에 빨간 벽돌집, 댕그랑 댕그랑 종소리가 은은히 울리고, 저녁노을에

십자가 붉게 물들면 그 아래 가만히 고개 숙이던. 성탄 때는 촛불 들고 집

집마다 새벽송을 돌고, 교회생일이나 부활절 때는 동네사람들을 불러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 교회 다니지 않아도 목사가 쉬 들어가 축복기도 해 주던.

마을의 한 가운데서 길 잃은 영혼들에게 쉼을 주고 피난처가 되던 교회.

제 마음속에 오래된 그 교회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였습

니다.

교회 계단을 올라가는데 그 아주머니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교회가 있어서 좋아요. 교회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축복을 빌어 주러 갔다가 큰 축복을 받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많

이 들으면 한국교회가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오늘 선교비를 작정합니다. 주보 안쪽에 우리 교회가 돕는 교회와 기관들을

소개해 놓았습니다. 물론 주보에 없는 숨은 분들도 있고 비정기적으로 돕는

기관들도 적지 않습니다. 빠듯하지만 이 선교비는 저들에게 하루 양식이 됩

니다.

선교지 현장에서 들리는 소식들은 다급하고 황막하지요. 저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에서, 춥고 배고픈 개척교회에서, 소외된 장애인 단체, 고아들을 돌보

고 외로운 노인들을 섬기는 곳에서... 그 한 생명을 구원하고 보살피기 위

해, 또는 먹고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도 없고,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요한 자도 없다”는 말이 있지요. 그렇게 우리는 다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

들이자 사랑을 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도 넉넉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누면 풍성해 지고 나누지 않

으면 썩는 것이 하늘의 법칙입니다. 주는 자는 더욱 넉넉해지고 움켜쥐고

있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도 빼앗기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가 꾸어주고 나

눠주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감사입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되갚아 주실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교회는 자기 확장에만 관심을 가지는 공동 

체일리 없습니다. 산 신앙을 가진 신도들의 이름입니다.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 매일의 생활현장에서,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고  

실천할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입니다.”  

백소영, <교회를 교회되게> 중에서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절)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