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보다 옳도다”

-창38장 읽기

⦁ 불편한 광고

몇 년 전부터 유행하던 기업 광고 문구가 있지요.

“고객이 항상 옳았습니다.”

이것을 패러디해서 정치인들이 선거 때 많이들 사용했지요. “국민이 항상

옳았습니다”. 심지어는 시내 어느 식당에 갔더니 “손님이 옳았습니다”라는

큼지막한 액자를 붙여 놓았더군요.

저만일까요? 그 말들에 약간은 불편함이 느껴집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무

릎 꿇고 주문 받는 종업원을 대할 때 느낌,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며 90도

절을 받을 때 느끼는 마음이지요. 그가 정말 나를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것

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무조건 고객이 옳은가요? 잘못된

고객은 왜 없겠어요. 하나의 상술에 불과할 뿐이지요. 실제로 서비스 제품에

대해 고객들이 문제 제기하는 3분의 1이 고객 책임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옳습니다’는 이 말이 새삼 귀에 들어 옵니다. 우

리 시대 많은 갈등과 다툼이, 나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데서 나오기 때문

입니다. 흔히 내 의견이 다른 이의 의견과 다르면, 주로 나의 옳음을 주장하

기 일쑤이지요. 갑의 자리에 있으면 더욱 더 합니다.

“됐어. 내 말에 토달지 마. 니가 뭘 알아”

나만이 옳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늘 틀렸습니다. 내 잘못은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침소봉대(針小棒大)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데는

선수 중에 선수잖아요? 그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자 낯을 두껍게 하고 끝

까지 우기지요. “그래도 내가 너보다는 백 배나 의롭다!”. 내 잘못은 묻어

버리고 상대의 잘못만을 부각시킵니다. 결국은 갈등이 일어나고 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종교간 이념간 국가 간의 분열이 ‘나만 옳다’는 데서 온 것 아니

겠어요? 지금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하는 IS(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그런 것

이지요. 자신들만 옳다하여 극악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 성서에 19禁 섹스 스캔들

“그는 나보다 옳도다”(창38:26절). 성서에서 가장 민망한 이야기인 유다와

다말 사건에서, 시아버지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향해 한 말입니다.

물론 다말의 행위가 온전히 옳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요. 당시 가족 간

에 근친상간이 허용되던 시대라 할지라도, 또한 아무리 억울하고 원망스러

웠을지라도, 의도적으로 시아비를 유혹해 동침한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

습니다.

하지만 다말의 권리 주장만큼은 분명 정당합니다. 다말은 남편을 잃은 슬픔,

시동생에게서 받은 수치, 시댁으로부터 버림받음, 자식 없는 설움 속에 있었

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인생, 가문과 자식을 통해 보상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시아버지 유다는 며느리의 정당한 권리를 묵살하고 아들들의 악행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며느리만 탓하면서 막내아들 셀라를 통한 의무

이행을 하지 않고, 끝내는 자신의 성욕마저 주체하지 못해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유다는 희대의 불륜 사건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깨닫습니다. 그는 며

느리의 악행보다 자신의 잘못에 더 주목합니다. 자신과 다말의 잘못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한 것인지 저울질하지 않습니다.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내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이 한 마디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말이지요.

어떤 사람은 이 말 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는 나보다 옳도

다’는 말은 오늘날 뒤틀린 마음의 이랑을 갈아엎는 참 좋은 쟁기가 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유다처럼 다말처럼 아무런 의도 없는 자들이지만,

주께서 옳다고 의롭다고 여겨 주셔서 의인이 된 사람들 아닙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이 땅에 온갖 추악한 일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조차도

어리석고 부끄러우며 낯 뜨거운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네가 잘했느니 내

가 잘했느니 드잡이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근간에 원주에서 제일 큰 우

리 교단 어느 교회는 제직회 석상에서 계란까지 던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서로 자신이 옳고 남이 틀렸다는 생각으로 오해와 불신을 더해 갑니다.

다른 곳 손가락질 하며 혀를 찰 필요 없습니다. 제가 그런 존재입니다. 돌이

켜 보니, 저의 옳음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목을 곧추 세

우고 바리새인처럼 내 의(義)를 주장하던 순간들.

가정에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그리했습니다. 박윤선 목사의 딸 박혜란 씨

가 쓴 책 <목사의 딸>에서,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

족사’라며 그의 아빠를 신랄하게 비판하듯, 우리 가족들이 저를 정죄해도 저

는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에서도 그리했습니다. 가까이서 일하는 일군들에게 얼굴을 붉

히며 목소리를 높이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받았던 상처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부끄럽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되고 쉽게 정죄해서는 더욱 안 될 일이었습니다.

물론 면밀한 잣대로 톺아보면, 내가 좀 더 옳고 그가 틀릴 때도 있었을 것

입니다. 또한 옳은 것을 위해 예수님처럼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가 있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는 다 키재기를 하는 도

토리들입니다. 우리의 의로움이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 아니겠나요? 혹

여 정작 중요한 때는 몸을 사리느라 목소리를 낮추고, 사소한 것에만 핏대

를 높이지는 않았을는지 두렵기만 합니다.

⦁ 이 땅의 문제를 푸는 말

그래서입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유다의 이 고백을 통해, 내 안에 쓴 뿌

리처럼 꽈리 틀고 있는 미움의 얼굴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

을 다말의 자리에 넣어 외쳐 봅니다.

그 자리에 아내의 이름을 넣어 봅니다. “유혜진은 나보다 옳도다”

아들의 이름도 넣어 봅니다. “최영운은 나보다 옳도다”

그리고 그 성도의 이름을 넣어 봅니다. “◯◯◯는 나보다 옳도다”

우리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진심으로 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곳의 평화

를 누가 빼앗아 갈 수 있을까요.

이렇게 자꾸 말하다 보니 그 뽀독했던 마음들이 수그러듭니다. 자꾸만 되뇌

다 보니 예수께서 죽어야만 했던, 그래야만 용서 받을 수 있는 죄악된 존재

인 나를 발견합니다. 끝내는 “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죄인

입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도 정죄할 자격조차 없습니다”는 생각으로 옮겨갑

니다. 사도바울의 위대한 고백이지요.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딤전1:15

절)

막장 드라마 다말이야기를 통해 ‘그는 나보다 옳도다’ 말한 유다의 깨달음을

제게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을 향해, “그는 나보다 옳

도다” 말할 수 있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더 큰 은혜와 복을 주

실 것입니다. 훨씬 따스한 온기가 공동체 구석구석에 배일 것입니다.

모든 문제 원인은 ‘내가 옳다’는 데서 시작되니, ‘당신이 나보다 옳다’는 곳

에 문제의 해결책 또한 있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옳다’는 말만 하면 나도

살고 남도 살며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훗날 보세요. 결국 유다는 다말의 자식을 가문의 장자로 받아들이지요. 이로

써 다말의 아들 베레스는 다윗 왕조의 조상이요 메시야 계보의 조상이 됩니

다. (마1장)예수님 계보는 이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옳고 깨끗할 것도 없이, 배신과 근친상간과 살인과 온갖 죄로 물든 인간의

계보를 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신 것입니다. 실로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이 유다의 고백이 없었다면 다말이 베레스를 낳을 수 없었고, 그를 통해 다

윗과 예수님이 오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그리스도께서 임하시는 자리, 이 땅의 문제를 푸는

열쇳말입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