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에 대한 감사

-맥추감사주일

기억하실지 몰라요. 오동성 목사님이라고. 예전에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도

하셨는데요, 도림교회에서 함께 사역했었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두 사람 신

대원에서 동기로 만나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랑을 나누다 결혼했습니다. 아

이 하나 있는데 우리 큰 놈 영운이랑 친구여서 원주에도 오가며 가까이 지

냈지요.

한 팔년 전에 캐나다에 가서 <토론토 그레이스힐 교회>를 개척해 부부가

열심히 사역하셨습니다. 근데 문제가 생기셨어요. 그 사모님께서 중병이 걸

리셨어요. 혈액암(Blood cancer)으로 힘겨운 투병 중에 있습니다. 흔히 ‘백

혈병’(Leukemia)이라 하는 병으로 10만 명 중에 한 명 있는 난치병이라 하

네요. 결국 1년여 만에 하늘나라 가셨습니다. 마흔 살 너무 이른 나이에.

(옛카페 목자의 글 2008.9.16 ‘now or never’ 중에서).

그 후 졸지에 혼자되신 오 목사님이 보내 주는 소망의 글 가운데 이런 글귀

가 있었어요.

“그렇게 함께 했던 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큰 고마움인지 오늘

더 절실해 집니다.”

당연한 것들에 대한 감사

사람이 스스로 속고 있는 것 중 하나,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곁에 가족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내가 받는 사

랑도 당연합니다. 내가 하는 일도, 이 만큼의 건강도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흔히 다른 사람에게 당연한 것이 내게는 부족함을 느낄 때 우리는 얼마나

불평해요? 그의 가정, 직장, 학력, 부함…….그것이 당연한 그는 얼마나 행

복하고 감사할까 부러워하지요.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없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감사하지 않고 당연시 여길 수 있습니다. 나는 평범하게 생각하는 그것이

그에게 없어 부러워하는데, 나는 그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지요. 그저

없는 것을 더 채우고 더 가지기에 급급한 인생일 뿐.

그러므로 당연한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함부

로 대하다가, 떠나가니까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귀중하고 소중한

것임을 압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게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십시다.

매일 눈을 떠서 맞이하는 새 아침

아무도 몰래 열심히 쉬고 있는 나의 숨

아침마다 출근할 수 있는 일터

병원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몸

그것이 당연한 것일까?

헬렌 켈러가 3일만 소망했던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뛸 수도 있다는 것

오늘도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

무한정 마실 수 있는 맑은 공기

그것이 당연한 것일까?

해야 할 일들

해지면 돌아갈 집

늘 지지고 볶으며 살지만 곁에 가족들

40년 된 빨간 벽돌 원주영락교회

그 안에 나를 아는 성도들…….

그것이 당연한 것일까?

다는 아니더라도 이 가운데 많은 것들은 우리가 무심코 누리고 있는 것들입

니다. 이 모든 것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로 받는 것입니다. 감사의 조건

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딤전4:4 공동번역)

빚이 많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친구 목사들을 만납니다. 저들은 한결같이

빚만 없어도 행복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빚이 없는 교회 목사인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세 살 때 엄마가 죽은 故정태봉 시인은 <엄마가 휴가를 나온 다면>에서, 엄

마를 딱 5분만 볼 수 있기를 절절히 바라지요. “...(그러면)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엄마와 눈맞춤을 하고/젖가슴을 만지고/그리고 한 번이라도/엄마!/하

고 소리내어 불러보고/숨겨놓은 세상사 중/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

러 바치고/엉엉 울겠다”. 50년 전에 죽은 엄마 묘지를 이장할 때, 혹 알아

보실까봐 흰머리를 염색하고 갔다는 시인. 그러나 저는 아직도 팔순의 부모

님이 건강히 살아 계신데도 감사하지 못하고 당연하다고만 생각합니다.

중환자실에 안명옥 집사님, 엊그제 가 봤더니 여전히 반응이 없으셔요. 제가

잠시 기도하자 이렇게 말하세요. “목사님. 그리운 원주영락교회, 주일예배

한 번, 거기 성가대 내 자리 앉아 보고 싶어요”. (물론 제 마음속으로만 말

씀하셨지요.) 그렇게 고대하는 교회, 우리는 이렇게 제 발로 걸어서 성전에

올랐는데도 하나 감사하지 않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에 오랜 환자들에게 물어보면 하루라도 집에 빨리 가서 자 봤으면 합니

다. 그러나 매일 가족과 집에서 자는 내게는 그것이 복임을 생각하지 않습

니다. 멀쩡한 사지백체를 갖고 있는 것에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연하다고만 생각합니다.

올 초에 아내를 먼저 보낸 장로님, 심방을 가보니 여전히 침대 옆에 권사님

사진에, 베게까지 줄맞춰 자리해 놓았습니다.

이재환 장로님께 이 말씀 전해요.

스무 살 난 딸을 하늘나라에 보내는 어떤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장례식은

어떤 장례식보다 침통하고 슬펐지요. 끝에 장로님께서 추모사를 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아빠가 너를 먼저 보내는 마음이 세상에 모든 슬픔을

다 가져와도 모자랄 것 같구나...그러나 가만히 기도하며 생각해 보니 감

사하다. 내가 너의 아버지로 20년을 보낸 것이 축복이었구나. 네가 내 딸

로 20년을 함께 한 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구나...”

당연한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축복입니다. 평범한 감사 속에는 더 큰

감사를 만들어 내는 기적이 숨어 있습니다. 작은 것들에도 감사를 찾아내고,

당연한 것들이지만 내게 있음에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맥추감사주일, 당연한 것에 감사하려 보니 행복이 저만치서 걸어 왔습니다.

/사랑으로 샘물

(2012,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