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내려가면 아버지를 통해 늘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대 이야기.

6,25전쟁이 끝난 지 몇 년 지나 그 힘들었던 시절, 하나님 은혜로 군 생활

했던 이야기. 저도 화천 북방 휴전선에서 군 생활 쉽지 않게 했지만, 그건

우리 애들한테나 통하지, 아버지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합니다.

정말이지 아버지 군대 이야기는, 한 번만 더 들으면 천 번째입니다. 어릴 때

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 이젠 거의 줄줄 욉니다. 스무살에 결혼하셔서 먹

뱅이에 어머니가 큰 형을 가지셨을 때 영장이 나왔다, 동네 부랄 친구 종은

이 아저씨랑 같은 훈련소에 입대, 서울 용산 자대까지 같이 배치되었고, 예

수 믿는 중대장을 만나 행정실 서무계가 되셨다는.

듣기에 따라서는 그저 그렇고 그런 군대 이야기입니다. 처음 몇 번은 몰라

도 계속 들으면, 정말이지 군대 이야기 재미없구나 싶습니다. 아버지께는 죄

송하지만, 나도 어디가서 군대 이야기 조금만 해야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하실 때면 눈이 빛나십니다. 이젠 지겨울 만

도 하신데, 기억이 아련하실텐데, 수십년을 건너 뛰어 마치 지금 겪고 있으

신 것 마냥 열변을 토하십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십니다. 그때 그렇게 군

생활을 잘 할 수 있었던 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시라.

그랬습니다. 내가 겪은 군대는 다릅니다. 아무리 당나라 군대에 있었어도,

내 있던 부대가 특별합니다. 그 이야기를 할라치면 아직도 포탄이 오가고

백병전이 벌어집니다. 아내가 말해요. “당신도 아이들에게 군대 이야기를 해

줄 때면 눈빛이 달라져요”. 군대 이야기에 감동이 없는 건,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어느 날 아버지 군대 이야기를 듣다가 내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도 설교 할 때 저리 눈빛이 달라질까?”

⦁ 나와 관계 있는 십자가인가?

고난주일입니다. 긴긴 사순절의 터널 가장 깊은 자리에까지 왔습니다. 해마

다 이때가 되면 강단보를 보라색으로 바꾸고 중저음 찬송을 고르며 성찬식

을 준비합니다. 설교는 본문만 다를 뿐, 주제는 정해져 있지요. 십자가와 고

난입니다. 주제가 정해져 있기에 내용도 비듬 비듬합니다. 그래서 때론 설교

준비가 힘듭니다. 했던 말씀을 또 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디 새로운 내용 없나?”

그러나 가만 톺아 보니, 같은 말씀을 또 전한다고 감동이 없는 것이 아니었

습니다.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될 때입니다. 내 이야기라면, 내가 겪고 내가

경험한 이야기라면 그렇지 않겠지요. 자기 이야기는 백번해도 새롭습니다.

아버지 눈빛이 번뜩이시는 것처럼.

저는 오늘 강단에 올라 또 다시 십자가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가룟유다에 의해 팔리사 골고다 온

갖 고초를 다 당하셨다, 십자가를 지시고 마침내 운명하셨다, 그러나 실망하

지 마시라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

그러나 설교하는 내게, 그리고 설교를 듣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그것이 나와 연관된 일인가? 주께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가? 나도 십자가에 못박은 한 사람 맞는가? 그 주님과 함께

죽었을 때 나도 주님과 함께 부활할 줄 믿는가?”                                               

“길 가는 모든 나그네들이여, 이 일이 그대들과는 관계가 없는가?”
(애1:12) 
 

⦁ 목사의 눈빛은? ​

 렘브란트의 <십자가를 세우다, (Elevation of the Cross)>라는 성화입니다.

잘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다는 사람들 가운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지요. 회색 베레모를 쓴 남자. 당시 유대인들은 베레모를 쓰지 않았어요.

​그는 2천년을 지난 오늘날 렘브란트 자신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병정이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이지요.

 오늘 강단에 올라 설교하는 목사의 눈을 보십시오. 그 눈빛이 살아 있는지.

당신도 확인하십시오. 고난주일, 십자가 앞에서 눈빛이 번뜩이고 있는지.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가 못박은 십자가입니까? 내가 못박은 십자가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가 겪은 군대 이야기입니까? 내가 겪은, 나와 상관있

는 이야기입니까?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