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어느 마을에 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가난해서 온가족이 산비탈에 있는 돌밭

을 일궈서 근근이 먹고 살았지요. 그 밭조차 내 것이 아니에요. 동네 부잣집

농사를 소작으로 부치는 것입니다.

그 날은 내 인생이 바뀐 날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땀 흘리며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이제 봄이 되어 씨를 뿌리려면 땅을 갈아

엎어야 했으니 아침부터 시작된 곡괭이질에 힘이 부칩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났을까요, 곡괭이를 내리 쳤는데 퍽하고 뭐가 걸립니다. 워

낙 돌산이어서 또 돌멩이가 걸렸나 보다, 신경질을 냈지요. 옆쪽으로 다시

내리 쳤는데 이번에는 이상한 소리가 납니다.

“쨍그랑”

분명 돌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항아리 깨지는 듯한 소리. 농부는 곡괭이를

놓고 조심스럽게 손으로 땅을 파보았습니다. 뭐가 손에 잡힙니다. 뚜껑 같은

것. 흙을 쓸어내리고 열어 보았습니다. 그 순간, 넋을 잃을 뻔 했습니다. 번

뜩이는 보물들. 한 눈에 보아도 진귀한 것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전에 어떤 마을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소문은 들어 본 적이 있습니

다. 전쟁 중이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자들이 보물을 땅에 묻어 두고 멀

리 떠났는데, 세월이 흘러 엉뚱한 사람이 횡재를 했다는 소문. 어느 마을에

는 주인이 맡겨 둔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책망을 받은 종도 있다

하지 않던가!

농부는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다가,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땅을

좀 더 깊이 파고 항아리를 묻습니다. 그리고는 누가 볼세라 서둘러 흙을 덮

습니다.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습니다. 천장에 보

물 항아리가 왔다 갔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2막>

농부는 몇 날을 끙끙 앓다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집을 나섭니다. 밭주인을

찾은 것입니다. 하도 지체가 높고 까다로운 양반이라, 근간에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습니다.

“어르신 계십니까?”

“아니, 자네가 웬일인가?”

“영감님 뵙고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요”.

“들어오게나”

“영감님, 산비탈에 있는 그 밭 말입니다”

“그래 자네가 소작하고 있는 땅 아닌가?”
“예, 오래 그 밭을 일구다 보니 자식 놈처럼 정이 들었어요. 이제 제 나이도

있고 해서 땅을 갖고 싶습니다. 허락하시면 그 밭을 샀으면 합니다요”

“그래? 근데 좀 비싼데..”

욕심 많은 주인 영감은 터무니 없는 값을 부릅니다. 가지나 산비탈에 있고

땅이 박해서, 작자만 나타나면 싼값이라도 팔아 치우려 했던 땅입니다.

“예, 그 값으로 사겠습니다요”.

주인이 이게 무슨 횡재래요. 흥정이 금방 되어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며칠 내에 잔금도 다 치르겠습니다”

싱글벙글인 주인, 그런데 정작 입이 벌어진 것은 등을 돌리고 돌아 선 농부

입니다. 남들은 모르리라, 평생 검붉은 흙과 땀에 엉키어 거무스름한 얼굴로

살아온 농부의 얼굴이 왜 활짝 펴 있는지, 그는 콧노래 부르며 집으로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집안 식구들을 모아 놓고 말합니다.

“얘들아, 산비탈에 있는 그 밭을 샀다. 좀 비싼 값으로 사서, 내일이면 집도

팔고 송아지도, 살림살이 중에 값나가는 것은 다 팔아야 한다.”

아내가 펄쩍 뜁니다.

“니들 아부지, 뙤약볕에 일하더니 돌았나보다. 아이고 우린 망했다”

자식들도 울고불고 아우성입니다.

“아빠, 우리 이제 어디서 살아요”

그런데도 농부는 꿈쩍도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더니 송아지를 몰고 팔러

나갑니다. 집도 내놓았습니다. 살림가재 중에 값나가는 것을 다 내다 팝니

다. 돈이 다 되니 주인 영감 찾아가 남은 돈을 다 치르고 계약 문서를 받아

냅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온 식구가 이제 정말이지 졸지에 망했습니다.

<3막>

그렇게 길에 나 앉은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입니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질 무렵, 농부는 조용히 식구들을 데리고 나섭니다.

“얘들아, 따라 나오너라”.

산비탈 그 비싸게 주고 산 밭에 갔습니다. 아내는 그 날 이후 쳐다보지도

않던 땅입니다. 농부는 곡괭이를 가지고 아무 말 없이 밭 어디쯤을 파기 시

작합니다. 깊이깊이 팝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손이 익숙합니다.

급기야 아내가 넘어 갑니다.

“아이고 니에 아부지 이젠 우릴 다 묻으려나 보다”

한 참을 파더니 이윽고 무엇인가 걸립니다. 농부는 알고 있습니다. 그때 그

항아리입니다. 항아리를 꺼냅니다. 순간 아내와 아이들 얼굴이 굳어집니다.

흙을 털어내고 뚜껑을 여는 순간, 온 가족의 숨이 다시 넘어 갑니다. 석양에

보석들이 더 찬란히 빛납니다. 이것으로 다시 집을 사고 송아지며 살림살이

며 아이들 공부까지, 저들은 꿈에도 그리던 부자가 된 것입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밤, 어느새 해는 지고 산등성이에 떠오른 달님이

저들을 환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