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하나라도 더 채우려 안달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비우라 하신다

더러운 물로 가득찬 컵에는 새 물을 부을 수 없으니

그의 손을 잡으려면 내 손에 있는 것을 비워야 하니

주 앞에 두 손을 모으기 위해서는 빈 손이 되어야 하니

적신의 꽉 쥔 손으로 왔지만, 마지막 가는 수의에는

빈 손뿐이니

비움으로 채워지는 역설의 진리

비움이 없으면 채움도 없고

채움이 없이는 비움도 없다

빈 손의 기도

빈 손의 섬김

빈 손의 자유

빈 손의 축복

마지막 양식까지 다 비워 대접한 사렙다 과부

빈 손 되어 고향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와 룻

화려한 세상 이력을 배설물처럼 비운 사도 바울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트린 마리아의 빈 마음

밤이 맞도록 수고했지만 빈 배로 돌아온 제자들

오죽했으랴

빈 손의 두려움

빈 손의 허망함

빈 손의 막막함

저들이 빈 손이 되었을 때에야

주님은 은혜로 채우사 높여 주셨다

15년 전, 서울에서 원주로 내려 오던

빈 손의 부족한 이 종에게도

이 종이 섬긴 영락 교회에도

이리 충만하게 주의 복으로 채우셨다

어찌하랴, 비워야 채우시는데

버려도 버려도 고개를 쳐들고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오고

비워도 비워도 이리 그득한

나!

얼마큼 더 비워야 골고다 기슭에 다다르고

얼마큼 더 죽여야 십자가 그늘에 이르르며

얼마큼 더 버려야 저 천국에 날아 오를까?

주님!

빈 손으로 당신께 가도록

버리게 하소서

비우게 하소서

내려놓게 하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