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투성이 인생

⦁ 지갑 이야기

한 주 전에 지갑을 잃어 버렸어요. 청바지 뒷주머니가 얕은 것이 늘 신경이

쓰였는데, 기어이 일이 나고야 만 것입니다. 전날 밤부터 다음날 하루 종일,

집과 교회, 오갔던 길까지 전부 훑었는데 없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그 안에

카드며 신분증이며 애들 사진까지, 정말이지 보이는 게 전부 지갑이었습니

다. 결국 “저는 지갑을 하도 잃어 버려서 핸폰만 가지고 다닙니다”는 부목

사님 말로 위로를 받으며 찾기를 포기했지요. 그런데도 집에 오니 마음이

허전합니다. 하다못해 작년 겨울 양복 속주머니까지 뒤졌습니다. 올해 입어

보지도 않은 옷에서 나올 리가 없지요. 누가 주워서 우체통에 넣지 않았을

까? 혹시 내일 파출소에서 연락 오지 않을까?

그때였어요. 아무 생각없이 옷걸이 아래를 보았는데 구석에 뭔가 있습니다.

어둡고 후미진 농 사이에 깊이 있어서 잘 안 보였는데 거기에 지갑이 있던

거예요. 아마 청바지를 옷걸이 안쪽에 걸려고 훌쩍 넘기다가 그쪽으로 떨어

졌는데 묘하게 벽 쪽에 딱 붙어 세워져서 보지 못했나 봅니다.

“여보! 찾았어 지갑 여깄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정말이지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아이들이 조용하라고 손

가락을 입에 대는 데도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집나간 자식이

돌아온 느낌, (눅15장)말씀들이 당장 이해되었습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

잃은 동전을 찾은 주인, 잃은 아들이 돌아온 아버지. 오죽 감사했으면 모두

들 잔치를 열었을까요. 저도 아이들에게, “오늘 아빠가 한 턱 쏜다”. 무엇보

다 이번 주일에 감사 헌금 해야지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맞은 지난 주일, 감사헌금을 했을까요?

깜빡 했어요. “에이, 다음 주일 추수감사절에 합쳐서 하지 뭐”.

지갑을 찾았을 때 그 기쁨과 감사가 며칠도 채 지나기 전에 사그라졌습니

다. 지갑? 그게 뭐. 원래 있는 거 아냐?

⦁ 추수감사주일

2017년 추수감사주일을 맞았습니다. 들녘에 고개 숙인 볏단들도, 단풍으로

불타고 있는 산천까지도 감사제를 드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교회에서는 일 년에 두 번 감사절을 지키지요. 전반기를 보내고 7월에 맥추

감사주일, 이렇게 모든 수확을 다 마치고 11월 추수감사주일. 하나님은 구

약 레위기에서 일 년에 두 번 감사절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절기는

각각 한 번 뿐인데 왜 감사절은 두 번일까? 감사가 중요하기 때문이고, 무

엇보다 감사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게 뭐 있나, 돌아 봐도 별로 감사거리가 없다”

“맨날 감사 감사타령만 하면 인생이 발전이 되나, 제자리걸음이지.”

어느 목사님의 이런 글을 봤어요.

“아내가 아프면서 나를 괴롭히는 몇몇 단어들이 있다. 기뻐하라, 감사하라,

하나님의 뜻이 있다”.

공감되지요. 감사를 쉬 강요할 순 없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감사, 절기라서

억지로 드리는 감사는 우리를 공허하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

서 ‘감사하라’ 보다, ‘애통하라’, ‘울어라’, 주께서 위로하시리라, 말씀하십니

다.

그러고 보니 감사절을 맞는 목사의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성도들 형편도

모르면서 너무 쉽게 ‘무조건 감사하라’고 하는 것 같아서입니다. 아닌 게 아

니라, 아무리 봐도 감사할 수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몸도 마음도 아프신 분

들, 경제적으로, 일터의 어려움이 있는 분들도 많으십니다. 가정적으로 인생

의 어둠이 와 있는 분들, 무엇보다 영적으로 곤고한 분들 또한 계십니다. 무

슨 감사요, 어떻게 감사절 예배를 드릴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보고 감사하는 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

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롬8:28).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

으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성가 가사처럼,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

하는 것입니다. 시인 정용철의 시처럼, 내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 내

모습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 걷고 있는 길

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채 못 이룬 것 있지만 감사하는 것입니다. 약한 부분

까지도, 장미꽃 뿐 아니라 장미꽃 가시까지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느니라”(딤전4:4)

⦁ 감사하는 만큼 신앙이라

<그건 사랑이었네>의 저자 한비야 는 일단 이름에 감사한대요.

“내가 한 씨인 게 감사하다. 변 씨였으면? 변비야. 노 씨였으면? 노비야. 공

씨였으면? 공비야. 어쩔 뻔 했어. 한비야가 딱이다.”

그 책에서 동네 떡 집 할머니를 소개합니다. 허름한 이 떡집에는 늘 웃음꽃

이 피어납니다. 떡 집 할머니가 늘 손님들과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한

가지씩 칭찬을 던져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떡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떡 칭찬을 하곤 합니다. 이 떡은 이래서 맛있고

저 떡은 저래서 맛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이 떡 집에는 웃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 나는 뭐를 봐도 칭찬할

게 먼저 눈에 들어오네”.

우리 눈에 뭐를 봐도 감사할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진정한 감사는 얻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 거듭난 사람입니까?” 구원파적인 물음이 아닙니다.

목사냐 장로냐를 묻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늘 기쁨과 감사가 넘치느냐?

를 묻고 있습니다. 본회퍼는 말하지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은 간단하게

구별되는데 그것은 ‘범사에 감사함’이다”.

그러므로 그 분 신앙의 깊이를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가, 불평하

는가. 감사하는 만큼 신앙이라. 힘들고 어렵다고 감사를 잊은 사람은 어리석

은 인생입니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받은 은혜와 축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인생입니다. 감사할 일이 있어도 감사를 모르는 마음에

사단이 역사하고, 힘든 중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에는 끝내 복이 들어옵니다.

내 하루의 마지막 기도는 “감사합니다” 이면 좋겠습니다

내 한 해의 마지막 기도도 “감사합니다” 라면 좋겠습니다

내 생애 마지막 기도 또한 “감사합니다” 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p.s.

감사주일 설교 준비하는데 주석가 매튜 헨리(M. Henry)의 지갑 이야기가 나

오네요. 언젠가 그도 지갑을 도난 당했나봐요. 그러자 네 가지 감사 제목을

찾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지갑을 도난당하지 않은 것 감사.

-도둑이 지갑을 가져갔지만 생명은 가져가지 않은 것에 감사.

-지갑에 그렇게 많은 돈이 있지 않음에 감사.

-도둑질 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감사.

지갑을 다시 찾았어도 감사를 잊었는데, 지갑을 도난 당했어도 감사 제목만

네 가지라. 이래저래 부끄러운 감사절, 그런 사람을 강단에 세워 감사를 설

교하게 하시니, 주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 삶은 감사투성이어요.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