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달

⦁ 슬래시(-) 인생

11월 마지막 주일, 치악산에는 하얗게 눈이 덮였습니다. 가을을 화려하게

물들이던 단풍도 다 지고, 원주천에는 철새들이 무리지어 날아들고 있습니

다. 어제까지 에어컨을 켠 것 같은데, 갑자기 추운 겨울이 들이 닥친 느낌이

지요.

스산한 마음이면 자주 가는 곳, 교회옆 철길 넘어 천주교 공원묘지에 올랐

습니다. 먼저 간 이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가 있지요. 가만히 묘비를 보니 두

가지 연도가 기록되어 있더군요.

1918 - 1985. 혹은 1956 - 2008.

출생일과 사망일. 그 날짜 사이에 슬래시(-)가 있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슬래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마다 (-)의 기간이 다르지요. 어떤 분은

너무 짧은 30년, 어떤 분은 80년, 그 이상인 분도 계십니다. 그러고 보니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삶이 시작되는 연도와 끝나는 연도를 갖

게 됩니다. 시한부 인생이라. 슬래시(-) 안에 그 사람의 희로애락 인생이 숨

겨져 있습니다. 이 분에게는 어떤 인생이 압축되어 있을까? 무엇을 위해 살

고, 누구를 사랑했을까? 한 해 한 해 시작하고 보내면서 아쉬움과 후회, 기

뻐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인생은 한 눈에 들

어오는 이 짧은 슬래시(-) 하나에 불과합니다. 1cm도 안되는 짧은 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이라. 이 슬래시(-)를 어떻게 그을 수 있는가, 두 연도

사이를 잘 채우는 것이 문제입니다.

⦁ 마지막 한 달

지난 봄, 여름에도 이 공동묘지에 올랐건만, 오늘 유난히 슬래시(-)가 눈에

들어 온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한 해의 마지막에 서 있기 때문인 것 같습

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다음 주일부터 대림절이니 성탄절 송구영신, 2017년

마지막 한 달이 남아 있습니다. 모든 일에 마무리가 중요하지요. 그림의 마

지막 화룡정점, 어릴적 새끼 꼴 때 마지막 매듭을 잘 지어야 했습니다. 마라

톤에서 야구에서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지요. 시작은 잘 했으나 마무리가 좋지 않았던 인생들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솔로몬이 그리했지요, 사울왕도 손에 꼽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은 미약했지만 나중은 창대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왕, 사도 바

울 등이지요.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가 중요하고, 살 때보다 죽을 때가 중요

합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도 중요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더

욱 중요합니다.

이것을 확장해 보니 이런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 생애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면”

이 질문은 괜한 두려움과 절망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

하면서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톨스토이의 말입니다.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인생을 살라는 뜻

이지요. 성경도 자기의 날을 계수하는 자가 지혜롭다고 말합니다(시90:12).

마지막 날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날 한 날을 소중하게 사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묻게 되지요. “왜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살지 못하는가?”.

우리도 언젠가 삶을 끝내는 연도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한 달의 도전!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Kerry & Chris Shook

목사 부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커뮤니케이터라 하는데, 인생의 마지

막 30일을 가정하고 하루하루 삶을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실천하도록 합니

다.

“한 달만 살 수 있다면, 삶이 대대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것으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왜 암 진단을 받거나 사랑하

는 사람을 잃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우리가 지음 받은 그 목적을

완수하고 싶지 않은가? 그래야 삶이 훨씬 만족스럽지 않을까?”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24쪽에서

그 책에서 후회 없는 삶을 위해 하루를 진지하고 값지게 사는 네 가지 원리

를 제안합니다.

1. 열정적으로 살라

2. 온전히 사랑하라

3. 겸손히 배우라

4. 담대히 떠나라

성도는 매일매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종말론적인(apocaliptic) 삶을 사

는 자들이니, <내 인생의 마지막 한 달>은 2017년 마지막 한 달을 남은 이

시점에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12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오늘부터 주일마다 이 네 가지 꼭지를 주제로 12월내내 생각해 보고자 합니

다. 한 달의 도전! 달력 한 장 너머에 생의 마지막이 있다면! 은혜로운 강단

이 되길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