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 ‘괜찮아’ 라는 말

장영희 교수, 얼마 전 하늘나라에 가셨지요. 소아마비 장애와 3번의 암 투병

을 겪으면서도 참으로 맑은 글을 써서 많은 이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가 쓴 <살아 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셨지요. 친구들은 골목을 뛰어 다니

며 놀이를 할 때마다, 그저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서 구경만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골목을 지나가던 엿장수가 목발을 옆에 놓고 앉아 있는 어린 장영

희에게 깨엿가락을 내밀며 한 마디 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무슨 뜻일까? 깨엿을 공짜로 먹어도 괜찮다? 목발을 짚고 살아도

괜찮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 ‘괜찮아’라는 말 덕분에, “이 세상은 그런

대로 살 만한 곳이고, 좋은 사람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 ‘괜찮아’라는 말, 들을수록 괜찮은 말입니다. ‘그만하면 잘했다’, ‘난 널

이해해’, ‘희망이 있다고’. ‘앞으로 잘 될 거야’, ‘힘내’라는 말이 뒤따라 오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살포시 안아주고 등을 다독여 줄 것만 같은 말.

TV 고교 퀴즈 골든벨, 무대에는 한 친구가 남았습니다. 마지막 문제를 풀지

못하고는 고개를 떨굴 때, 어김없이 친구들이 달려 나와 부둥켜안고 외칩니

다. “괜찮아 괜찮아”. 2002년 월드컵 4강 독일에 졌을 때 모든 관중들이, 거

리마다 붉은 악마들이, 아니 온 국민이 외쳤지요. “괜찮아 괜찮아”.

⦁ 여전히 가슴 찡한 말, 괜찮아

저는 나이가 들면서도 이 ‘괜찮아’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물론 ‘아무 거나

해도 괜찮다’고 미혹하는 말이라면 안 되겠지만,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괜

찮아’ 하며 위로하는 말이라면 얼마든지 좋겠지요. 삶이 버겁고 낙심될 때

그 말 한마디에 우리는 용기를 얻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이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초등 학교 때 자주 아

파서 밤새도록 오한에 고열에 경기(驚氣)까지 할 때, 함께 밤을 지새우며 꼭

안아 주시던 엄마가 하신 말씀, “울 애기 괜찮아 괜찮아”. 학력고사를 망치

고 축 늘어진 어깨로 밤늦게 들어 왔을 때, 아버지에 형들까지 어깨를 두드

리며 하시던 말씀,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뭐”. 나처럼 좋은 교회 좋은 성

도들, 복 받은 목회자도 없을 터이지만, 가끔씩 목회가 힘들어 아내 어깨에

기대면, “괜찮아요. 힘내요”, 아내가 토닥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평안

을 찾습니다. 그걸 채 받았을까, 저는 우리 세 아이들 자라면서, 시험을 보거

나 대학 군대 친구관계 힘들어 풀이 죽어 있을 때마다 자주 말합니다. “괜찮

아, 그까짓 거 이겨 내면 되지”.

돌이켜 보니 우리는 곁에 있는 이들의 이 위로와 격려를 먹고 오늘까지 온

것입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이 말을 들으면 괜시리 가슴이 찡해집니다.

‘괜찮아’. 그렇게 주께서도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괜찮아".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시작되고

12월도 31일, 한 해 마지막에 왔습니다. 그렇게 2017년을 다 보냈네요. 사

람은 1월이 되면 ‘이상주의자’가 되고, 6월쯤 되면 ‘현실주의자’가 되며, 12

월에는 ‘허무주의자’가 된다고 하지요. 새해가 되면 오지게 마음먹고 큰 계

획을 세웠다가도, 얼마 가지 않아 주저앉아 버린 일들이 많습니다. 2017년

끄트머리에 서니, ‘한 해 동안 무얼 하고 살았나?’ ‘연초 계획을 얼마나 이

루었나?’ 돌아보며 헛헛한 마음마저 듭니다.

그래도 세상을 보면 감사하지요. 작년 이맘때 촛불이 전국을 수놓으며 이

땅에 참 정의와 평화가 임하기를 소망했는데, 2017년 새로운 대통령도 뽑히

고 이만큼 나라가 안정과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습니까?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손에 잡힐 만하

게 이루신 것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주의 일에는 어떠셨습니까? 세상도 주

인이 있지요. 회사에 사장님이 있고 학교 공부도 있습니다. 그 앞에서는 바

장대며 충성을 다했는데, 영혼의 주인이신 주님 앞에서 그리했는가?

그런 의미에서 교회를 대표하는 담임목사로서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올 한 해 수고하신 종들이 많습니다. 예배를 위해, 교육과 선교, 봉사와 섬

김의 자리에서, 십일조 비롯해 헌금하신 분들,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열 일 제쳐 놓고 충성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계셨기에 교회가 이만큼 세워

져 왔습니다. 일일이 한 분씩 축복해 드리고 싶지만, 그저 목사에게 주신 축

복권을 앞세워 한 마디로 축복합니다.

“주께서 수고한 종들에게 만 배로 갚아 주시길 빕니다.”

그렇게 축복을 하고는 멀리를 바라보니 저기 ‘거친 들’(아3:6)에서 달려오시

는 분이 계십니다. 목사의 축복을 이루시는 분,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이를 위로하시는 이,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가진 이들도 하나하나 보듬어

안으시고 ‘괜찮아’, 다시 시작하라고 격려하시는 분,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

손에 2018년이 들려져 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나니.

주님과 함께 새해 힘차게 걸어 가시길 바랍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백창우-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거야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 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걸.

백창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중에서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