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바라보라

  
⦁ 십자가에 무언가 있다

어느 교회에 십자가 종탑이 있었습니다. 교회이니 당연히 꼭대기에 십자가

가 있었고, 높은 곳에 있어 아무도 관심 없어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데 어느 날 길 가던 사람들이 십자가를 올려다봅니다. 어린아이도 십자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쳐다봅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큰 이유는 아닙니다. 십자가가 고장 나 어떤 일군이 높은 십자가 종탑에 올

라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십자

가이었는데, 사람이 올라가 십자가에 있으니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

다.

 
그래 맞습니다. 십자가는 덩그러니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거기에는 누

군가가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늘도 십자가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 계십

니다. 우리 인생의 죄와 허물을 해결하기 위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시

기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

무 것도 없는 십자가, 나와 상관없는 십자가입니다. 성도들조차도 부활과 영

생에나 관심을 갖지 십자가는 뒷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이 십자가에 오르시는 건 아니실까? 십자가에 매달려 계

시는 건 아닐까? 십자가에 무언가가 있다고,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십자가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교회 꼭대기기에 있는 십자가에,

강단에 있는 십자가에, 내 마음에 새겨진 십자가에. 신앙생활은 삶의 중심에

십자가를 세우는 일이지요.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도 계

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계십니다. 그것도 매달려 계십니다. 세례

요한의 외침입니다. “보라, 세상 짐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십자가를 목에 거니

사순절 맞아 <십자가 달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재의 수

요일(Ash Wednesday) 예배 때는 광고 드린 대로 십자가 목걸이를 나눠 드

렸습니다. 사실 설 명절을 바로 앞둔 저녁이어서 적게 오시리라 생각했어요.

더구나 올림픽도 있고 해서 빈자리가 많으리라 예상했지요. 그런데 평소 때

보다 더 많이 오셨습니다. 준비한 나무 십자가가 모자라 청년들 비롯해 몇

몇 분들은 받지 못하셨습니다. 기적이지요. 부목사님께 말했어요. “십자가

능력이다(?).”

    
말씀 드린 바, 저는 십자가를 목에 거는 거 잘 하지 않습니다. 차안에도 십

자가를 놓지 않았지요. 무슨 액세서리 같기도 하고, 십자가는 내세우며 삶은

엉망일까 두렵기도 해서. 목회하면서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닌 기억이 없습

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순절을 맞아 나무 십자가를 목에 걸어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마음이 새롭습니다. 몸가짐이 좀 거룩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한 주간 십자가를 목에 달고 살았더니 불편한 때도 많더군요. 세면할

때, 운동할 때, 잠을 잘 때, 일을 할 때. 명절 때는 떡국에 빠지기도 했고,

그냥 깜빡 잊고 걸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십자가가 불편할 때는 따로 있었습니다. 목에 매달린 십자가

가 위치하는 곳이 딱 가슴이더군요. 십자가가 가슴에 있는데 악한 마음먹지

못하잖아요. 십자가가 가슴에 있는데 음란, 미움, 싸움할 수 없잖아요. 십자

가를 등 뒤로 넘기고 싶은 때, 벗어 버리고 싶은 때, 십자가를 감추고 싶은

순간 말입니다. 그만큼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를 지니고 사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죄와 허물로 부끄러운 내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자복하고 회개하며 겸손히 무릎 꿇게 되지요.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내 모습도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지요.

십자가를 바라보면 긍휼의 눈으로 나를 보시는 주님이 보입니다.

그래서 위로 받고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서게 되지요.

십자가를 바라보면 주께서 그 사람도 사랑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그를 미워하던 마음을 내려놓게 되지요.

무엇보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나를 위해 찔리시고 상하신 주님이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 내 삶에서 십자가를 세워 보십시다. 십자가

를 바라보십시다. 그냥 보는 것(look)이 아니라, 묵상(meditation) 하는 것입

니다. 깊이 생각(contemplation) 하는 것입니다.

    
⦁ 십자가 명설교

영국 교회 역사에 유명한 집사님이 계십니다. 존 에글렌(J. Egglen) 집사님.

1850년 1월6일 주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다가, 집사가 눈 때문에 교회에 가

지 않으면 되겠냐는 마음으로 눈보라를 헤쳐 교회에 왔습니다. 현관에서 만

난 어느 성도가 난감한 소식을 전합니다.

“에글렌 집사님. 설교하실 목사님도 못 오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와 목사님이 계신 켈브돈 사이에는 눈이 6피트나 쌓여

있었습니다.

“집사님, 교인들도 겨우 13명뿐입니다. 예배를 취소해야겠어요.”

그때 성령께서 에글렌 집사님께 역사하셨습니다.

“예배를 취소하다니요? 안됩니다.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참석하신 분들 모두

우리 교인들이니 제가 부족해도 용서해 주겠지요.”

그날 주일 본문은 이사야서 45장 22절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나를 바라보라. 그리하면 너희는 구원을 받을지어다. 나

는 하나님이며 구원자니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느니라.”

에글렌 집사님은 설교해 본 적도 없었고 준비해 온 것도 아니기에, 강단에

올랐지만 할 말이 없었습니다. 횡설수설, 이렇게 몇 마디 외칠 뿐이었지요.

“여러분, 간단한 말씀입니다. 주를 바라보라 했습니다. 바라보는 데 무슨 힘

이 듭니까? 손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됩니다. 바라보는데 지식을 가져야 합

니까? 무식한 자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데 나이가 문젭니까? 아닙

니다. 어린아이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를 바라보십시오”

그때 그 자리에 16살 어린 청년이 앉아 있었습니다. 다른 교회 다니는데 눈

보라 때문에 가까운 교회 예배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설교에 은혜

를 받고 인생이 바뀝니다. 그 발음도 분명치 않은 단순한 설교에. 그 청년이

바로 19세기 최고의 설교가 찰스 스펄젼입니다. 훗날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

게 간증합니다.

    
"공식적인 설교자는 눈보라 때문에 오지 못한 듯 했다. 대신에 비쩍 마른 구

두수선공처럼 보이는 사람이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갔다. 그는 성경 본문에

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

은 이사야서 45장 22절이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나를 바라보라. 그리하면

너희는 구원을 받을지어다. 나는 하나님이며 구원자니라. 나 외에는 다른 이

가 없느니라."

"젊은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지금 당장! 당신이 할 일은 주님

을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 즉시, 내 눈 앞에 구원의 길이 펼쳐졌다. 나는 듣고 행하라는 수십 가지의

명령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단순히 "바라보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너무나 강렬하게 내 귀에 내리꽂혔다. 나는 눈이 빠져나갈 정도로

주님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구름이 걷히고 어둠이 물러갔다. 태양 빛이

내 눈을 환히 밝혔다. 그 순간, 나는 일어나서 다른 이들과 한 마음이 되어

소중한 그리스도의 보혈과 주님만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을 찬송할 수 있었다."

(찰스 스펄젼의 구원간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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