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위대한 역설(paradox)

    
 ⦁ 실패한 십자가

 긴긴 사순절의 마지막 고난주일을 맞았습니다. 이번 주간, 주께서 예루살렘

에 오르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우리가 아는 바, 십자가형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런 사형 방법이지요. 죄수는 십자가 형틀을 짊어

지고 형장으로 갑니다. 옷이 벗겨지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 세워집니다. 죄

인은 그렇게 온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당하다가 서서히 죽어갑니다. 어찌

천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돌아가신단 말인가? 그

방법밖에 없었는가?

    
 이 사형 방법이 너무나 끔찍해서 로마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로마 시민권자

에게는 십자가형을 선고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 베드로 안드레, 모두

예수를 증거한다고 사형언도를 받았지만,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울은 참수형

을, 베드로 안드레는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무섭고도 부끄러운 십

자가, 저주와 고통스런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당시 사람들

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며 실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십자가는 패배요 수치와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생명이

있다, 십자가에 능력이 있다, 십자가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믿습니다. 불

합리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에 구원이 있고,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순절 내내 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살았습니다.

주일마다는 부담스럽지만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나누어 왔지요. ‘십자가를

세우라’, ‘십자가를 바라보라’, ‘십자가를 가까이하라’, ‘십자가를 붙잡으라’,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십자가를 지고 가라’.

    
 예루살렘 성 안에 베데스다 연못 서쪽에는 ‘브라이도리온(Praetorium)’이라

는 뜰이 있습니다(막15:16절). 예수께서 처음 십자가를 지시고 출발하신 장

소이지요. 지금은 이 뜰에 작은 기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기념교회 정문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다고 하지요.

“너도 질 수 있느냐?”

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너 정말로 질 수 있느냐?”

    
 이 물음에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예, 십자가를 세우겠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겠습니다. 십자가를 가까이 하겠습니다. 십자가를 붙잡겠습니다. 십자

가를 지고 가겠습니다.”

    
 ⦁ 승리의 십자가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해요. “목회자가 성도들을 향해 해야 할 가장 중

요한 사역은, 십자가가 축복임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라". 다시 말하면 "십

자가가 고난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사탄이 주는 것이라. 십자가는 고난이

아니라 영광이요 특권이요 면류관임을 깨닫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을 떠올려 봅니다. 영

락 성도들은 십자가를 기쁘게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왜 십자가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것일까요? 그것은 한 가지입

니다. 주께서 그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승리하셨

습니다. 사단의 권세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고난과 실패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게 소망과 새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주님은 마지막에 말씀하시지요.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

이, τετέλεσται)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이것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주님은 힘으로 이기지 않으

셨습니다. 그러려면 12군단도 더 되는 천사를 보내셨겠지요(마26:53). 주님

은 신비한 능력으로 이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려면 변화산에서처럼 홀연히

변모하셨겠지요(마17장). 주님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가 아니라 십자가로 이

기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수치, 부끄러움과 저주를 통과해야지만 진정한

구원과 승리를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실패가 아닙

니다. 승리입니다. 십자가의 성도는 ‘성공’이 아니라 ‘승리’가 목표입니다.

    
 고난주일에 우리가 모인 것은, 2천 년 전 한 위대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사 참된 승리를 거두

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기 위함입니다. 그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십

자가는 영광이요 특권이며 면류관이라”. 주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실패한 듯 보이나 승리한 십자가, 참으로 위대한 역설입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