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

  
• 두 정상이 만나던 날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지요. 대북 제재, 핵 미사

일 실험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고조되었습니다. 이러다 전쟁이라도 나는 건

아닌지, 군에 가 있던 아들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랬던 한반도에, 이게 꿈인

지 생시인지요.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만났습니다. 그것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높이 5cm, 폭 50cm 콘크리트 연석, 그러나 70년 가까이 넘지

못하던 분단의 높디높은 벽, 그 벽을 허물고 남과 북이 만났습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이렇게 가까운 것을. 두 정상은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하는데, 가

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흐릅니다. 남누리 북누리 8천만 겨레에게 큰 기쁨을

선물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 순간, 고향의 부모님께 전화 드렸습니다. 이제 눈도 귀도 어두워지시고

정신이 희미해지시는 두 분. 그래도 감회가 유별나심은, 어머니 고향이 이북

이기 때문입니다. ‘강산에’의 <라구요> 가사처럼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내 어머니 레파토리, ‘황해도 연백군 청룡면 영양리'.

팔순이 넘으신 아직까지도 그 주소를 또렷이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바

닷가 마을이었는데 바다 이름이 ‘매포’라고. 매포 바닷가. 어릴 적 물놀이도

하고 고기 잡던 그 곳, 전쟁 끝나면 여동생 중학교 보내 주시마던 오라버니

는 국군 중대장으로 전사하시고, 두고 온 부모님들이야 벌써 돌아 가셨을 터

인 그 곳, 그러나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화기로 너머로 울먹울먹

하시며 전해오는 소리,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종전선언, 평화협정으로 전환

남북미 남북미중 정상회담 추진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목표

가을에 문대통령 평양 방문

정기적인 정상회담

군사당국자 회담 개최

단계적 군축 실현

동해선 경의선 철도 연결

상대방 적대행위 전면중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화

서해 일대 평화 수역 조성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제 얼마 후면 개성 금강산은 물론이고, 꿈에도

그리던 엄마 고향 연백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황해도 연백이야 임

진각에서 엎드리면 코닿을 곳이잖아요.”

    
• 아, 도보다리!

정말이지 그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문대통령 말처럼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열렸으면, 김위원장 말처럼 대결에 종지

부를 찍고 화해와 평화가 한반도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시작이지요. 거대한 변화의 물꼬를 텄을 뿐입니다. 저 많은 약속들을

구체화하고 지켜 내려면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을 것입니다.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들도 도처에 가득합니다. 가까워 보이지만 먼 길이요 멀어도 기어이 가

야할 길, 평화요 통일입니다.

저는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순간도 좋았고, 잠시 월북(?)했던 것도,

공동선언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도보다리>에 앉아 대화하는 모습이 감동

이었습니다. 볕이 좋은 봄날, 오랜만에 정말이지 오랜만에 만난 아비와 아들

처럼, 사이좋은 형 아우처럼, 아니면 소풍 나온 친구처럼, 나란히 산보하듯

걷다가 어디 앉을 곳을 찾았습니다.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서, 그간에

켜켜이 쌓아 두었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두 사람. 70여 년 전에 피바

다가 되었던 그 자리에서, 연두색 숲을 배경으로 한편의 드라마를 찍는 두

사람. 살랑대는 바람에 꽃들이 미소 지으며 그 향기 온 누리에 퍼져 갑니다.

그처럼 아름답고 정겨운 그림이 세상에 또 있으랴! 누가 저들을 총부리 겨누

는 원수지간이라 하겠는가? 반세기도 넘게 적대시하던 수장들이라 하겠는

가? 유채꽃 진달래 모아 통일의 그 길에 맘껏 뿌리고 싶은 하루, 오래 살진

않았지만 내 평생 가장 가슴 벅찼던 날.

예. 한반도에 긴 겨울이 지나고 저만치서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