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두리

• 옹이 옹두리

옹이, 옹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옹이는 나무의 몸에 박힌 가지의 그루터기를

말하고, 옹두리는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상한 자리에 결이 맺혀 불퉁해진 것

입니다. ‘옹두라지’라 하기도 하지요. 옹이든 옹두리든 나무가 세월 거치면서

상처를 받아서 생긴 혹입니다. 나무에 병이 들거나 병충해. 벌레가 먹거나한

자리, 그것을 극복하느라 생긴 고난의 흔적인 셈입니다.

사람에게도 이 말이 쓰여서 정강이에 불퉁하게 나온 뼈를 옹두리뼈라 하고,

옹두리 손은 굳은살이 많이 박인 손을 말합니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옹두리손

이 되어 버린 이 땅의 부모님들이 생각납니다. 속담도 있어서 ‘옹이에 마디

라’, 어려운 일이 계속됨을 뜻하지요. 옹이에 마디까지 생긴 것이니 오죽하겠

어요. 또는 옹이 진 마음이라 하지요. 그 일, 그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아

마음이 굳어진 것입니다. 옹이가 많은 인생은 불행하지요.

그런데 나무의 가지 끝에서 피어나는 꽃도 아름답고, 시절을 쫓아 맺는 열매

도 귀하지만, 세월의 아픔을 이겨내며 남은 저 뭉툭하고 못난 옹두리야말로

속 깊은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오히려 나무의 진가(眞價)는 옹두리 아닐까. 옹

두리가 생길 만큼 모진 세월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인생을 참고 견디어 온 것

입니다. 진주가 조개 속에 들어온 모래알의 고통을 이겨내다 생긴 것이듯, 옹

두리는 나무의 진주입니다. 세월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위대한 역사요 고귀한

흔적입니다. 실제로 요즘은 옹두리가 있는 나무가 더 비싼 값을 받는다고 하

더군요. 나무 조각과 장식에 있어 아름다운 무늬를 내기 때문입니다. 역경을

참고 견딘 것이 값진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 옹두리 교회

가만히 우리 교회를 떠올려 봅니다. 48년이 된 나무가 보입니다. 그 동안 뿌

리도 깊이 내리고 둥치도 커졌습니다. 가지도 많이 뻗어서 정말이지 요셉처럼

담장을 넘은 가지가 되었습니다. 때가 되면 아름다운 열매들도 거두었습니다.

요즘 성경학교 수련회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 아이들이 잎이며 가지들입니다.

이제 저들이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쑥쑥 잘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면 영락 나무에 꽃과 열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

곳곳에 옹두리들이 있습니다. 48년의 풍상(風霜)을 거쳐 오면서 수많은 상처와

아픔, 눈물의 흔적들입니다. 1년 2년이 된 것도 있고, 30년 40년이 넘은 옹두

리도 있습니다. 옹두리 교회. 그래서 볼품이 없습니다. 역사가 얼마 되지 않은

교회라면 이런 자국들이 많지 않습니다. 가끔씩 교회에 오는 분이라면 이 옹

두리를 잘 모르겠지요. 교회 안쪽 깊은 곳에 들어와 섬기다 얻은 상처입니다.

본당에서 주방에서 구역 선교회에서, 함께 일하다 받은 상처입니다. 왜 아니겠

어요. 사람이 하는 일인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우린 다 야곱처럼 도

마처럼 가룟유다처럼 연약한 인생들이잖아요. 그렇게 지난 세월 실수도 많고

갈등도 많았지만, 주님은 그런 허물들을 다 품어 안으셨습니다. 입이 있으나

말하지 않고, 눈이 있으나 보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며 온 성도들이 있었습니

다. 그래서 나무는, 우리 영락나무는 옹두리는 있을지언정 넘어지지 않고 여기

까지 왔습니다.

• 왜 잠만 자느냐?

근간에 이런저런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눈물 가운데 있습니다. 담임

목사인 저도 매일 눈물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어떻게 이 풍랑을 헤쳐 갈까

요.

13세기의 성자인 프란체스코는 꿈에 성 다미아노를 만납니다. 그분은 누더기

를 걸치고 맨발로 지팡이에 의지해 울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프란체스코는

달려가 그를 부축하며 말했습니다. "울지 마세요, 하나님의 성자여. 어찌 된

일입니까? 당신은 천국에 계시잖아요, 그렇죠? 그럼 천국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입니까?"

다미아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천국에도 눈물이 있다네.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지상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눈물이지. 나는

자네가 포근한 침대 위에 누워서 평화롭게 자는 모습을 보고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왜 잠만 자는가, 프란체스코! 부끄러운 줄 알게! 교회가 위험에 처

해 있다네." 당황한 그에게 다미아노는 손을 뻗치고, 어깨로 교회를 받쳐서 그

것이 쓰러지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잠에서 깬 프란체스코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하나님의 명령

으로 듣고 타락한 교회, 본을 버리고 말을 취한 교회, 그래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교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자기 생을 다 바쳤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성자 프란체스코1>, 김기석 목사 글 재인용).

'왜 잠만 자는가?' 하는 성인의 음성이 추상(秋霜)처럼 들려옵니다. 우리 할

일이 있습니다. 깨어나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손을 뻗치는 것입니다. 어깨로

교회를 받치는 것입니다. 교회를 감싸 안고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예. 우리 밝힐 것은 밝히고 사죄할 것은 사죄하되, 그리고는 손을 뻗어 감싸고

가십시다. 주안에서 이편이 어디 있고 저편이 어디 있나요? 다 하나님의 지체

들입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상처 준 사람 상처 받은 사람, 내 맘에 드는

사람 안 드는 사람. 이해되는 사람 이해 안 되는 사람.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모두가 사랑하시는 사람들뿐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들일진대, 주안에

서 못 잡을 손이 어디 있고 못할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 함께 천국에 들어가

야 할 텐데 불편해서 되겠어요? 천국은 불편한 곳이 아니니, 그럼 그와 내가

갈라질까요? 나는 천국에, 그는 지옥에? 혹 반대는 아닐까요?

• 또 한 번의 옹두리를 맺고자

그래서입니다. 같이 천국에 가야지요. 거기서 불편함이 없어야지요. 주님은 고

멜처럼 믿을 수 없는 나를 믿어 주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처럼 사랑할 수 없는

나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허물이 많지만 서로 기대고 서로 일으켜 주고 서로

믿어 주고 손잡아 건너 주십시다.

어떤 성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너무 평안해서 정신 차리라

고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 봐요. 홍수에 오랜 것들이 다 씻겨 가도록 한 번

휘몰아치시는 것 아닐가요”.

예. 영락나무에 또 한 번의 옹두리가 맺혀지려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나무는

그 옹두리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옹두리 때문에 단단해져서 온갖 가뭄과 바

람에도 쉬 흔들리지 않습니다. 잘 이겨내십시다. 잘 건너가십시다. 자랑스러운

옹두리가 맺혀지도록 하십시다. 그래서 훗날 주님나라 갈 때 쯤해서 이 옹두

리를 만져 보며, 그때 하나님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하십시다.

주님, 오늘밤 유난히 당신이 그립습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