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 싶은 그 이름들

    
• 이름이 있는 인생

지난 주간 한 국회의원 장례식장, 고인의 생전 육성이 흘러나옵니다. 그가

속한 당 출범식에서,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라고 물으며 시작하던 연

설입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하는 그 버스, 제가 시무하던

서울 도림교회 바로 옆에 가로수 공원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새벽 4시

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었으니, 강남의 대형 빌딩을 청소하는 아줌마들입

니다.

“이 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느

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

말을 참 구성지게 하던 고인의 목소리가 귀에 생생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고

인의 장례식때 한 줄로 서서 배웅하던 분들이 계셨지요. 국회 청소노동자들.

고인은 당신들을 사람 취급 해 준 유일한 분이었다며, 그 땡볕에 고인의 마

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예, 실로 모든 인생은 존귀하고 존엄한 이름이 있습니다. 김춘수는 우리 잘

아는 시 꽃에서 그 이름을 중시하지요.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래서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수사님은 그곳을 찾아오는 노숙

인들을 김씨, 이씨, 박씨라고 부르지 않는답니다. 한 번 찾아온 이들의 이름

을 묻고 기억했다가 그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이름으로 호명되는 순간 그들

속에 잠들어 있던 존엄성이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해 이름을 부르

는 것, 그것이 바로 평화의 시작이다.”

    
• 제 이름 아세요?

교회학교 아이들, 맹랑한 놈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목사님, 내 이

름 아세요?”. ‘다른 여러 아이들이 있는데, 그와 구별되는 내 이름을 알고 있

느냐?’는 것이지요.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이 있고

이름을 부릅니다. 서로 이름을 모르면서 사랑하는 두 사람을 상상할 수 없지

요. 40년이 넘은 등학교 동창인데 제 이름을 기억해요. 특이하잖아요? 현

장. 9시 뉴스 볼 때마다 나를 생각했다나 어쨌다나. 신학교때 동기 목사들을

만날 때면 하나같이 말합니다. “현장에서 목회 잘하고 있나요?”

    
가끔 답답한 전화가 옵니다.

“목사님 저에요”. “누구..” “저요 김집사”.

김집사, 내가 아는 김집사가 한 둘이 아닌데, 예전 교회 김집사까지 합치면

줄이 긴데. 어떤 땐 전화로 다짜고짜, “목사님 저 아시겠어요?”. 이거 사법

고시보다 더 어렵습니다. 목소리만 듣고 어떻게, 심문하는 것도 아니고, 알

게 뭐에요. 그만큼 나를, 내 이름을 알아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교회 나무들에 이름표를 붙였었지요. 그때 쓴 글입니다.

<나무에 이름표를 붙인 날>

교회를 빙돌아 나무마다 이름표가 붙여졌다.

이강자 집사님이 수고해 주신 것이다.

목련, 회양목, 라일락, 산수유...

장차 무명의 풀들까지 이름을 찾아주시겠단다.

언제는 이름이 없었으랴마는

이름을 따라 이름을 불러주니

그와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다.

에덴동산에 아담이 이 마음이었을까!

    
하나의 ‘몸짓’ 에서

의미 있는 ‘꽃’ 이 되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는 소리

    
사무엘아, 삭개오야, 나사로야, 사울아

그리고 ...

오늘도 그 분이 내 이름 부르신다.

    
“(우리는)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고후6:9절, 새번역)

    
• 부르고 싶은 그 이름들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와 희망은 주께서 내 이름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10:3). 목자는 양의 이름

을 일일이 안다는 것이지요. 각각의 이름을 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검둥

이 짝귀 너, 점박이, 늦둥이, 주먹 쥐고 일어서(?)..."

그런 의미에서 오늘 부르고 싶은 이름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영락의 식구들.

특히 제단에 보이지 않는 이들입니다. 한때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한 하

나님을 부르며 섬겼습니다. 지금 그들의 이름을 정성을 다해 불러 주며 기도

하는 것이, 이 무덥고 가슴 아픈 2018년 7월을 보내고 있는 원주영락교회에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것이 한 배에 탔던 이들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

까? 언젠가 때가 되면, 정말 주께서 역사하시면 다시 모여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며 소망해 봅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