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라, 주님의 발

    
• 발에 대하여
사람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발이 필요합니다. 발을 통해 길을 걸음으로 어디

든 다닐 수 있는 것이지요. 상징적인 의미들도 있어서, ‘발바닥을 붙이고 쉴

곳’은 소유지를 뜻하고, ‘발을 들다’는 어떤 행동을 시작하는 것으로, 복종할

때 ‘발치에 엎드리다’ 라고 합니다. 적을 굴복시킬 때는 ‘발로 적의 목을 밟

다’ 하고, 사울이 용변을 볼 때 ‘발을 가린다’(삼상24:3)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발이 아름답다(롬10:15) 하시고, 하나님 영광의 자리를 ‘발이 있는

자리’(사60:13)라 하십니다.

    
따지고 보면 몸 가운데 발이 제일 불쌍하지요. 손은 좋은 일 재미있는 일

혼자 다 합니다. 눈은 멋진 것 보며 호강하지요. 입도 얼마나 신나요. 맛있

는 것이 많고 할 말 다하고 삽니다. 귀는 호사를 누리지요. 젊은 애들 퀸의

보헤미안 렙소디를 귀에 꽂고 다니며 행복해 합니다. 그런데 발은 주인 잘

못 만나 고생입니다. 온 종일 신발 속에서 숨 한 번 쉬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닙니다. 여름이면 무좀으로 겨울에는 동상으로, 무거운 몸을 지탱하

며 꼬박 버텨야 합니다.

성경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더했지요. 먼지로 가득한 땅, 발이 주요 교통수단

이었던 시절에 더럽고 냄새나는 진상이 발이었습니다. 노예가 주인의 발을

씻는 것이 일상이었고(삼상25:40), 손님을 발을 씻어 주는 것은 후대의 의무

여서 그 집의 가장 어린 종이 담당했습니다.

• 예수님의 발
예수님 발은 어떠셨을까? 예수님의 생애는 특별한 것이 많으시지만, 그 중
에 무엇보다 한 곳에 머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공생애 3년 동안

가만히 있지 않고 그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보세요. 처음에 광야 시

험을 받으시고는 갈릴리 여러 지역으로 다니셨습니다. 회당에서 팔복산에서

고향 나사렛에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가버나움에서 가이

사랴 빌립보에서, 여리고로 수가성으로 뱃세다 나인성으로, 골목골목 두루

다니시며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죄인 세리들과 함께 부대끼셨습니다. 사람

들이 몰려 와서 떠나지 마시라 만류할 때도 있었지만, 또 다른 마을로 가셔

서 일하셨습니다. 밤에나 새벽에는 홀로 한적한 곳에 가사 기도하셨고, 생애

마지막 골고다에서 죽기까지 잠시도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가

만히 앉아 명상하며 도를 닦고 제자들에게 설법이나 베푼 것이 아니라, 대

부분 공생애를 ‘길에서’ 보내셨습니다. 그 발로 복음을 선포하시고 그 발길

로 능력을 일으키셨습니다. 머물러 계실 수 없었던 삶, 목자 없는 양처럼 불

쌍한 백성들을 위해 이리 걷고 저리 뛰어 다니신 삶, 예수님의 삶이셨습니

다. 배가 침몰하는데도 주무신 것은 이리저리 걷고 뛰어 다니시느라 늘 고

단하셨기 때문은 아닐까. 그 발이 얼마나 부르트셨을까? 예수님 발이 더럽

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에버츠(D. Everts) 책처럼 <예수의 더러운 발>이라.

• 발아래 거하라
눈 여겨 볼 것은 예수님의 그 발아래 엎드린 자들은 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

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마15:30) 고쳐 주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죽어가는 딸을 위해 ‘예수를 보고 발아래’(막5:22) 엎드리자, 더러

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리니’(막7:25)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그

발에 입 맞추고’(눅7:38) 향유 옥합을 부은 여인을 고마워 하셨고, 마르다는

정신이 없었지만, 마리아는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눅

10:39) 주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열 문둥병자가 고침 받았지만,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눅17:16) 주님은 그

발 앞에 없는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주님의 발은 좋은 소식을 전하시는 발, 우는 자들 병든 자들을 향하신 발,

인생들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발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예

수님 발 앞에 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언제라도 주님의 발길이 들어오시도

록 내 마음의 길을 열어 두어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씻겨 주시도록 내 발을

내밀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 하시니.

지거 쿼더(Sieger Köder, 1925-)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세족식 그림인데요, 한 사람은 의자에 앉아 있고 한

사람은 땅바닥에 무릎 꿇어 그의 발치에서 발을 닦아 줍니다. 누구의 발일

까?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것을 보니 베드로입니다. 덜렁대던 베드로의 발

은 다른 제자들보다 더 더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얼굴은 보이지 않습

니다. 대야에 비칠 뿐. 단지 예수님의 발만 유난히 커 보입니다. 무릎 꿇은

발. 그 발을 통해 우리는 주께서 베드로 품에서 울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

다.

“내 발은 절대 씻지 못하십니다”. 그래도 발을 내밀어야 하지요. 있는 그대

로, 깨끗하지 않은 발을 내밀어야 합니다. 주님께 내 몸과 마음을 보여 드려

야 해요. 그래야 깨끗해 집니다. 그래야 치유됩니다.

• 발자국 소리

‘나락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요. 얼마만큼 수확을 하느냐는

농부의 부지런함과 정성에 달려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예, 2018년 우리 한

해 동안 아버지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 폭풍우 치던

모진 밤들을 주인의 서성이시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평안을 얻어 잠을 취했

습니다. 대림절 마지막 주일, 이제 예수님이 그 숨소리마저 우리 귀에 들릴

만큼 저기 더 가까이 오십니다. 우리에게 참된 구원과 평화를 주시려, 가장

높은 곳에서 이 땅 가장 낮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오십니다.

    
그 분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 보세요.

아, 주님의 그 발을 보고 싶어라.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