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품에 안기는 송년>

• 품이 있는 인생

오래 전에 참 많이 불렀던 노래가 있어요.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

은 울고 싶어라...” 김수희의 <애모>입니다. 사랑이 절절하지요. 예, 오늘같

은 날엔 그의 어깨와 품에 기대어 쉬고 싶습니다. 힘들다 엄살이라도 부리며.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내 인생을 기대고 싶기 때문이지

요. 삶에 지치고 상처받고 낙심한 사람들, 인생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인생의 참된 목적과 의미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기

댈 곳 기댈 품을 그리워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묻게 되지요. “나는 성도들이

기대고 싶은 목사인가? 나는 누군가가 기댈만한 성도인가? 우리 교회는 이

지역 주민들이 기댈만한 교회인가?”

‘품’입니다. 품이 있는 사람, 품이 있는 교회. 마라스무스(Marasmus) 라는

병이 있다지요. 미국의 르네 스피츠(Spitz) 박사가 이름 붙인 병인데, 아이들

이 자꾸 시드는 병입니다. 고아들을 주로 돌보는데 병원 환경이 좋은데도 자

꾸 병에 걸렸습니다. 그 분이 겨울에 멕시코에 고아들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

다. 시설이 좋지 않고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하지도 못하는 병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고 행복했습니다. 왜 그럴까?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매일 병원에 와서 아이들하고 놀아주고

안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품에 안고 그네도 타고 장난을 치며 이야

기도 해 주었습니다. “안아주어야 행복하구나. 밥 잘 먹이고 좋은 약 주는

것으로 전부가 아니구나”. 안아 주는 품이 중요했습니다.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 ‘엄마 품 안에 있는 아

이’입니다. 아이 뿐일까? 어른도 마찬가지이지요. 겨울 나목같은 인생, 따스

한 품이 그립니다. 무엇보다 한 해의 마지막, 가난하고 고단한 영혼을 누일

주님의 품이 필요합니다. 그 품이 얼마나 좋은지, 태초에 주님도 아버지 품

속에 계셨다 하십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 카타케이마이

성경에 제일 행복한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이 사람을 끌어 당깁

니다. 요한복음의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13:23). ‘카타케이마

이’(κατάκειμαι), ‘기대어 눕다’ 라는 뜻입니다. (25절)에는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25), 그의 머리부터 해서 예수님 가슴, 품에 기대어 누운

것입니다. 심지어 버릇이 없어 보이기조차도 합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아 사

도 요한이라 하기도 하고, 나사로라 혹은 맛디아일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누

구이든, 그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과 얼마나 허물이 없

으면 그 품에 안겨 다리를 쭉 뻗고 누워있겠어요. 그 애제자를 따라, 가끔

잠 못 이루는 밤에 베개를 머리에 대고 예수님 품에 기대어 있는 상상을 합

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 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찬419장)

    
• 주님의 품

성경은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생들의 이야기요. 돌아온 인생들을 그 품에

품어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목자, 양을 몰아세우지

않습니다. 그 양을 “기뻐하면서 어깨에 메고”(눅15:5) 돌아옵니다. 목자의

어깨는 실로 생명이 고비에 처한 이를 평안하게 하는 품이며, 고단한 인생

들이 기대어 새 힘을 회복하는 버팀목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바

로 이 목자의 든든한 어깨와 같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비는 과오를

추궁하지 않습니다. 거지꼴의 아들을 그 품에 덥석 끌어안고 목에 팔을 두

르며 입을 맞추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꺼져가는 생명은 바로

이러한 품에서 그 기력을 회복합니다. 그 품에서야말로 이룰 수 없는 생명

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백 마디 천 마디의 말보다, 말없이 자신의 품을 안식

처로 내어주는 존재에게, 생명은 감격해하며 새로운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바로 이러한 분이십니다. 우리 기력을 소생하

게 하는 생명의 어깨이며, 모든 인생의 염려가 봄볕에 눈 녹듯 녹아 사라지

는 사랑의 품입니다.

<기대고 싶은 그 곳>

-2013, 11월 17일 목자의 글-

    
이렇게 힘든 날엔

늦가을 나목(裸木)처럼 앙상한 내 모습이 서러워

어디 맘 편히 기댈 어깨가 그립다

    
이렇게 비오는 날엔

처마끝 제비처럼 젖은 날개 내려 놓고

어디 따스히 안길 품이 그립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은 목자가

기뻐하면서 메고 오던 그 어깨,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탕자를

덥석 끌어안은 아비의 품

    
그 든든한 어깨에 기대고

그 포근한 품에 안기어

오늘은 펑펑 울고 싶어라

    
기쁨은 함께 하지만

슬픔은 혼자서 삭이는 것,

집에서는 아빠라고

밖에서는 가장이라고

속내를 드러내 넋두리도 못하고

허장성세(虛張聲勢) 살아 온 날들

    
어서 오시옵소서 주님!

길 잃어 헤매는 이 광야에 아주 어둠이 내리기 전에

쥐엄열매도 없어 돌아갈 기력조차 사라지기 전에

    
이 밤 십자가에서 다 내어 주신 그 어깨에

그 넉넉한 품에

아득-히 기대고 싶어라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131:2절)

     
 • 주님 품에 안기어

오늘 한 해의 마지막 송년주일을 맞았습니다. 멀고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는 크고 작은 역

사의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이루어냈지만 또한 많은 것을 잃었

습니다. 감사도 있고 회한도 많습니다. 기쁜 일도 있고 후회되는 일도 있습

니다. 마음을 준 사람도 있지만 벽을 쌓고 산 사람도 있습니다.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은 인생도 있지만, 넘실대는 홍해 앞에서 길이 보이지 않는 인생

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 해 마지막에 왔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맞은 것은 아니지

만, 한 주 한 달 한 해의 마지막을 주시는 것은 인생의 ‘그 날’을 훈련하라

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지난 주간에도 장례가 있었습니다. 그 날에 다 놓고

갈 것입니다. 그 날에 어디 기댈 곳 없습니다. 이 땅에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타향살이일 뿐입니다. 이제 저울로 이익과 손해를 따져 보는 일을 멈

추고 그 분을 바라볼 뿐입니다. 인생의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

님 품에 기댈 뿐입니다. 예배는 주님 품을 찾는 일입니다. 기도는 주님 품에

나를 맡기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다름 아닌 주님 품에 안기는 일입니다.

• 그 선한 힘에 감싸여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님이 베를린 감옥

에서 쓰신 송년 기도시가 있습니다. 1944년 12월 19일, 이듬해 4월에 사형

당해 순교하셨으니, 절망의 어둠이 그와 가족들을 깊이 감싸고 있던 때입니

다. 그 기도시 가운데 일부를 노랫말로 한 찬양이 있으니 오늘날 독일 교회

가 가장 사랑하는 찬송가라 합니다. 오늘 오후에 배울 것인데, 이 기도문으

로 한 해 <목자의 글>도 마무리합니다. 주님 품에 안기어, ‘그 선한 힘에 감

싸여’(Von guten Mächten treu und still umgeben).

<선한 힘에 감싸여>

선한 능력에 언제나 고요하게 둘러 쌓여서,보호받고 위로 받는

이 놀라움 속에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원합니다.

    
옛 것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어두운 날들의 무거운 짐은 여전히 우리를 누르지만,

오! 주님, 내몰려 버린 우리의 영혼에게

주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을 주옵소서!

    
주님께서 쓰라리고 무거운 고통의 잔을 가득 채워 저희에게 주셨으므로
저희는 그 잔을 주님의 선하고 사랑스런 손으로부터

떨림 없이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이 세상에서 기쁨과 빛나는 햇빛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며

저희의 생명을 온전히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어두움을 밝히신 촛불은

오늘도 밝고 따뜻하게 타오르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다시 하나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압니다,

당신의 빛이 밤을 비추고 있음을.

이제 저희 주변 깊은 곳에 고요가 편만할 때,

    
저희 주변을 보이지 않게 에워싼

세상에 온전히 울려 퍼지는 소리를

저희들로 하여금 듣게 하옵소서.

    
주님의 모든 자녀들이 소리 높여 부르는 찬양을.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Von guten Mächten

    
Von guten Mächten treu und still umgeben,

behütet und getröstet wunderbar,

so will ich diese Tage mit euch leben

und mit euch gehen in ein neues Jahr.

    
Ich will das alte unsre Herzen quälen,

noch drückt und böser Tage schwere Last,

ach, Herr, gib unsern aufgescheuchten Seelen

das Heil, für das du uns bereitet hast.

    
Und reichst du uns den schweren Kelch, den bittern

des Leids, gefüllt bis an den höchsten Rand,

so nehmen wir ihn dankbar ohne Zittern

aus deiner guten und beliebten Hand.

    
Ich willst du uns noch einmal Freude schenken

an dieser Welt und ihrer Sonne Glanz,

dann wolln wir des Vergangenen gedenken,

und dann gehört dir unser Leben ganz.

    
Lass warm und still die Kerzen heute flammen,

die du in unsre Dunkelheit gebracht,

führ, wenn es sein kann, wieder uns zusammen.

Wir wissen es, dein Licht scheint in der Nacht.

    
Wenn sich die Stille nun tief um uns breitet,

so lass uns hören jenen wollen Klang

der Welt, die unsichtbar sich um uns weitet,

all deiner Kinder hohen Lobgesang.

    
Von guten Mächten wunderbar geborgen,

erwarten wir getrost, was kommen mag.

Gott ist mit uns am Abend und am Morgen

und ganz gewiss an jedem neuen Tag.

(Dietrich Bonhoeffer, Brevier. 1944년12월 )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