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에 대하여

• 수치심

언젠가 본당 앞쪽에서 어느 성도께서 조용히 다가와 말씀합니다.

“목사님, 저기요”.

말씀을 못하시고 주뼛주뼛하십니다.

“집사님 말씀 하세요. 왜요?”

“아니 그게, 열려 있어서요”.

“뭐가요?”

“바지 지퍼가, 닫으세요”.

아 팔려라. 화장실 다녀 온 게 언젠데 그 동안 그렇게 하고 활개치고 다녔

던 것입니다. 부끄러운 기억이지요. 그 다음부터 항상 바지 지퍼 조심합니

다. 교회 밖, 길에서나 성도를 만나면 반응이 재미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심히 당황합니다. “아휴~ 세수도 안했는데”. 세수 안한 걸 스스로 자수하세

요. “화장도 안했는데~”. 화장 하나 안하나 거기서 거긴데 얼굴을 감추십니

다. 부끄럽다는 것이지요. 이런 부끄러움은 사람을 미소 짓게 합니다. 더 고

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예의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반대로 너무 부끄

러움을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벌거벗은 임금님, 뉴스에 고개 숙인 패륜아

들, 검찰 포토라인에 서 있는 정치인들.

사실 우리 양심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사람이니까 그렇지요. 부끄러

운 짓을 했을 때, 부끄러워 할 줄 모르면 사람이 아니지요. 금수만도 못하다

합니다.

    
• 의미 있는 부끄러움

‘지미 영’(Jimmy Young)이라는 권투선수가 있어요. 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

먼 등 당대 기라성 같은 선수들 사이에서 세계 챔피언을 지냈습니다. 원래

어릴 때부터 권투를 하지는 않았어요. 청년때 할 일이 없어서 무위도식하다

가 세계 챔피언 알리의 스파링 파트너가 됩니다. 말이 좋아서 파트너이지

대선수의 몸을 푸는 상대역입니다. 주로 맞는 일을 한대요. 때리면 맞고 피

하는 일, 연습용 인생입니다. 어찌 보면 창피한 일이지요. 하루 종일 맞고

저녁이 되면 피곤해서 인생을 비관 했습니다. 매일 쥐어 터지는 삶, 대선수

를 위해 소비되는 인생,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무의미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맞으면서 맷집을 키웠고, 얻어 터

지면서 피하는 요령을 배웁니다. 대선수와 상대하면서 이기는 법을 터득하

고 맞으면서 점점 꿈을 키웠습니다. 끝내 조지 포먼을 이기고 알리까지 넘

어서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릅니다. 그에게 맞는 일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하는 면류관이었습니다.

    
이제 3,1운동 백주년입니다. 수많은 백성들을 죽이고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한 일본, 아직도 진심어린 사과는 커녕, 독도 문제 등을

일으키는 그들, 적당히 정치적으로 합의해 준 이 땅의 정권에게도 분노가

일어납니다. 실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들이지요.

반면 윤동주 시인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함께 보았던 영화 <동

주>, 그는 학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 도쥬(平沼東柱)’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합니다. 부끄러워서 자책하지요. 이때 정지용 시인이

위로하며 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윤시인,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움이

아니야. 부끄러운 것을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 거지.” 이처럼 ‘부끄러

움’은 그의 시와 짧았던 인생을 이어 주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됩니다. 서시

(序詩)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은 얼마나 미미한 것인가. 예민한 양심의 촉수가 있는 사

람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윤동주 그는 한마디로 부끄러움을 아는 시인이었

습니다. 칼라일(T. Carlyle)은 말합니다. “수치심은 모든 도덕의 원천이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을 경험할 수도 있지요. 생각만 해

도 몸서리치게 하는 과거 수치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그 일을 통해 배운다면 의미 있는 실패, 의미 있는 부끄러움

입니다. 그 일을 통해 배우는 게 없는 것이 진짜 부끄러움이겠지요. 수치와

부끄러움을 창조적인 가능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정신대 할머니를 통해 주

권국가가 중요함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운 인생임을 깨닫는 것입

니다. 얻어 터지면서도 챔피언을 꿈꾸는 것입니다.

수치를 느끼는 대부분의 일은 과거이지요. 그 과거는 달라질 수 없습니다.

과거는 하나님도 바꾸지 못하십니다. 그러나 해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수치스러운 일이 나를 좌우하지 못하도록, 내가 그것을 좌우하도록, 재해석

하고 재정렬해서 새로운 가능성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과거에서 배우고,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꿈꾸자!”

    
• 부끄러운 성경

성경엔 온통 부끄러운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끄러움' 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여러 말로 표현되어 있지만 구약에 총 195번이 나오고 신약에는 46

번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죄의 역사는 부끄러움의 역사였지요. 창세기

에,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그냥 벗고 살았지요.

그런데 하나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그때부터 부끄러움이 찾아왔

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부끄러움을 감춥니다. 그 이후로 동생을 죽인 가

인, 벌거벗은 노아, 믿음의 조상들의 부끄러운 모습, 애굽의 4백년 종살이를

거쳐 바벨론 포로 생활까지, 수치스러운 선민 이스라엘 역사가 계속됩니다.

그 이야기가 종합된 것이 (마1장) 족보이지요. 신약의 말씀을 시작하면서 예

수님의 조상들을 쭉 언급하는데, 족보에 오르기 힘든 인물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을 수 없었습니다. 백세가

된 아브라함, 당시로 하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낳고도’

마찬가지이지요. ‘이삭이 에서를 낳고’가 되어야 영광스러웠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낳고’는 부끄러운 가문입니다. 그런데 이삭에서 야곱으로 가문의 대

가 이어졌습니다.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바꿔 주신 것이지요. 그 야곱의 아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서서 베레스를 낳습니다. 이건 정말 선데이서울 같은

삼류 잡지에나 나올 법한 일이지요.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 시아버지가 그녀

와 동침해서 낳은 아들이 베레스입니다. 치욕이지요. 어디 이런 수치스러운

조상을 떳떳이 말할 수 있겠어요?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라합

은 여리고 성 기생입니다. 그녀의 아들 보아스가 이방 여인 룻의 남편이 되

었고 그들이 다윗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됩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

게서 솔로몬을 낳고’. 수치 중의 수치이지요. 가장 위대한 왕이라 숭상하는

다윗, 우리야의 아내가 누구예요? 밧세바입니다. 너무 창피해서인지 그 이름

조차도 밝히지 못하고 있어요. 전쟁 통에 임금과 바람을 피운 파렴치한 여

인이었습니다. 그때 낳은 자식이 솔로몬이지요. 그가 이스라엘의 문화를 꽃

피운 지혜자가 됩니다.

    
• 부끄러움에서 영광으로

인간의 죄악과 능력으로 보면 도저히 ‘낳을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부끄

러운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황무지에서 소망의 꽃이 피우납니다. 수치스러운

인생을 영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태복음 족보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계보 위에 계신 분이라. 인간의

부끄러움, 죄악, 연약함, 탁류(濁流)가 적시고 있는 땅, 도대체 기대할 수 없

는 바닥에서 ‘낳음’을 이루신 역사라고. 예수님은 이렇게 ‘못 낳고 못 낳고’

하며 ‘낳고’를 가로막고 있던 것들을 무너뜨리시는 분입니다. 불가능을 가능

으로, 수치를 영광으로, 부끄러움을 굴러가게 하시는 분이시라(수5:9).

    
주님은 우리에게 그 영광을 주시기 위해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가장 부끄럽게 여겼던 당시 이스라엘에서 맨몸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 비천과 굴욕, ‘세상의 구경거리와 만물의 찌끼가

되는’(고전4:9-) 치욕스러운 일을 받으셨습니다. 그 십자가 은혜로 우리가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지고 나아갈 때 가려 주십니다. 십자가는 알몸의 부끄

러움을 가려주는 이불입니다. 벌거벗은 몸을 가려 주는 그리스도의 옷입니

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

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