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신 선물, 임혁진

 • 널 잊지 않을게

혁진이, 근 일 년여 동안 우리 기도손이 향하던 이름이었지요. 허망히 그 아

이를 보내고 맞은 주일, 어김없이 형, 동생과 함께 예배하던 자리가 유난히

텅 빈 듯합니다. 이렇게 글을 통해 교회 역사인 주보와 목자의 글에 그 아

이의 흔적을 남깁니다. 이 글에는 “언제까지나 너를 잊지 않을게” 하는 마

음이 담겨 있습니다.

    
임혁진.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난 지금, 그 이름과 모습을 가슴 속에 담게

되었습니다. 말이 많지 않은 아이였지요. 묵묵하고 듬직한 아이, 그런데도

자기 생각과 주장은 분명한 아이. 글 솜씨도 좋아서 제법 시를 쓰기도 했어

요. 어른들에게 공손하고 예의 바른 착한 아이였고, 큰 키만큼 운동을 잘해

서, 재작년이었지요 전교인 야외예배에서 족구 대표 선수로 공을 차던 모습

이 생생합니다. 아빠엄마 형과 동생을 참 좋아했던 아이, 의사들이 입을 모

아 칭찬할 만큼 그 힘든 항암치료를 잘 참아낸 것도, 너무나 사랑한 가족들

을 위해서 아니었을까? 봉산어린이집부터 영락교회 중고등부까지 함께 자란

친구들 여전한데, 가장 순수하고 예쁜 영혼을 하늘 정원에 심으시려는지, 하

나님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우리 마음도 이럴진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

은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아비어미가 있습니다. 단장(斷腸)의 애(哀),

이리도 아픈 이별이 또 있을까! 할머니가 하늘에서 혼자 계시는 것이 마음

에 걸렸나봐요. 그렇게 사랑했던 아빠엄마보다 먼저 서둘러 하늘 길로 향합

니다.

    
• 그리스도 안에

지난 월요일, 마지막 숨을 쉬는 혁진이를 보았습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몸만 봐도 아직은 어린 청년이 견뎌 내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

웠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아빠엄마와 함께 저희 부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

다. 거칠었지만 아직 숨이 남아 있고 귀가 열려 있었기에, 우리들의 기도를

들었을 것입니다. “혁진아. 고통이 너무 심해 힘들 때마다 엄마 아빠를 부르

렴, 그리고 이렇게 외치렴. ‘주님 주님 도와주세요’”. 비단 그 마지막 고통의

순간 때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 아이는 주님 도우심을 힘입어 하늘에 오

르고 있으리라.

    
우린 알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리 빨리 불러 가시는지. 정말이지 거

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기만 합니다(고전13:12). 그러나 ‘그때에는’ 얼굴

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밝히 알 것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산 자들도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날, 잠시 이별한

영혼들이 다시 만나는 날, 그 날에는 지금 주께서 아시는 것 같이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예. 혁진이는 이제 우리 곁에 없습니다. 어제는 살았지만 오늘은 죽었습니

다. 어제는 부모 곁에 있었지만 오늘은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도 안에’ 있으면 산 자나 죽은 자나, 이곳에 있든지 저 곳에 있든지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열여덟 해 동안 ‘이 땅의’ 몸과는 전혀 다른 ‘신령한’ 몸으로

살아 있을 뿐입니다(고전15:13).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우리 보다 먼저

온전한 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죽음의 몸

이 생명과 부활의 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 ‘아버지’ 품

안으로, 영혼의 어머니 예수 그리스도 품으로 더 가까이 가는 중입니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볼 수 있든지 볼 수 없든지, 지금이든 그때

이든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죽는 자들도 복되도다.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 하늘 아버지 품으로

1년 동안 아들과 평생의 대화를 다했을 엄마

1년 동안 평생의 사랑을 다 나누었을 아빠

1년 동안 평생의 눈물을 다 흘렸을 성진 찬진

1년 동안 평생 짊어 질 십자가를 다 짊어진 가족들

    
주께서 저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말로도, 그 누구도 헤

아려 줄 수 없으니 우리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신 하나님께서, 그리고 다시 부활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망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주님을 따라 혁진이도 부활할 줄 믿습니다. 오늘 주님과 함께 낙원

에 있을 줄 믿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보호하실 줄 믿습니다.

    
• 우리에게 주신 선물

미국 보스턴 한인감리교회 홍석환 목사. 보스턴 대학에서 공부하고 미래가

창창하던 목회자. 그는 17살 큰 아들 현택이를 하늘나라로 보냅니다.

2004년 가족 여름휴가를 떠나려는데 현택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가

벼운 두통이거니, 그런데 점점 더 아파옵니다. 끝내 뼈암이라는 진단을 받습

니다. 그리고 8개월 후 거짓말처럼 죽습니다. 혁진이처럼 늠름했던 아이, 16

년 10개월을 살았습니다. 부모의 눈에 피눈물이 강이 되어 흐르고, 절망의

나락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었던 지독한 어둠의 터널을 지냅니다.

그리고 3년 후 펴낸 책, <뜻밖의 선물>. 아들의 8개월 투병과 이후 몇 년

동안, 목사님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맨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하나 듣게 됩니다. “왜 하필 이런 고통이 나

에게 있습니까?” 수도 없이 묻는 중에 끝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왜 너

는 아니어야 한다고 말을 하느냐, 왜 네 아들은 병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하느냐”. 또 말씀하셔요. “내가 그를 데리고 있을 터인데 네가 왜 걱정하느

냐”. 결국은 고백합니다 그 아이가 하나님의 선물이었음을, 그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행복이었음을.

    
혁진아, 네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었구나. 너와 함께 했던 시간

이 행복했다. 짧았지만 우리에게 아들로, 형동생으로, 조카로, 친구로 있어

주어 고맙구나. 마지막 너의 관에 손을 얹고 엄마 아빠가 오열하며 하시던

말 기억하니? 그 말 다시 하며 인사할게. “혁진아 사랑한다”. 그리고 한 가

지 더, “기다리고 있어. 천국에서 만나자”.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

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고전13:12)

(Videmus nunc per speculum in aenigmate, tunc autem facie ad fa

ciem)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