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창을 열라

• 단풍을 기다리며

어느새 10월을 맞습니다. 아침날씨는 제법 서늘해서 두툼한 옷을 껴입습니다.

시나브로 낮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집니다. 여름에는 새벽예배 가는 길도 벌써

환했는데, 이제는 돌아오는 길도 어둑신합니다. 가을의 정취가 참 좋습니다.

여름이 마음을 들뜨게 해서 밖으로 향하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차분히 정돈돼

서 마음을 안쪽으로 향하게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날.

설악산 정상에는 첫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요. 이제 점점 그 아래로 내

려와 오대산을 물들이고, 치악산으로 이어져 빨갛고 노랗게 분칠할 날이 멀지

않습니다. 저 높은 시루봉에서부터 황골을 지나 오리골을 거쳐 우물시장까지,

산마다 불이 타는 가을이 기대됩니다. 미스바 단풍나무들은 또 얼마나 붉어질

까요. 엘림 곁에 홀로 삐쭉한 은행나무는 올해도 샛노랗게 꽃단장을 하겠지요.

눈이 부시게, 그리 환하게 말입니다. 마지막 남은 한 잎까지도 다가 올 엄동설

한을 대비해 뜨겁게 불타는 날입니다.

그러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단풍은, 가장 황홀한 빛깔로 물이

듭니다. 그리고 방하착(放下着)! 누구나 그 날은 혼자인 법, 그렇게 우리도 피

고 질 터인데. 저기서 안도현이 묻습니다. “너는 한번이라도 저렇게 불타 본

적이 있느냐?”

• 가을의 기도

숭실대학교에는 동문인 김현승 시인의 글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해마다 이

맘때가 되면 이 분의 시를 읊조리지요.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

이 가을에는

듣게 하소서

깨끗이 닦아둔 마음의 창문(窓門)을 통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우매의 소리 잠재우고

둥둥, 영혼을 깨우는 소리를 듣게 하소서.

(마지막 연은 불손하지만 제가 보탠 글입니다)

• 마음의 창문을 열라

두 개의 창(Window)이 있다고 하지요. 하나는 세상을 보는 창이고, 또 하나는

그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영혼의 창(Windows of the Soul) 입니다. 영혼의

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사귀며 세상을 봅니다. 그곳은 말씀을 듣는

곳이며 주님과의 여행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그 창은 바라보는 대상을 존중하

는 마음으로부터 열립니다.

그 옛날 노아가 방주의 창을 열었듯(창8:6), 라합이 구원의 창을 열어 붉은 줄

을 매달았듯이(수2:21), 다니엘이 기도의 창문을 연 것처럼(단6:10), 술람미 여

인이 사랑의 창을 연 것처럼, 창문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다리우스 왕의 조서

를 듣고도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여는 다니엘을 생각해 봅니다. 그때 그 마

음이 어땠을까?

그러므로 한 가지 분명해 졌습니다. 세상은 헛된 창문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합니다. 그 창문으로는 온갖 죄악이 들어오고 유혹과 시험만 들어 올 뿐입니

다. 우리 시대 절망과 방황은 세속의 창문을 너무 활짝 열기 때문은 아닌지요.

내 영혼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지만 하루하루 분주함에 휘둘려

살기에 영혼의 창을 닦지 않고 삽니다.

그러나 맑고 깨끗한 ‘영혼의 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다가가지요. 하나님

의 말씀은 비와 눈처럼 온 땅에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특정 장

소, 예컨대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빗물을 가장 눈에

잘 띄는 호수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의 말씀의 흔적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 삶의 상황 속에. 세상 구석구석

에. 심지어 모든 꽃잎의 가는 줄무늬 속에도.

“그분의 다가옴은 말씀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다가감은 들음으로 시작된다. 그

분을 찾음은 보이심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찾음은 봄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을

찾는 우리와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은 일상생활의 창에서 서로 만난다. 이것

이 영혼의 창이다<영혼의 창>, Ken Gire, (95쪽)...”

“...여기 좀 보렴. 이 창을 들여다보렴. 네 영혼을 보여 주는 창이란다. 이 창은

너에게, 네가 누구이며 네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네 삶의 소리에 귀 기울

일 때 네가 평생 하게 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네 삶이 너를 어디로 부르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단다” (20쪽).

켄 가이어는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의 창을 14개 소개합니다. 자연과 인간, 영

화나 미술, 시와 음악, 추억, 꿈, 눈물, 인생의 광야, 역사...이들은 모두 우리

영혼의 창이 되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합니다.

• ‘내 마음의 창’은?

누구에게나 영혼의 창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창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 볼 여유 없이 그저 바쁘게만 산다는 사실입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영혼의 창 앞에 잠시 머물러 자기 내면을 바라볼 일입니다. 영혼의 창을 맑게

닦으십시오. 그래야 더 잘 보입니다. 내 창문이 흐리고 더러우면 그 창을 통해

보는 세상도 그렇게 보입니다. 주님 문밖에 서서 두드리시니 창문을 여십시오.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때 구원의 방주로서 올곧게 설 것입니다.

“내 마음의 창은 무엇에 활짝 열려 있을까? 깨끗한가?”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