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이 있으십니까?

    
• 골방에 대하여

비밀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CCTV를 통

해 다 찍힙니다. 실제 저도 오늘 교회 오면서 한 번 세어 봤어요. 집문을 나

서면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 앞에서, 강희연 미용실에, 막창곱창집을 지나면

서, 그리고 본당 앞에서, CCTV에 찍혀서 교회에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카

톡 벤드 등 SNS를 통해 자신을 보여 줍니다. 무엇을 먹고 있고 어디에 가

있는지, 나의 사생활을 적절히 공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생활이 보장되

어야 하는 집이나 사무실, 차 안이나, 화장실? 혹시 내가 무엇인가에게 노출

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 기분이 상하고 두렵기조차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본당 안에는 그런 기재가 없습니다. 저만 찍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이어서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 아시는 행위들을 요구합니다. 은밀한 골방, 은밀한 기도, 은밀한 고

백, 은밀한 구제.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구제를 하려면

오른손과 왼손이 같이 나가는 법인데 어떻게? 왼손을 묶어 둘까요?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하라, 하나님께서 아시고 갚으시리라.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은밀한 골방이 있느냐?

골방! 뭔가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곳, 밀실 다락방 아지트 등이 떠옵니다. 어
릴 때는 혼자 쓰는 내 방을 갖고 싶었지요. 막내여서 아버지 어머니랑 같이

있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방을 쓴다고 다 골방이 아닙니다. 세상

문제로 마음이 복잡하면, 온갖 더럽고 추한 생각으로 가득하면 독방일 뿐이

지요. 탄식의 독방, 절망의 독방. 성경에서 골방은 ‘타메이온’(ταμειον), 내

영혼이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 대하여 문을 닫고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열려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내 안을 향해 더 깊이 닻을 내리는 곳, 공간의 문제

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지붕 위가 골방이었지요(행

10:9). 한나에게는 실로에 있는 성막이었고, 다니엘에게는 자기 집 윗방 창

문가였습니다. 저들은 거기 은밀한 골방에서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함으로

인생의 길을 찾았습니다.

에스겔 환상에 의하면, 솔로몬 성전에는 내벽과 외벽 사이에 골방들이 있었

습니다(겔41:5-). 제사를 위한 물건, 십일조와 제물들을 보관하는 곳이고,

무엇보다 제사장들이 기도와 쉼을 통해 제사를 준비하는 방입니다. 이 골방

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서남북 삼면으로 한 면마다 30개씩, 총 90여개가 있

었습니다.

찬송을 담당한 레위인들은 이 방을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우두머리라 그들은 골방에 거주하
면서 주야로 자기 직분에 전념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대상9:33)

저들은 그 골방에서 ‘주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했습니다. 백성들 앞에

서 예배를 인도하기 전에, 자신들만의 골방예배를 드린 것이지요. 그 골방에

서 충분히 하나님 앞에 고백된 그 곡을 인도할 때, 하나님의 강한 임재를

경험했고 온 백성들과 함께 기뻐했습니다.

주께서 그러한 성전 골방을 염두에 두시면서 말씀하신 것은 아닐까?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

리라"(마6:6)

• 골방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골방에서 우리를 만나기 원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숨어 계신 하나

님.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아무 것에도 방해 받지 않는 은밀한 곳을 찾듯,

세상으로 향하는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과 단 둘만이 있는 그 밀폐된

공간에서 기다리사 은혜를 주십니다.

아이들과 차를 타고 갈 때, 온 식구들이 실컷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가만

보니 한 놈은 아무 반응이 없어요. 저 혼자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심각해지

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 귀에 리시버를 끼고 무슨 영상을 보고 있는 것입

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거기에 쏙 빠져 있습니다. 아무리 차 안에서 시끄

러운 소리가 나도 전혀 괘념치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은밀하게 교제하고 있는가? 하나님과 만나는 골방은 내적

생명의 상징이며 훈련장이다. 날마다 신실하고 충직하게 골방에서 무릎 꿇

으라. 내적 생명력이 더 강해질 것이다. 하루 종일 기쁨으로 춤추게 될 것이

다.”  <Andrew Murray, 골방에서 만나는 하나님 중에서>

    
그런데 골방의 ‘골’은 시신을 넣는 ‘관’을 말합니다. ‘골로 가다’는 말이 있

지요. 죽으러 간다는 뜻입니다. 골방으로 간다는 것은 죽으러 간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마6장)에서 말씀하시는 골방의 의미가 분

명해 집니다. 골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며, 하나님

의 말씀 앞에 철저하게 나를 부인하는 곳이며,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삶을 결단하는 곳입니다(갈2:20). 내 뜻, 내 계획, 내 욕망, 내 방식을 죽음

에 비견될 정도로 내려놓고, 그렇게 사생결단하며 드리는 기도, 하나님께 응

답되리라. 골방에 가득한 보화를 소유하리라. 주님도 빈들이나 한적한 곳에

새벽 미명이나 깊은 밤까지 사람들로부터 은폐된 곳, 골방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 사역의 비밀은 골방에 있었습니다.

    
새삼 묻습니다. 골방이 있으십니까? 그러기 위해 떠나야 할 것이 있고 비워

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으십시오.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것입니

다. 세상 소리가 들려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문들 닫아걸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문을 닫으면 하

나님은 하늘 문을 여십니다. 우리 신앙생활 교회생활이 힘든 이유, 골방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내 뜻을 비우고 하나님 뜻으로 채우는 시간, 부정적인

생각들을 몰아내고 긍정적이고 소망찬 생각들을 받는 시간, 상처와 아픔들

이 위로와 치유가 되는 시간, 지치고 피곤한 몸도 쉼과 평안을 얻는 시간.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산란해질 때 그 자리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하나님

앞에 설 일입니다. 골방을 만드는 것이지요. 골방에서 위로 받으면 광장에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골방에서 힘을 얻으면 광장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 그대 골방을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님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시가 유명하지요. 그런

데 <그대 골방을 가졌는가?>라는 시도 있습니다.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오

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오늘도 내 마음 속에 골방 하나 만들 일입니

다.

    
<그대 골방을 가졌는가?>

-함석헌-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대는 님 맞으려 어디 갔던가?

네거리에던가?

님은 티끌을 싫어해

네거리로는 아니 오시네.

    
그대는 님 어디다 영접하려나?

화려한 응접실엔가?

님은 손 노릇을 좋아 않아

응접실에는 아니 오시네.

    
님은 부끄럼이 많으신 님,

남이 보는 줄 아시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여

말씀을 아니 하신다네.

    
님은 시앗이 강하신 님,

다른 친구 또 있는 줄 아시면

애를 태우고 눈물 흘려

노여워 도망을 하신다네.

    
님은 은밀한 곳에만 오시는 지극한 님,

사람 안 보는 그윽한 곳에서

귀에다 입을 대고 있는 말을 다 하시며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자 하신다네.

    
그대는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어디다 차리려나?

깊은 산엔가 거친 들엔가?

껌껌한 지붕 밑엔가?

또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엔가?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

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그대 맘의 네 문 밀밀히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으면

극진하신 님의 꿀 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