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파수꾼, 불이야!

• 강원도 쪽으론 오줌도 안 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30여 년 전에 강원도 화천 북방 철책(GOP)에서 군생

활을 했습니다. 처음엔 비목의 백암산 정상(1179m)에서, 이후 여러 소초에서

경계근무를 했지요. 6개월은 철책근무이고, 6개월은 FEBA(대대) 근무를 합니

다. 최전방에 있다고 특별히 더 힘든 건 없습니다. 군 생활은 어디에 있든지

내부대가 최고 힘든 곳이잖아요.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안주가 없어

도 밤을 새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예비대대에 있었으면 훈련에 검열이다 힘든

데, 철책은 밤새 근무하고 오전에 취침인 것이 고되다 뿐이지,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금방금방 갑니다.

백암산 정상에서 근무할 때 멋진 풍경은 다 보았습니다. 특히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에 저 아래로 빼곡한 운무(雲霧), 그 위로 높은 봉우리들만 머리를 내

밀고 있어, 마치 신비로운 곳에 와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전방 고지 기온을

우리 상황실에서 기상청에 보내 주는데요, 대성산 적근산과 함께 백암산도 영

하 30도를 넘는 강추위를 쉬 견뎌야 했습니다. 그래도 따스한 구식 패치카가

있어 좋았고, TV는 없지만, 그것도 방송이라고 대남 대북 방송이 끊임없이 이

어져 심심하지는 않습니다. 이맘때이면 겨우내 먹을 쌀을 짊어지고 올라가야

하고, 산 아래 부식을 던져 놓고 가면 군장을 메고 내려와 가지고 올라갔습니

다. 일명, 부식추진!

지금 같은 때이면 한창인 단풍나무며, 다래나무를 털기도 하고, 겨울에는 팔뚝

만한 더덕 캐기, 어떤 날은 꿀을 따기도 합니다. 분단 후 수십 년 동안 아무

도 오지 못하는 고지이니, 태고의 멋과 맛,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백

암산 꼭대기는 검열자도 올라오지 못해서 소위 ‘군단 카추샤’라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그래도 군복에 군화를 신고 있으면 말장 도루묵이라!

그때가 그리워서 일까요. 강원도에서 살게 된 것이. 제대할 때 대부분 하는 말

이 있어요. “내 이제 강원도 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안눈다”. 저도 그 말을 누

누이 했는데, 강원도 땅에서 목회를 하고 있네요.

• "내래 그 여성 동무 목간하는 거 봤시다 고럼”

그러나 한 가지, 아무래도 최전방이니 좀 위험하지요. 사회와는 아주 격리된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도 모든 병사들이 실탄과 수류탄을 가지고 초소에

투입되니 총기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빈총을 맞아도 3년은 재수가 없다(?)”

사실은 제가 근무할 때도 사고가 여럿 있었습니다. 사회에 알려지지 않지만,

초소에서 이등병이 총으로 자살했습니다. 점호때 가볍게 가슴 한 번 쳤는데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안타깝지요. 꽃다운 젊은 때인

데. 철책부대에서 죽는 사고가 생기면 그 소대는 뒤로 빠지고 바로 직전 부대

가 다시 들어가는데, 마침 우리 소대이어서 다시 철책선으로 들어가기도 했습

니다. 군대용어로는 소위 재수가 없어서 ‘안 풀린 케이스’라.

남북한 철책 사이가 본래는 4km이지만 서로 편의를 위해 앞당겨져서 불과 몇

백 미터 앞에 적의 진지가 있기도 합니다. 멀리 북측 산 중턱에는 ‘오라 북으

로, 주체 조선’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보이고, 하루 종일 이어지는 대남방송.

물론 남쪽도 거기에 상응하게 북쪽으로 대북방송을 합니다. TV도 없던 시절,

88올림픽때 현정화가 금메달 따는 것을 달밤에 대북방송을 듣고는 알게 되었

으니. 그 소식에 초소마다 ‘와우’하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쳤으리라.

30배 니콘 망원경으로 보면 북측 군인들과 민가의 움직임까지 다 보이는 데

요, 병사들이 자주 장난치던 말, “내래 그 여성동무 목욕하는 것 봤시다 고

럼”. 그저 보기에는 평화로운 마을에 불과하지만 남북이 갈라진 지 60년이 넘

도록 오가지 못하는 오지(奧地)가 되었습니다.

휴전선 철책은 3-4m정도로 3중 철책이 아래쪽의 그물망과 위쪽 원형 철망으

로 되어 있어 쉽사리 침입할 수 없습니다. 철책 그물 사이사이에는 돌이나 깡

통이 달려 있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소리가 나고 돌이 떨어집니다. 더구나

두 사람씩 한 조가 되어 초소를 지키고 야간 투시경도 있기 때문에 철책을 넘

어오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병사들은 저녁이 되면 해지기 30분전(EENT)에 투입해서 밤새 경계근무를 하

고, 해뜨기전 30분(BMNT)은 해 뜬 후 30분까지 합쳐서 약 1시간은 취약시간

이라 해서 전원투입해서 근무를 섭니다. 그 이후는 철수를 하는데요, 돌이 떨

어진 곳이 있는지, 수상한 흔적이 있지는 않은지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소초를

향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참 많이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70년대 언제쯤이라 하던데요,

우리 관할 철책을 뚫고 간첩 몇 명이 침투했다가 무사히 다시 넘어갔다고 합

니다. 훈련 때마다 귀가 닳도록 그 말을 들으며 철통같은 경계 근무를 다짐하

곤 했었지요.

• 영화 같은 일, 철책이 뚫리다?

그런데 그 철책이 다시금 뚫렸다 합니다. 최전방 휴전선 경계에 비상이 걸렸

습니다. 일명 ‘노크 귀순’. 처음 듣는 말이라 생소하기도 한데요, 북한 병사가

우리 소초 생활관까지 쉽사리 들어와 노크까지 한 것입니다. 똑똑똑, “아무도

안계십니까? 안녕하세요. 저 귀순하러 왔시오!?” 뭐 이랬을까요?

아, 이것이 우리 군의 현실일까요. 마치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입

니다. 지난 2일이지요. 강원도 고성군 최전방 소초로 북한 병사가 귀순해 왔

습니다. 그것도 3중 철책을 넘어 우리 장병들이 기거하는 생활관까지, 너무나

쉬웠답니다. 그는 우리 초소를 두 군데나 두드렸고 소초에서 수십 분을 활보

하고 다녔는데도, 우리 군은 전혀 몰랐습니다. 상부에 보고체계도 엉망이었고

CCTV 녹화기능도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실패는 이번만이 아니라지요. 지난달 9일엔 한 북한 주민이 인천시 강

화군 교동도에 들어와 엿새 동안 숨어 지내다가 주민의 신고로 잡히기도 했습

니다. 군은 주민이 신고하기 전까지 철책에 이상이 있었는지조차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군에서 경계태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아는 바, “작전에 실패한 군인

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 이

유입니다. 흔히 “보초와 점호만 없어도 군대생활 할 만하다” 하지요. 즉 초병

(哨兵)의 사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만약 이 북한 병사가 귀

순이 아니라 무기 들고 침입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순식간에 공포가

밀려 옵니다. 표순혁 집사님 말을 들으니 지금은 사람이 아니라 장비중심이어

서 감시카메라와 경보장치 중심으로 철책근무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첨단 장비가 있어도 병사들의 군기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

인 것을.

• 영적인 파수꾼,‘불이야!’

당나라 군대라고 혀를 찰 일만은 아닙니다. 가만히 우리 모습을 돌아봅니다.

초병은 성경에 파수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나를 영적인 파수꾼으로 세우셨습

니다. 불이 난 집에서 해야 할 일, ‘불이야!’ 외치는 것뿐이라. 적진을 잘 살피

고 유사시 나팔을 불어 시대를 깨울 자입니다.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지, 점검하고 돌아 보는 가을날입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3:17)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