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에 대한 물음

    
• 밸런타인데이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주님 오시는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이

지요. 거리마다 성탄 분위기가 한창이고, 연말과 함께 있어서 흥청이기 쉬운

때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성탄의 의미와 확신이지요. 생뚱맞

지만,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떠올려 봅니다. 그 옛날 로마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전쟁 징용을 위해 결혼을 금지시켰습니다. 밸런타인 신부는 법을

어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혼을 주례하지요. 그것이 발각되어 신부가 처

형을 당하게 되는데 그 날이 B.C 269년 2월 14일입니다. 14세기경부터 유

럽에서 그 신부를 추모하기 시작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편지를 교환하는

풍습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세월이 흘러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

이 되고, 쵸콜릿 회사에서 활용해서 이제는 쵸콜릿을 주고받는 날로 바뀌었

습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지요. 성탄도 그리한 것은 아니가? 성탄의 내용

과 의미는 없어졌고 화려함과 즐거움만 남았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우리가 ‘성탄의 상징(표적)’이라는 주제로 그 의미를 새기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성탄의 상징은 빛이었지요.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 빛은 생명과 구원의 빛이라. 두 번째는 갓난아기입니

다. 인간을 향해 내려오시는 하나님, 그것이 성육신이지요. 그것도 갓난아기

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맨 처음부터 마지막 십자가 죽음까지, 인생의 모든

생사고락을 경험하십니다. 우리를 전적으로 이해하시고 임마누엘로 함께 하

시길 위해.

    
• 늑대인간

언젠가 TV <세상에 이런 일이>에 늑대인간이 소개되었지요. 41살 션 앨리

스. 어릴 때부터 늑대를 좋아했고 연구하다가, 실제 야생에서 늑대와 살게

되었습니다. 함께 잠을 자고 네 발로 걸어 다닙니다. ‘우우...’ 울음소리를

내고, 혀로 다른 늑대를 핥아 주며, 생고기도 으르렁대며 같이 뜯어 먹습니

다. 놀랍게도 그는 늑대들과 부대끼며 늑대들의 습성, 감성, 언어까지 그대

로 몸으로 익혀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11년 동안 늑대들과의 자리싸움은 물

론이요, 늑대에게 상처까지 입으며 치열한 경쟁을 거듭해 왔다고 합니다. 더

욱 놀라운 것은 이 늑대 사람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예쁜 딸.

그러니까 그는 늑대를 위한 사랑으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

습니다. “늑대와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 사육사나 조련사가 아닌 한 가족

이 되기 위해서 그가 택한 길은 같은 말과 행동과, 같은 감성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늑대들도 먹이 주는 사람, 훈련시키는 사람이 아닌 자기들

과 똑같은 늑대로 여기고 친근히 대한 것입니다.

    
성탄을 그렇게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세상은 그것을 알지 못했지요. 그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 전하기 위해 하나

님이 사람 되십니다. 옹알이하는 갓난아기로, 평범한 시골뜨기 아이가 되어,

걷는 법 옷입는 법을 배우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시 아람어 하나하나

를 배우시고 목수 일, 나귀 타는 법을 몸에 익히십니다. 화가가 자신이 그린

그림의 한 점이 되듯, 극작가가 자신의 연극의 한 등장인물이 되듯. 그렇게

사람으로 나셔서 사람으로 사시다가 십자가에 죽으신 일, 성탄 성육신입니

다. 오늘은 성탄의 상징 세 번째입니다. 마구간. ‘마구간에 오신 예수’.

    
• 덕구의 성탄

성탄절이 되면 떠오르는 연극이 있지요. <빈방 있습니까?>. 예전 제가 신대

방제일교회 교육전도사일때 청년들이 연합해서 이 연극을 공연했었어요. 내

년에는 우리 청년들 관심있는 성도들이 이 연극을 올렸으면 좋겠어요. 지금

도 대학로에서는 40여년 가까이 매년 상영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였지요. 1977년 ‘윌리의 성탄절'이란 칼럼으로 가이드 포스트

등의 일간지를 통해 소개되었는데, 최종률 감독이 연극으로 만들었습니다.

한 작은 시골학교에서 성탄절 성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등 배역을 정하는데 한 아이가 문제입니다. 윌리, 연극에서는 덕구로 나오지

요. 말도 좀 어눌해서 소위 좀 모자라는 아이입니다. 당연히 그를 빼야한다

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착한 덕구가 안스럽습니다. 마

침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배역이 있었으니, 여관집 주인이에요. 만삭의 마리

아와 요셉을 매몰차게 몰아내는 역입니다. 대사도 한 두 마디뿐입니다. ‘빈

방 없어요’. ‘아 글쎄 없다니까’. 짧은 대사이지만, 덕구가 연습하기에 벅차

서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빈반 없더오”

“덕구야 아니라니까 빈방!”

“빈반”

“어휴, 이 바보. 선생님 덕구 안되겠어요”

    
마침내 성탄절에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극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

었지요. 마리아가 천사에게 수태고지를 받는 장면, 만삭이 된 마리아가 요셉

과 함께 고향으로 향하는 장면, 그리고 도착한 베들레헴, 마리아는 산기로

인해 진통이 시작됩니다. 요셉이 다급하게 이곳저곳 문들을 두드려 보지만

아무 곳도 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 집에 빈방 있습니까?”

“아니, 없어요”.

돌아서는 요셉과 마리아의 어깨가 축 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찾은 어느 여관집. 마침내 덕구 차례가 된 것입니다. 선생님과 모든

스탭들, 그리고 덕구를 아는 관객들도 걱정이 가득합니다. ‘잘해낼까?’ 각본

을 따라 요셉과 마리아가 덕구 앞에서 다급하게 말합니다.

“지금 아기가 나오려고 해요. 빈방 있으면 부탁합니다”

‘빈방없어요’. 덕구가 매몰차게 해야 할 순간, 그런데 주저주저 말을 못하지

요. 모두가 속이 탑니다. “덕구야, 얼른 빈방없다고 해”. 무대 뒤에서도 연

신 ‘빈방없어요’를 대사를 외칩니다. 마침내 덕구가 얼떨결에 그 대사를 합

니다. “빈방없어오”.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은 그 다음에 터지지요. 어렵게 빈방이 없다는 덕구의 말을 듣고

는 안심하고(?) 급히 돌아서는 요셉과 마리아의 앞길을 덕구가 막아섭니다.

“가지마세요. 에수님”

덕구는 예수님 일행이 너무나 불쌍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울먹이며 외치

지요.

“내 반(방)이 있어요”.

각본에 없는 덕구의 엉뚱한 행동으로 무대가 술렁입니다. 당황한 요셉과 마

리아가 그냥 무시하고 가려는 순간, 다시 막아섭니다.

“아 글쎄 내 반이 있다고요”.

연극은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마침내 중단됩니다. 선생님

은 무대에 나와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서둘러 막을 내립니다. 덕구로

인해 연극을 망친 것이지요.

    
연극 마지막, 손가락질 하며 투덜대던 친구들도 가고 텅빈 무대. 덕구는 무

릎꿇고 글썽이며 혼자 말합니다. “하난님. 용서해 주세요. 내가 연극 망쳐

놨어요. 그치만 우리 집엔 빈 바이 있걸랑요. 어떻게 에수님을 마구간에서

나라구 그래요. 난 정말 에수님이 우리 집에서 태어나셨으면 좋겠어요. 내

반 청소하고 기다릴래요. 난 에수님이 좋아요. 에수님 사랑해요. 에수님이

최고에요. 에수님은 나 땜에 죽으셨잖아요.”

예. 망친 연극, 그러나 관객들은 모두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을 받지요. 덕구

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 때문입니다.

    
• 빈방에 대한 물음

너무나 잘 알려진, 그리고 벌써 40년이나 올려지고 있는 이 연극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은 왜일까? 오늘도 빈방을 찾아 헤매시는 주님 목소

리가 들리기 때문 아닐까? ‘빈방있어요’라는 덕구의 글썽이는 목소리 앞에

서, 빈방을 준비하지 못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는 아닐까?

다시 맞는 성탄, 주님 오실 빈 방을 준비하고 있는지. 계절의 성탄은 이미

창문가에 와 있지만 마음의 성탄은 멀리 있는 것은 아닌지. 연극 ‘빈방’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빈방있습니까?’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