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상징(4) 구유

-먹히시고 밟히시고

    
• 성탄의 비유

대림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성탄이 저기 가까이 와 있습니다. 촛불이 하나

씩 켜질 때마다 기다림이 담겨 있지요. 그냥 가만히 날짜만 세는 자에게 성

탄이 임할 리 없습니다. 욕심과 욕망, 미움과 분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촛불

을 밝혀 소박한 마구간을 준비하는 이에게 주님은 성탄으로 임하시리라.

    
함박눈이 몹시 내리던 성탄절이었어요. 어느 한 가족이 성탄절 예배를 드리

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은 계속 의심을 토해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이 될 수 있대? 믿을 수가 없어!”. 믿음이 좋은 엄마는 이리저리 설명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집 문 앞에 이르자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한동안 춥고 눈이 많이 쌓인지라 참새들이 먹이를 구하지 못

한 거예요. 얼마나 못먹었는지 비실비실 댑니다. 엄마는 얼른 집으로 들어가

먹이를 가져와서 새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이걸 먹어라”.

그러자 웬걸요. 새들이 경계하며 푸드덕 푸드덕 날아가 버립니다.

“난 너희를 해하려는 것이 아니야, 먹지 않으면 굶어서 죽는다고”

그러나 새들이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습니다. 날아가는 새들 뒷모습을

보며 한 아이가 말합니다.

“내가 새가 되었으면. 그래서 엄마 마음을 전해 주면 좋겠어요”.

이 말을 듣고 있던 엄마가 말합니다.

“그렇구나! 그게 성탄이로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알지 못했지.

아무리 말씀하셔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사 말씀하시고 그 사랑을 보여 주신 거야”.

    
• 두 구주가 있으니

성탄 이야기를 전해 주는 (눅2장)에는 두 명의 구주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로마 황제 아구스도, 구체적으로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

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 BC27년∼AD14년 재위) 황제입니다.

삼두정치를 행한 무력의 제왕이지요. Pax Romana(로마의 평화) 시기로 불

리지만 민중들을 발가벗겨서 이룬 평화입니다. 요셉 부부가 고향 베들레헴

에 간 것도 호적등록을 위함인데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강제명령이었습니

다.

    
그런데 성경은 또 다른 구주를 소개합니다. 그분은 무력이 아닌 사랑과 평

화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표적이 마구간이요 구유이지요.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한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

에게 표적이니라”(눅2:11-12)

    
구유(φάτνη)는 한 마디로 먹이통이지요. 오래전 고향 집에 돼지 키울 때,

먹이를 담는 기다란 밥통이 있었습니다. 아주 더럽고 냄새나는 여물통이지

요. 놀랍게도 새로운 구주는 당신이 직접 먹이가 되어 구유 안에 계십니다.

세상의 구주 아구스도는 민중들을 발가벗겨 밥과 평화를 빼앗아 가지만, 구

주 예수님은 자신이 밥이 되사 먹히심으로 생명과 평화를 주십니다. 이것은

로마제국의 질서를 역전시키는 여명입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

가 곧 생명의 떡이니”(요6:48절). 우리는 구유에 누우신 그 예수를 먹고 생

명을 얻습니다.

    
가톨릭 성당은 성탄절 전날 밤이 되면 구유안치식을 합니다. 아기 예수를

구유에 모시는 구유예절이지요. 성당마다 대림절이 되면 마구간과 구유를

만들고(구유축성식), 그것을 보며 주님을 기다리게 되지요. 우리 개신교는

이런 형식을 자제하지만, 성탄절 새벽 촛불 예배 같은 때 해도 좋으리라 생

각됩니다. 친구 신부의 말을 들어 보니, 비록 인형이지만 아기 예수를 구유

에 누이는 순간, 표현하기 힘든 전율이 흐른다고 합니다. 신생아를 차디찬

마구간 구유에 놓는다, 마치 죄악 된 세상을 대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만삭의 산모가 바로 옆에서 울부짖는데도 몸을 풀 방 한 칸

도 내주지 않는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세상. 그런데도 이 땅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마구간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얼마 전 잡지 <The Richest>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 Top 10’을 발

표했는데, 스위스 제네바의 ‘프레지던트 윌슨 호텔’(President Wilson Hotel)

이 가장 비쌌습니다. 그 호텔 로얄 펜트하우스 스위트룸은 544평에 방이 12

개, 아름다운 경치는 물론이요 전용 요리사, 피아니스트, 마사지사가 딸려있

고, 방 안에 농구장도 갖춰져 있다는군요.

“야, 나도 하룻밤 거기서 자봤으면 좋겠다?”.

하루 잠자는 가격이 얼마나 될까요? 무려 83,200달러, 우리 돈으로 9,150만

원 정도입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나 빌 게이츠 등이나 거기 묶었다고 하

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감히 꿈도 못 꾸겠지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처음 보내신 숙소는 어떠할까? 몇

천 만 원짜리는커녕, 싸구려 방도 하나 없어 짐승들의 외양간이 처음 숙소

가 되셨습니다. 마구간에 오시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 이것이 성탄

의 신비요 역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크리스마스의 메시지의 핵심이다.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크

신 분이 구유 안에 쏙 들어가셨다. 하나님이 작아져 한 뼘 인간이 되신 신

비” (팀 켈러, <예수 예수>, 210쪽)

• 먹히시고 밟히시고

일본 엔도 슈샤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 17세기 초 일본에 가톨릭 신자

가 37만여 명에 이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선교 금지령을 내립니다. 선

교사들을 추방하고 ‘구멍 매달기’ 등의 악랄한 방법으로 신도들을 박해합니

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성화가 새겨진 동판(후미에)을 밟고 침을

뱉게 하며, 성모 마리아를 매음녀라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성화를 밟

고는 괴로워하는 신도들 사이에 깊은 갈등이 적나라히 그려 집니다.

이때 지도자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문이 들리지요. 포르투갈 선교

본부에서 확인하고자 세 신부를 일본에 파견하는데, 두 신부는 중간에 순교

하고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가 살아 남았습니다. 마침내 스승이었던 페레이

라 신부를 만났더니, 소문대로 배교를 해서 일본식 이름을 갖고 순교자의

미망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 배교했을까?

어느 날 로드리고 신부는 감옥에서 기막힌 광경을 목격합니다. 이미 배교한

신도들인데도 모진 고문 속에 죽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유는 로드리고 신부

가 배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부를 배교시키기 위한 방법입니다. 신부

는 괴로와합니다. 자신이 신앙을 지킬 수록 양떼들이 고통가운데 죽어나갑

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가장 무서운 죄는

하나님에 대한 절망이거늘. 마침내 신부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배교를 결심

합니다. 스승 페레이라 신부도 이런 연유로 배교한 것이었습니다.

그 밤에 신부가 예수님 얼굴에 발을 얹는 순간, 발밑 동판으로부터 그 분의

음성이 들려 옵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

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

누고 있었을 뿐이라, 밟아라 밟아도 좋다. 밟히기 위해 내가 온 것이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

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

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

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

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3-5)

예수님에 대한 가장 분명한 말씀이지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 머리 둘

곳 없이 세상을 사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 그 시작은 작은

고을 베들레헴 구유에서였습니다. 먹히시고 밟히시고, 찬미 예수 그리스도!

• 주님 오시는 그곳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게 있지요. 예수님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다는 것,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겸손히 허리 굽혀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 발바닥에 말똥 묻힐 각오는 해야 한다는 것,

큰 성 예루살렘이 아니라 작은 마을 베들레헴입니다.

    
<성탄절>

-임규일-

우리는 저마다

높디 높은 곳만 우러르며

발동동

아우성인데

    
예수님은

저 낮고 낮은 아래로만

소리 없이

내려가시네

    
그러니

만날 수가 없지

뵐 수가 없지

    
그렇구나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