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얼마 전, 마음이 좀 산란했습니다. 먼저는 부끄럽다는 생각, 아빠로서 남편

으로서 자식으로서 무엇보다 목사로서 누구 앞에 설 수 없는 부족한 존재라

는 생각이 밀려 오는 것입니다. 한편으론 허전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텅 빈

겨울 들녘처럼 뭐 하나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 뙤약볕

아래를 걷는 듯 터벅터벅 지칠 때도 있었고, 발목까지 빠져드는 진창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주저 앉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 안고 찾은 제단, 성탄의 촛불을 바라보며 빈 마

음을 누이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감동이 되었던 강연 제목이기도 한 그 말,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마치 주

님께서 내게 그리 말씀하시는 듯 싶었습니다. 삶이 언제나 즐겁고 평탄할

수는 없지요. 때로는 거친 오르막 길을, 때로는 메마른 사막 같은 곳을 지나

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가족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곁에 있는 이로 인해 상

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세월의 흔적들이 켜켜히 쌓여 온 365일.

그래도 잘 왔습니다. 비틀거릴 때도 있었지만 잘 견뎌내서 왔습니다. 상처가

된 기억들,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아 안타깝지만, 그래도 한 해 마지막까지

왔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럽습니다.

에벤에셀, 우리 주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사 여기까지 인도하셨기 때문입니

다. 또한 함께 이 길을 걸어 온 당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힘들어

주저 앉고 싶을 때, 기도의 두 손 모아 준 이들, 곁에 머물러 준 이들, 당신

이 있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축구 승부차기때 한 선수가 골대를 향해 가면,

다른 선수들은 스크럼을 짜고 격려를 하듯, 어릴적 운동회때 꼴찌로 뛰는

나를 향해 고래고래 목이 터져라 외쳐 주시던 어머니 목소리처럼, “장아, 힘

내 끝까지 뛰어 더 힘내”.

    
여러분, 여기까지 잘 오셨습니다.

함께 가고 있는 이 길이어 참 좋습니다.

당신과 함께 가는 길이어 행복합니다.

새해에도 주의 은총 가득하여라.

백창우의 시로 한 해 <목자의 글>도 마무리 합니다.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걸"

(백창우,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중에서)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