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하는 교회

• 생일이 두 번인 교회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에는 공통적인 생일이 두 번 있습니다. 첫 번째 생일은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성령강림 오순절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기록하듯,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셔서 이 땅에 처음 교회(church)가 세워졌습니다. 그곳 마가의 다락방은

처음 교회 터가 되었고, 그 날은 오늘날 개신교와 가톨릭을 비롯한 모든 교회

들의 공통적인 생일입니다.

두 번째 생일은 지금으로부터 495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오늘이 그날 이

지요. 독일에 마틴 루터(M. Luther)가 비텐베르그 성당 게시판에 95개의 논제

(Die 95 Thesen)를 내걸어 종교개혁을 시작한 날입니다. ‘면죄부의 효력에 대

한 해명을 위하여(Zur Klarung der Kraft der Ablaesse)’ 라는 부제와 함께.

그러므로 이날은 로마 가톨릭(舊敎)과 대비되는 우리 개신교, 개혁교회

(Reformed Church)가 태어난 생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는 이름 그

대로 개혁하고 새롭게 하는 교회라는 뜻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들을 볼 때, 5백여 년 전에 개혁의 횃불을 들었던 개혁자

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때 개혁의 칼끝을 겨누었던 구교의

모습들이 우리 안에 보입니다. 교회가 타락할 때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라 하

지요. 하나는 교권이 말할 수 없이 커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직자들이 타

락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땅에 교회들 가운데 이 두 가지 모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타락해져 가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일까요? 물론 저와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 개혁의 칼끝은 오늘

내게 향해 있음이 두렵습니다.

개혁이란 무엇인가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 안과

밖에서 주의 이름으로 범죄하는 일을 바로 세운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

에서 떠나 있으면,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과 대치될 때 언제나 개혁의 대상이

됩니다. 현실 교회는 늘 개혁의 주체요 개혁의 대상이라는 말이 옳습니다. 그

래서였나 보지요.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J.Calvin)은 개혁의 와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개혁된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 계속해서 개혁되어 새로워지지 않는 교회는 고여 있는

물처럼 썩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부동산 목회(?)

벌써 십여 년 전이지요. 원주에 처음 내려 왔을 때 지역 목회자들 모임에서

곧 잘 듣던 말이 있습니다. ‘최목사, 영락교회는 땅 안사나? 부흥 안할 거야?’

일명, ‘부동산 목회라’(?). 교회가 부흥하려면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땅을 잡아 놔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교회들은 크

게 자리를 잡고 건물을 지어 한참 부흥하고 있었던 때였지요. “예전에는 영락

교회가 컸는데 지금은 제일 작아 졌어”. 물론 우리 교회를 생각해서 하신 말

씀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시작하는 구전동요가 생각납니

다. 아닌 게 아니라 땅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저 행구동에 큰 교회를

오갈 때마다 ‘우리도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마당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네? 돈요? 요즘 은행들이 교회에 돈 잘 빌려 준 다네요. 한

달에 꼬박꼬박 이자가 들어오지요, 떼먹고 도망갈 일 없으니까요. 교회가 은행

에 주요 고객이랍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 시찰회에서 제일 큰 교회

인 모교회는 한 달에 은행 이자만 7천만 원이 나간다고 합니다. 이자만 해도

그러한데 원금은 도대체 얼마 정도 될까요? 물론 그 만큼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이라 하지만, 그것을 갚으려면 또 얼마나 많은 편법을 써야 할까요. 얼마

큼 작은 교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요.

그래서 조심스럽습니다. 교회가 점점 기업화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똑같아 집니다. 백화점 세일하듯, 본회퍼의 표현으로 하자면 ‘값싼 은

혜’(cheap Grace)를 판매합니다. 그래서 그는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철천

지 원수다. 오늘날 우리의 투쟁은 값비싼 은총을 얻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합

니다(나를 따르라, 33쪽). 빛을 잃은 등대,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될 수 있

습니다. 혹 그 옛날 토마스 아퀴나스가 금과 은을 세고 있는 교황 이노센트 2

세 앞에서 “이제 교회는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질타한 말을 우리도 들을까 두렵습니다. "교회를 교회되

게 하라"(Let Church be Church).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 개혁하는 교회

오늘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그때 그 원칙들을 조심스레 들춰 봅니다. 오직 말

씀(Sola scriptura) 오직 예수(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만 영광을(Soli Deo Gloria!). 개신교회가 이 종

교개혁 다섯 가지 슬로건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 일입니다. 500여 년 전 그

날에, 진리를 향한 고귀한 투쟁을 입으로만 외치는 부끄러움을 자책하며 말입

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찰스 5세가 소집한 제국회의에 목숨을 걸고 갈때 했던

마틴 루터의 외침이 저만치서 들리는 듯합니다. “웰매스의 지붕을 덮은 수만

장의 기왓장이 악마로 변하여 나를 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네 주장을

꺾으라 말하지 않는 이상, 성경이 네 주장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나는 내 주장을, 이 복음의 교리를 변경할 수도 취소할 수도 없

다!”

/사랑으로 샘물

(201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