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와 공감

• 2020년 한가위

민족의 명절 한가위 마지막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예전처럼 민족

대이동이나 자유로운 만남의 절기가 되지는 못했지요. 현수막 “불효자는 ‘옵’

니다”가 웃픈 현실인데요, 고향 방문 대신 영상 통화로, 추석 차례상이 줄어들

고 온라인 성묘를 하기도 했다는군요. 가장 풍요로운 계절, 감사와 나눔이 넘

쳐야 하지만, 마음 문들이 꽉 닫혀서 가장 힘들고 퍽퍽한 명절을 보내고 있는

듯싶습니다.

저 또한 고향 가는 일을 접으려 했지만, 병상의 어머니를 뵙고자 내려갔습니

다. 이번엔 어머니도 안 계시고 해서 아버님 댁이 아니라, 새 집으로 이사하신

작은 형님 댁에서 모였습니다. 어머니 없이 처음으로 드린 추석 예배. 설교하

시는 큰 형님도, 기도하시는 작은 형님도, 덕담하시는 아버지도, 목들이 다 메

여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아들 삼형제와 손주들까지 잘 살고 있

다는 이런저런 삶의 ‘보고(?)’가 이어졌겠지만, 어머니 빈자리가 너무 커서 이

사 축하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찾아간 병실, 들어갈 수가 없어서 어머니가 병원 마당으로 나

오셨습니다. 휠체어에 겨우 기대어, 여전히 사람 분간이 어두우십니다. 손주들

한 놈 한 놈 눈에 담고 안아 주며 등을 도닥여 주셨을 할머니인데, 막내 손주

영민이가 볼에 얼굴을 대고 비벼도 별 반응이 없으십니다. 가을하늘이 너무 눈부셔

서일까, 눈을 뜨지 못하시는 어머니, 우리도 먹먹한 마음에 눈을 뜨지 못했습

니다. 평생 엄마를 앞세우며 사셨던 아버지는 당신의 무릎이 배겨나지 못하는

데도 하루에도 몇 번씩 병상을 찾아 가십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함께 아파하

시는 큰 형님, 작은 형님.

    
• 가족이란

고향이란,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60년을 부창부수하며 함께 기대 온 지아비

지어미의 모습은 거룩합니다. 내 몸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배고픈 시절

콩조각 나눠 먹던 형제들은 거룩합니다. 그 사랑을 잊지 않고 함께 눈물지며

아파할 줄 아는 것, 거룩합니다. 가족의 그 따스한 손과 가슴은, 수많은 인생

의 겨울을 이겨내게 한 힘이었습니다. 함민복은 이것을 ‘닻’이라 말하지요. 망

망대해에 생계를 걸고 있는 뱃사람들의 닻, 배가 흔들릴수록 깊이 박히는 닻,

서로를 그물처럼 꽉 잡아주는 닻.

    
<닻>

   
-함민복-

    
파도가 없는 날

배는 닻의 존재를 잊기도 하지만

   
배가 흔들릴수록 깊이 박히는 닻

배가 흔들릴수록 꽉 잡아주는 닻밥

    
상처의 힘

상처의 사랑

    
물 위에서 사는

뱃사람의 닻

    
저 작은 마을

저 작은 집

    
-함민복, <말랑말랑한 힘> 중에서

    
코로나로 인해 나라가 어렵습니다. 지난주에 총회가 끝난 장로교단의 미래도

어둡습니다. 우리 인생도, 신앙생활도 힘겹습니다. 어디에 희망이 있을까? 하

나님께서 우리의 ‘닻’이 되십니다. 배가 흔들릴수록 깊이 박히는 닻, 우리를

꽉 잡아 주시는 닻이십니다. 이 명절에 봉산동의 작은 공간 원주영락교회가

유난히 정겨워 보이는 이유이지요. 닻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은혜

를 받은 우리가 세상에 ‘닻’이 될 수 있다면.

    
• 공감 empathy

공감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지요.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나

는 공감한다 고로 존재한다”. 성경은 ‘공감의 책’입니다. 자녀 잃고 재산 건강

까지 잃은 욥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해 주는 친구였습니다. 빌닷 소발 엘리바

스, 저들이 아주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요. “하나님 앞에 죄가 있는지 생각

해 보라. 죄가 있으니 이 재난이 온 것이지”. 그러나 저들에게 사랑이 없었지

요. 욥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랑. 탕자를 ‘측은히 여겨’ 목을

안고 입을 맞춘 아비의 마음. 목자 없는 양같은 무리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

신’ 주님의 마음. 그러고 보니, 하나님이 사람 되신 성육신(Incarnation) 사건

은 가장 큰 공감의 사건이지요.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이 종의 형체를 지니

사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스플랑크 니조마

이 σπλαγχνίζομαι), 함께 먹고 마시며 춤추시고, 고통과 굶주림에 함께 울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죽음까지도,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우리

를 대신해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야말로 우리와 완전한

공감을 이루셨습니다.

    
이 시대 가장 큰 문제는 공감의 부재 아닐까?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피조물

과. 며칠 전 뉴스에, 부산 한 집에서 60대 남성이 어미 개를 잡아먹으려고 때

려서 도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새끼들이 보는 앞에서. 한갓 미물이라

고 함부로 다루는 것입니다. (레22:28)“암소나 암양을 막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지 말지니라”.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21세기는 공감의 시대’라 합니다.

서로가 공감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라. 사람과 사람이 공감해야 하고, 사

람이 동물 식물 모든 피조물과도 공감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는 코로

나가 만연한 세상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1900년대 인간은 지구의 14%를 차지

하고 있었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인간의 지구의 74%를 차지한 채 살고

있습니다. 다른 동식물이 사는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고 인간이 차지한 것이지

요. 내 주거지를 빼앗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등이 인간에게 옮겨 오면서 비

롯된 것, 코로나 19 전염병들이라.

    
• 미안한 마음

코로나를 겪으면서 그저 미안한 마음만이 가득합니다. 성전에 오르신 분들은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엘림에 현수막입니다. “저희 교회는 이웃의 안전과 코로

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정부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미

안한 이 시대, 오가는 마을 주민들이 교회에 안심하시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 이런 현수막을 걸었다고 하더군요. “교회가 미안합니다”. 맞지요.

이 시대, 교회가 참 미안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구를 고치고 싶었습니다.

“목사가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사실 주께서 세우신 교회는 잘못이 없지요. 순

수하고 순전한 성도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그렇게 목사가 지도한 것입니

다. 이 땅의 한 교회를 목양하고 있는 목사로서 교회 안팎에 두루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목사인 저 뿐만이 아니지요. 이 땅의 어른들은 다음 세대인 청년들, 그 다음

세대인 어린 아이들 앞에서 미안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 이런 세상을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마스크는 감기 걸렸을 때나 썼지요. 사는 건 어려웠어

도, 논밭에 나가 산들에 물가에, 친구들과 마음대로 어울리고 손발을 얼굴을

온몸을 비벼대며 컸지요. 학교에 마음대로 가서 운동장에서 교실에서 공부하

며 뛰어 다녔어요. 어느 때부터는 살기도 좋아져서, 좋은 것 맛있는 것 마음대

로 먹고 가끔 해외에도 가고 마음껏 숨 쉬며 살았지요.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집 밖을 나갈 때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아무리 반가워도 친구랑 손잡으면 안

됩니다. 초등학교 대학교 새내기인데 학교에 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가지 못합

니다.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 말을 해요. 문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운 시대

입니다. 이런 세상을 물려 준 우리 어른들은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 미안

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가 세상의 아픔에 공감하며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른이 아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 우분투

우분투(UBUNTU). 남아공 최초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가 자주 사용

한 말이기도 하지요.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인류학자가 한 부족의 아이들

을 모아놓고 제안을 합니다. 앞에 달콤하고 맛있는 초콜릿 과자 사탕 등이 가

득 담긴 커다란 선물 바구니를 펼쳐 놓고는, 소위 ‘선착순’을 제안합니다.

“저 앞에 야자수 나무를 돌아 1등으로 도착한 사람에게 상으로 다 주겠다”,

출발!,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손을 잡고 옆으로

나란히 서서 뛰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골인지점에도 함께 손잡고 똑같이

도착한 아이들, 공동 1등입니다. 이내 그 초콜릿 과자세트를 둘러앉아 모든

친구들이 함께 웃으면서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예상 밖 상황에 학자가 당황해서 물었다고 하지요.

“일등을 하면 이 맛있는 선물세트를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자 아이들이 합창하듯 단숨에 한 목소리로 외쳤다지요.

UBUNTU(우분투)!

‘함께 행복’이라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이라고 합니다.

“내가 일등을 해 혼자 맛있는 선물세트를 다 차지하면, 다른 친구들은 슬프잖

아요”.

    
• 공감하는 교회

코로나와 함께 한국교회 또한 중대한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인 수나 헌금이 줄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 큰

문제는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공적 책임을 망각합니다. 이웃을 생

각하지 않습니다. 반사회적 비상식적입니다. ‘교회스럽다’는 말, ‘교회가 공공

의 적이 되었다(?)’는 말, 정말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대세인 백종원 씨 나오는 어느 TV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이 동네 좋겠다. 이렇게 좋은 맛집이 있어서. 동네 사람들 행복하겠네”.

교회가 이런 얘길 들어야 하지 않을까? 교회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교회

스럽다’는 조롱의 말이 ‘교회답다’는 칭찬의 말로 바뀌는 날이 오기를, 꽉 찬

보름달을 바라보며 빌어 봅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