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개혁의 자리로

오늘 종교개혁주일, 전 세계교회는 1517년 10월 마지막 날에 독일의 사제 마

틴 루터가 불을 붙인 개혁의 불씨를 기념합니다. 그 후로 칼빈 쯔빙글리 등

믿음의 선진들은 그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하지요.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

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 다섯 가지 슬로건을 가지고 낡고

부패했던 중세 가톨릭에 저항합니다.

    
2020년 우리 교회들을 바라봅니다. 오히려 503년 전 로마 가톨릭보다 개혁할

것이 더 많아 보입니다. 본질(fontes)에서 너무나도 벗어나 있는 교회, 더욱이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모습은 불 꺼진 횃불이요 맛을 잃은 소금일 뿐이었습니

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개혁은 한 시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요 계속되어야 할진대, 부끄러운 모

습 가릴 길이 없습니다. 개혁의 후예인 오늘의 교회는 무엇을 새로이 개혁해

야 할까? 이 땅의 교회에 희망은 있는가? 개혁주일을 맞은 모든 교회에서 들

려질 이 질문. 그러나 무수한 질문만 있지 대답은 허공을 가릅니다. 비판의 칼

날을 들이대는 것은 쉽지만,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몸을 밀어 넣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라”

(담론, 신영복. 155쪽 ‘이웃을 내 몸같이’ 에서)

    
중국 춘추전국시대 묵자(墨子)의 말이랍니다. ‘감어수(鑒於水)’가 아니라 ‘감어

인(鑒於人)’하라. 맞지요. 거울에 비추어 보면 외모만 보게 되지만, 자기를 다

른 사람에게 비추어 보면 인간적 품성이 드러납니다. 성도라면 ‘감어인’ 자리

에 ‘감어경’(鑒於經)을 넣어 볼 일이지요. “성경(經)에 자신을 비추어 보라”.

말씀 앞에 설 때에 비로소 참된 자신이 보입니다. 그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고치며 새로워질 때 참된 개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서 주님의 이 말씀이 유난히 들립니다.

“너희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마10:16)

비둘기 같은 순결이라, 곧 거룩함입니다. 그 거룩함이 이 땅의 교회와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무기입니다. 뱀의 지혜는 또 무슨 뜻일까? 교활하거나 약삭빠

른 것이 아닙니다. 뱀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허물을 벗습니다. 못 벗으면 죽는

다지요. 몸은 자라는데 비늘은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뱀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서, 성장이 좋을수록 더 자주 껍질을 벗습니다. 허물을

벗는 것, 영적인 의미에서는 거듭남이라, 뱀을 분별력 있는 지혜의 동물로 본

것입니다. 이 시대 정말 우리에게 비둘기의 순결함과 뱀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 교회가 유례 없는 부흥으로 몸집은 커졌지만, 뱀처럼 계속해서 껍질을

벗지 못했습니다. 비둘기의 순결함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비둘기의

순결, 그 거룩함으로. 뱀의 지혜, 그 거듭남의 개혁(reformation)으로. 잘못된

비늘을 벗고 다시 종교개혁의 자리에 서는 일, 오늘 우리가 살 일입니다.

  
1521년 4월 18일, 루터가 브롬스 의회에서 남긴 말이 내내 귓전을 울립니다.

“여기 나는 확고부동하게 서 있습니다 …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

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취소할 수 없고 또 취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

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아멘.”

(Ich stehe hier, helfe mir, Gott)

    
/사랑으로 샘물